【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도움말 |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신경과 최경규 교수】
단순히 나이가 들면 뇌가 노화해 기억력이 감퇴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의 뇌는 노화뿐만이 아니라, 뇌를 지나치게 혹사하거나 두뇌활동을 충분히 하지 않을 경우에도 기억력이 감퇴한다. 이러한 기억력 감퇴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인지기능장애를 거쳐 치매로 진행되기도 한다. 우리 뇌에는 수천 억 개의 신경세포(뉴런)가 존재하며 복잡한 신경회로망이 그물처럼 얽혀 있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수천 개의 다른 신경세포와 신호를 주고받는 ‘시냅스’로 연결되어 있어 이를 통해 학습기억 등 지적 능력이 발휘된다. 신경세포(뉴런)의 접합부인 시냅스 단련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억력 감퇴 방지법을 알아보자.
신경세포가 자극받아야 시냅스도 단련
학습과 기억 형성과정에서 뇌에서는 신경회로망이 형성되고 변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냅스는 형성, 사멸을 반복한다. 이러한 특징을 시냅스 가소성이라 하는데 가소성은 인간의 학습과 기억뿐 아니라 전반적인 뇌기능의 근본적인 원리의 주요 기반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나 운동선수가 하나의 동작을 훈련해 점점 능숙해지는 것처럼 뇌 역시 신경세포가 하나의 정보에 익숙해지고 자체적으로 훈련하면 이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것도 시냅스 가소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눈은 시신경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자라면서 시신경이 형성되고 발달한다. 이처럼 신경세포는 태아 때부터 3~6세까지도 계속 생성되지만, 이후에는 사용하는 것만 남는다. 때문에 유아기에 아이에게 좋은 정서적 자극이 필요한 것이다.
또 뇌가 부분적으로 손상되더라도 손상 부위가 일정한 크기 이하라면, 그 부분의 기능은 대상에 따라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뇌가 기능을 회복하려는 대상에 시냅스 가소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냅스를 단련할 수 있을까?
바로 일상생활에서 뇌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뇌에 자극을 주는 방법의 핵심 키워드는 ‘반복’과 ‘종합’이다.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신경과 최경규 교수는 “운동선수가 하나의 동작을 익힐 때 수없이 반복하듯, 우리의 기억력도 훈련을 통해 강화시킬 수 있다.”며 “이때 특히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이 나중에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데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관심 분야를 공부하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려고 할 때 뇌세포는 자극을 받는다. 특히 여러 개념을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신경회로망이 더 촘촘해지고 강화된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보다 몰랐던 것을 새로 알아가는 것이 뇌에는 더 많은 자극을 준다.
또한 단순 암기보다는 개연성이 있고, 원리가 있는 공부일수록 좋다. 때문에 사람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철학이나 어떠한 원리에 기대어 풀 수 있는 수학 등이 단순하게 외울 수 있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즐겁고 흥미로운 것을 공부해야 한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공부해 보고 싶은 분야가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의욕적으로 덤빌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좋다. 뇌는 쓸데없다고 판단되는 것은 기억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뇌에 자극을 주지도 않는다. 하고 있는 행동이 이미 지루하고 재미없다면 그저 에너지 소모만 하는 것과 다름없다.
TV를 보더라도 몰입하고, 생각하자
TV 자체는 뇌 건강에 좋지 않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TV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 제일 먼저 켜는 것도 TV이며. 여유시간에 제일 많이 하는 것도 TV 시청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TV를 봐야 할까?
최경규 교수는 “바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게끔 해주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답”이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처럼 하나의 주제를 심도 있게 생각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나 퀴즈 프로그램처럼 적극적으로 고민해 답을 맞춰볼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그나마 두뇌를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만 하고 뇌가 미처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오락 프로그램은 오히려 기억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또한 드라마의 경우도 일방적으로 전개되기는 하지만, 몰입하는 순간 집중력이 올라가고 슬프다든가 기쁘다, 화가 난다 등의 감정을 느끼며 감정순화를 경험한다는 데 있어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메모, 스크랩하는 습관을 갖자
기억력 증진을 위해서는 ‘하나의 정보를 받아들일 때, 되도록 오감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바로 이럴 때 적용된다.
가령 영어 단어 ‘rose(장미)’를 외운다고 치자. 단순히 눈으로 쓱 보는 사람과 한 번 써보는 사람과 쓰면서 소리 내어 읽어보는 사람, 이 세 사람 중 누가 더 단어를 잘 기억해낼 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한다면, 적고 읽고 더 나아가 소리 내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읽은 것을 메모하는 습관은 기억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 단순히 읽는 행위 외에 자신이 스스로 요약, 필기하면서 다시 한 번 내용을 재정리할 수 있고, 이는 기억의 구조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휴대폰도 스마트하게 사용하자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디지털 치매’를 겪는 사람이 많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친한 지인의 전화번호 등을 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친구의 전화번호나 회사 동료의 전화번호를 외우는 사람은 드물다.
또 검색이든 길안내든 일정관리든 뭐든지 척척 알아서 해주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등장으로 우리는 더 이상 많은 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렇듯 진화하고 있는 휴대폰을 단순한 웹서핑과 게임보다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검색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최경규 교수는 “요즘은 스마트폰에 다양한 어플들을 내 입맛에 맞게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만큼, 관심분야를 공부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는 바로 풀자
스트레스는 기억력의 적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뇌의 기억세포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많거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경우 기억력이 더 떨어진다. 스트레스는 바로 푸는 것이 좋다.
또한 요가나 명상 등은 하나의 행위에 집중해 오히려 뇌를 쉬게 해주므로, 뇌기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더불어 충분한 숙면 역시 중요하다. 머리에 입력된 사건, 정보들이 자는 동안 저장되기 때문이다.
건망증과 치매는 다르다
가끔 건망증이 심해 ‘이러다가 치매로 발전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경규 교수는 “기억은 뇌에서 등록-저장-회상-언어로 표현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건망증의 경우 회상의 단계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적절한 치료를 통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치매는 이와 다르다. 기억이 등록되는 단계에서 이미 문제가 발생한 경우이기 때문에 건망증과는 발생 과정 자체가 다르다고 말한다.
이는 신경심리검사를 통해 진단할 수 있으며, 치매의 전 단계인 인지기능장애로 진단되면 대부분 기억력 감퇴를 늦추는 약물 치료를 받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시냅스도 훈련이 필요하다. 뇌에 자극을 주는 행동, 즉 생각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바로 시냅스를 단련시키고 기억력 감퇴 방지와 나아가서는 치매까지도 막을 수 있는 예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경규 교수는 “나이가 들어도 의욕적으로 취미나 자기계발 등에 몰입하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바로 정답”이라고 강조한다.
최경규 교수는 연세대학교 의학박사로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신경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한치매학회 회장과 양천치매지원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