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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연륜만큼 늘어가는 넉넉한 미소와 사랑 보여주는 연기자 송재호

2001년 02월 건강다이제스트 천명호

【건강다이제스트 | 박선희 기자】

– 연륜만큼 늘어가는 넉넉한 미소와 사랑 보여주는 연기자 송재호

– “신앙과 가족의 사랑이 내 삶의 버팀목이죠”

– 소식·생식으로 건강 관리

누가 봐도 푸근함을 느낄 것 같은 사람 좋은 얼굴 덕에 40년 넘은 연기자 생활 동안 악역 한 번 못해 본 불운한(?) 연기자 송재호(62). 좋은 인상만큼이나 넉넉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그에게서 작년 1월 아끼는 막내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이를 견디기까지의 힘들었던 과정과,아직도 애틋한 사랑을 주고받는 첫사랑 아내, 어느새 40년을 넘어버린 연기생활과 그의 삶의 버팀목인 신앙이야기 등을 들어봤다.

사람 좋은 따뜻함이 묻어나는 얼굴만으로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연기자 송재호, 그도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 덕분에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연기자들의 당연한 바람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나도 악역 잘할 수 있다.”고 아무리 연출자들에게 얘기해 봐도 소 귀에 경 읽기. 지금 출연하고 있는 몇몇 드라마들에서도 그는 대부분 천사표다.

그렇다고 실제의 그가 살면서 늘 좋은 얼굴만 하고있을 수는 없는 일. “양면성이 있어요. 어떤 때는 야멸차게 인정머리 없고 어떤 때 한없이 너그러워요. 어떤 것이 내 진짜 성격이고, 살아가는 모습인지 나 자신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런 그는 요즘 부쩍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신앙심 깊은 교회 장로로서, 자신의 삶의 모습이 남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 따라서 행동 하나, 말 한 마디에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고. 특히 60 고개를 넘은 나이가 되다 보니 져주거나, 양보하는 횟수가 자꾸 늘어난단다.

영화 하러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어느새 연기인생 40년이 넘었다는 그는 사실 고등학교 시절엔 촬영에 매력을 느꼈단다. 그 시절 자신이 직접 주물로 영사기를 만들 정도였고, 책가방 속에 도시락은 없어도 카메라는 들어 있을 정도였다니 그 관심과 열정은 짐작이 간다.

그런 그가 배우에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국어 선생님 덕분. “국어시간이었어요. 소풍가는 날 뭔가 찍어봐야겠다 싶어 대충 줄거리를 적고 있는데 선생님이 지나가다 그걸 보신 거예요. 그러더니 부산에 성인들이 모이는 ‘영화합평회’ 가 있다며 소개해 주시더군요. 그때부터 거길 나가기 시작했죠.”

그 모임에서 매주 영화 한 편씩을 보고 이를 분석, 토의, 토론하면서 자연스레 배우에의 꿈을 갖게 됐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연극을 하게 됐다는 것. 당시 성우 생활도 함께 하고있던 그는 졸업하자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서울로 뛰어올라왔다.

서울 상경후의 그의 영화 입문 계기도 참 재미있다.

“충무로로 무작정 달려나가서는 낯익은 배우 한 명이 있길래 무조건 감독 한 명만 소개시켜 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지금은 고인이 된 김기영 감독을 소개해 주더군요. 그렇게 해서 그분을 만났는데, 글쎄 절 처음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내 영화의 공통점을 아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리곤 “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쌍꺼풀이야”라고 하시는 거예요. 평소 존경하던 감독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까 그냥 무너져 버리더군요. 오기가 나 그날로 당장 쌍꺼풀 수술을 해버렸죠.”

이후 또 다른 감독을 소개받은 그는 결국 영화 ‘학사주점’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67년 KBS의 ‘아론’이라는 드라마의 배우 모집에 680대 1의 경쟁을 뚫고 발탁돼 지금의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쌓이는 연기경력만큼 동료나 선배는 줄어드는 대신 갈수록 후배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서 이젠 자신이 원로측에 속하는 게 아닌가 싶어 조금은 낯설고 서글프기도 하단다.

이처럼 적지 않은 연기 관록이 빛나는 그가 연기를 함에 있어 제일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맡은 배역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모습일까를 제일 많이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의 평소 생활 속에서의 자연스런 삶의 모습을 표현하려 애쓰죠.”

그건 바로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일상과 괴리되지 않는 연기를 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까닭에 그의 연기는 그리 튀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담담하다.

이런 그의 연기에 대한 의견은 양분된다. 어떤 연출자는 ‘참 성의없이 연기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연출자는 ‘참 리얼한 배우다. 연기하는 것 같지 않게 연기를 한다.’고 말하는 것.

성심성의를 다 쏟은 자신의 연기를 두고 ‘무성의하다’고 말한다면 당연 섭섭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의 연기에 대한 지론은 변함이 없다.

사격에 일가견, 소식·생식으로 건강 지켜

연기자가 본업인 그이지만 그것 외에 가지고 있는 직함이 꽤 다양하다.
특히 수렵관리협회수석부회장 겸 밀렵감시단 단장, 세계사격연맹 공인심판 등 사격과 관련된 직함이 많다. 그가 서울시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 메달을 딴 전력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

그가 처음 사격을 접하게 된 건 지난 7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당시 대한사격연맹회장 및 세계사격연맹부회장을 맡고 있던 박종규씨와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박종규씨와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돼 평소 호형호제하던 사이.

“그때 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한국에서 처음 열렸었는데 그분을 위해 뭔가 특별한 것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갖고 있는 8mm 무비카메라로 7시간 30분 짜리 기록영화를 만들어 드렸지요. 그러느라 태릉을 자주 드나들게 되면서 사격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지요.”

요즘은 자주 총을 잡진 않지만 사격이 정신적 스포츠로, 스트레스 해소에 그 이상 좋은 것이 없다며 예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때 헬스로 몸을 다지기도 했던 그는 요즘 특별히 하는 운동은 없지만 타고난 건강체질과 그간의 축적된 체력이 있어서인지 건강에는 자신감을 보인다. 60을 넘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며, 아직 체력이 달려서 못하다는 것은 없다고 자신만만.

그러면서 들려주는 그의 건강비결 하나. 바로 ‘소식과 생식’이다. 아침마다 우유 한 컵에 생식가루를 타서 마시고, 저녁은 되도록 7시 이전에 일찍, 적게 먹으려 애쓴다고.

1년전 사고로 아들 잃어

늘 밝은 얼굴의 그 같지만 사실 그는 1년전 아픈 이별을 경험했다. 막내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것. 당시 충격과 슬픔이 너무 컸던 나머지 그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대사 두 줄을 못 외울 정도로 정신이 나갔었어요. 그놈 생각을 하면 미치겠더라구요.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깊은 나락으로 빠진다는 말이 어떤 건지 그제야 알겠더군요.”

차를 달리다 멈춰서 펑펑 운 적도 부지기수. 쉬도 때도 없이 울었다는 그는 아직 아들 방의 보일러를 켜놓고 산다. 곧 들어올 것만 같아 밤에 불도 켜놓고, 아들이 쓰던 물건도 그냥 그대로 보관중이다.

이처럼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인해 한동안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던 그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신앙의 힘 때문이었다.

“신앙심이 없었다면 진작 주저앉고 말았을 거예요. 자살을 했던가, 폐인이 됐던가. 그런데 하나님은 제게 의사 두 분을 보내 제 돌았던 정신을 치유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 치유의 증거로 대사 두 줄도 못 외우던 저에게 모노드라마의 기회를 주셨지요. 또 계속해서 아들 녀석의 일을 잊게 해주시기 위해 틈을 주지 않고 일을 주셨고, 그 일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신앙과 가족은 그의 삶의 버팀목

그에게 있어 신앙은 그의 삶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신앙을 갖기 전에는 독종과 악질, 세상 망종으로 살았다는 그는 그래서 지금까지의 삶에 있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신앙을 갖기 이전의 오랜 동안의 허송세월’이라고 말한다. 아까운 시간들을 너무 많이 무의미하게 보냈다는 것.

따라서 앞으로의 남은 삶은 자신이 받은 은혜만큼 되돌려 주려 한단다. 남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것. 아울러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멋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그간 너무 바빠 영화 제작에 착수하진 못했지만 이미 지난 해 NM FILM(NM은 NEW MILLENIUM, NEW MAN, NEW MOVIE 등의 의미)이라는 영화사를 설립해 둔 상태다.

종교만큼이나 가족 역시 그의 삶의 중심축이다. 특히 “친구이자 누이, 엄마, 애 같다.”는 부인과는 아직도 돈독한 사랑을 바탕으로 아기자기한 사랑을 나누며 산다.

“아내라기보다 나하고 같이 가고 있는 사람, 그냥 있어서 좋은 그런 사람 있죠? 지금까지 아내 말고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한눈 팔아본 적 없어요. 우리 사이는 천하없는 누가 와서 깨트리려고 해도 절대 안 깨져요.”

일사후퇴 때 부산에서 만난 첫사랑이라는 그의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내 얘기를 하며 금방 환한 얼굴이 되는 그가 당부하는 마지막 한 마디는 ‘좀더 포용력있게 남을 사랑하며 살라’는 것.

“바득바득 살아봐야 지나고 나면 다 부질없어요.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누르지 마세요. 다 후회로 남더라구요. 살면서 ‘좀더 사랑할 걸, 더 좋은 일들 많이 할 걸’ 하는 후회가 많이 들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맑게 웃는 그의 순한 미소가 온통 사랑을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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