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주은부부상담심리센터 이주은 원장】
어떤 영화에서 성관계를 요구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가족끼리는 동침하는 거 아니야.”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농담 같은 이야기가 부부 사이의 성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 실소했습니다. 부부 사이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성생활’입니다. 부부의 성관계는 몸으로 하는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가 단절된 부부라면 그 어떤 일도 함께 해 나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로 전달하며 친밀감과 소통의 기쁨을 느끼듯이, 몸으로 하는 대화에서도 소통의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무너진 그 여자 이야기
어스름한 조명 아래 침대에는 발가벗은 남녀가 뒹굴고 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마주보고 깔깔거리며 찍은 동영상이다. 낯선 곳을 배경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도 있다. 동영상과 사진 속 남자는 남편이지만 남편 곁에 있는 행복한 표정의 여자는 내가 아니다. 남편의 노트북에 담겨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동영상과 수많은 사진을 본 날,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반쯤 정신이 나가 집안의 물건을 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TV까지 부서뜨리며 울었다.
미쳐 날뛰는 나를 붙잡고 남편은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그 여자와 헤어지겠다고, 그 여자를 사랑한 것도 아니고 실수일 뿐이라고 했다.
나도 사랑스러운 네 살배기 아들과 아직 세상 빛도 보지 못한 뱃속의 아기를 생각해서라도 이혼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으로 덮는다고 덮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남편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면 숨쉬기 힘들 정도로 불안하다. 뿐만 아니라 남편의 외도 흔적과 증거물을 매일 들여다보고 미칠 듯한 배신감에 치를 떨다, 남편을 향해 그 여자가 그렇게 좋았느냐고 악다구니를 친다.
그러기를 벌써 1년이다. 신앙의 힘으로 이겨보려고 노력도 했고, 아이들을 보며 참아보려고 했지만 안 된다. 이러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 아니 난 벌써 미쳤는지도 모른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멈출 수 없는 그 남자 이야기
아내는 평생 지켜줘야 할 내 사람이다. 내게 아내는 여자라기보다 여동생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부터 바르고 예쁜 아내가 좋았다. 종교도 같고 집안 어른들끼리도 사이가 돈독했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편했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게 사랑인 줄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회사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눈에 띈 그녀는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녀의 육감적인 육체는 숨이 멎을 만큼 자극적이었다. 그녀와 처음 성관계를 맺던 날, 내면에 깊이 숨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느낌이었다. 내 몸 구석구석을 애무해주는 그녀의 손길과 혀, 그리고 내 손길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탄성하는 그녀의 몸짓에 나는 행복했고 지금까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체위도 불사할 만큼 과감해졌다. 그녀와의 섹스는 회를 거듭할수록 나를 걷잡을 수 없게 했고, 진정한 남자임을 느끼게 만들었다.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수시로 발기가 된다.
아내와 성관계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아내와의 관계에서는 그녀와 느꼈던 기쁨이나 환희를 맛본 적이 없었다. 아내 역시 나와 성관계를 하면 언제나 수동적이기 때문에 내가 아내를 만족시켜줬는지 잘 모르겠다.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더 잘해주면 될 거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나도 안다. 이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끊을 수 없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남편의 두 얼굴
부부는 남편의 외도 후 수 개월이 된 상황에서 상담을 왔습니다. 아내가 그 일을 덮어두고 가정을 지켜보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가정생활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남편 휴대전화에 위치 추적을 걸어놓고 하루 종일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그녀는 육아나 살림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아직도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한 자녀가 있는 젊은 부부. 두 사람 모두 이혼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부부의 실제 모습은 결혼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외도 후 남편을 계속 의심하는 아내, 그리고 겉으로는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뉘우친 듯 하지만 실상은 아직도 외도 중인 남편. 이것이 그들의 현실이었습니다.
부부는 가족이지만 혈육이 아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오누이처럼 편하게 지내다 보니 서로에게 성적인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연애를 하며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들 부부가 성관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의무감 같은 행위였습니다. 남편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성관계를 하고 싶고 아내가 자신에게 다가와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워낙 성적으로 소극적이다 보니 그들의 침실 생활은 무덤덤한 일상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남편은 가정을 유지하면서 성적 쾌락은 다른 곳에서 찾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이중심리는 결혼 생활에서 절대 허락될 수 없습니다.
부부에게는 부부 상담 이외에 성의학 클리닉을 권했습니다. 남편은 외도를 통해 자기 부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으니 이제 아내와 함께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그 간의 성생활에 있어 아쉽고 어려웠던 점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함께 노력해 보길 권해야겠지요.
그리고 아내도 그동안 가지고 있던 종교적인 관념으로 남편의 요구를 밀쳐내지만 말고, 육체적 관계를 통해 부부 사이를 더 돈독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한 가지씩 과제를 주었습니다. 먼저, 남편에게는 현재 외도 중인 여성과 철저하게 관계를 청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남편에게 외도를 하는 대신 다른 부분을 더 충실하게 보충하면 된다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며, 아내를 기만하는 행위임을 인식하도록 했습니다. 남편은 외도로 인해 자신의 영혼에도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우자의 지속적인 외도로 인해 아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외면한다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인식해야 하고요. 이러한 부분을 남편은 바로 수긍하며 인정했습니다.
아내에게는 바로 남편의 외도 관련 동영상과 사진, 이메일 등을 폐기하도록 권유했습니다. 위치 추적도 그만두라고 했고요. 남편의 외도에 상처 받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러한 증거물들을 수시로 들춰보는 것은 상처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남편의 행적을 눈으로 확인해야 믿을 수 있다면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외도 증거물과 위치 추적은 부부에게 독이 되고 있습니다. 독을 품고 있으면서 아내는 절대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없겠지요.
성관계는 몸으로 하는 대화
부부는 각각 과제를 지키기로 약속했고, 성의학 클리닉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이 부부는 다시 상담실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들 부부에게는 ‘성관계’ 못지않게 오랜 세월 끈끈하게 이어준 끈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극복하고 회복했으리라 믿습니다.
부부의 성관계는 몸으로 하는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로 전달하며 친밀감과 소통의 기쁨을 느끼듯이, 몸으로 하는 대화에서도 상대방의 느낌을 확인하고 자신이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요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한 부부의 침실에서는 성관계라는 행위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함께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해주는 풍부한 스킨십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부만의 시간은 많을수록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