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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불안 초조의 11년… 그리고 되찾은 행복, 어느 에이즈 환자의 2005년 희망가

2005년 02월 건강다이제스트 도약호 74p

【건강다이제스트 | 윤말희 기자】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차별을 버려주세요”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에이즈 감염자 수는 4000만 명에 이르며, 우리나라는 현재 3000여 명이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우리나라 감염자 수가 미미한 편이지만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출 경우 급속도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더욱이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차별로 감염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분위기 개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본지에서는 어느 에이즈 환자의 투병기를 통해서 그들이 받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무게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94년 1월 1일 김용수(가명, 39세) 씨는 심한 고열과 함께 목감기 증세로 새해 아침부터 몸 상태가 영 안 좋았다. 그저 독감으로 생각한 그는 일반 내과를 찾아갔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사나 약은 전혀 소용이 없었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고열과 근육통은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이렇게 몇달 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고생한 그는 심각한 체중 감소를 제외하고는 차츰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어느 날 불현듯이…

그 해 가을 김용수 씨는 건강도 웬만큼 회복되고 새로운 회사에 출근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친구를 만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작은 에이즈 광고 스티커가 그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설마 내가?’ 라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래도 좀체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스티커를 들고 근처 보건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검사는 간단했다. 혈액을 채취하는 것이 검사의 전부였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그렇게 검사를 했고, 그 결과는 일주일 후쯤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검사를 받은 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1주일 동안은 그야말로 불안 초조의 나날이었어요. 견디다못해 혼자서 청계천 일대의 책방을 뒤지고 서울 시내 커다란 대형서점에 가서 밤낮으로 에이즈에 관한 책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인터넷 보급도 안됐고 에이즈라는 병 자체가 재앙의 상징이었던 시기였어요.”

밤낮으로 그는 에이즈에 관련 책을 찾으러 다니다가 어느 대형서점에서 먼지투성이의 에이즈 관련 서적을 발견하고는 온종일 서점 구석에 서서 읽고 또 읽으면서 에이즈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비록 보건소에서 양성 판정이 나온 상태는 아니었지만 자꾸만 자신의 몸 상태가 목안에 든 가시처럼 못내 걸렸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검사 결과 에이즈 양성판정을 통보받았던 것이다.

“그때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왜 그렇지 않겠어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데…. 마치 큰 해일에 휩싸인 채 숨이 턱턱 막혀오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김용수 씨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에이즈라는 병명으로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갔다. 일과의 대부분이 국립보건소와 집 근처의 보건소를 오가면서 되풀이되는 질문과 검사를 받아가면서 하루하루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씩씩하게 모든 검사에 응했지만 문득문득 엄습하는 아득한 절망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혼자만의 기나긴 투병은 계속되고

심연을 알 수 없는 깊은 절망도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빛이 바래지나보다.

견딜 수 없었던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김용수 씨도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새로운 회사에 출근도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거리가 꽤 먼 곳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또 자신의 힘으로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된 점도 다행으로 여겼다.

이때까지도 가족들은 그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며, 그 또한 철저하게 자신의 병을 숨기면서 약물 치료와 한 달에 한 번의 병원 치료를 받아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약에 대한 부작용으로 입덧을 하고 어지러움증이 심했지만, 더 큰 걱정은 혹시 가족들이 알아챌까 하는 것이었다.

행여 부모님께 들킬까봐 수시로 약병을 숨겨야 했고, 또 제 시간에 약을 맞춰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한 달에 한 번씩 쓰는 월차를 내면서 병원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맞게 된 1997년 IMF는 그에게도 큰 시련이었다. 정리해고를 당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병원 치료를 중단하게 된다. 솔솔찮이 드는 병원비도 부담이었고, 그가 처한 환경도 병원 치료를 계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실직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몸은 점점 더 야위어갔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에는 근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그를 호출했다.

2000년 희비가 교차하고

김용수 씨는 1999년 12월 31일 저녁을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회고한다.

“저녁을 먹고 아버님이 저를 불러 하시는 말씀이 ‘부모자식간에 못하는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 나는 너를 용서보다는 감싸 안을 자신이 있으니 숨기고 있는 것이 있으면 다 말해보아라.’ 이러시는 거예요. 정말 앞이 깜깜하고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김용수 씨는 그때의 상황을 말하면서 온몸의 전율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김용수 씨와 아버지 사이에는 한동안 적막감이 흘렀다. 망설임이 이어진 끝에 그는 결국 부모님께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여자의 성향을 가졌다고 한다. 어머니의 드레스를 좋아했으며 사춘기 시절에는 여자에 대한 호기심을 전혀 못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줄곧 친구들한테 ‘계집애’ 라는 놀림을 당했다. 그러다 군대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고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았다. 성인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에이즈에 감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일반적인 에이즈 감염경로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들어있는 정액이나 질분비액, 혹은 혈액이 성기, 항문, 입, 상처 난 곳, 주사바늘 등에 의해 감염되는데 그의 경우는 남성간의 성적 접촉에 의해서였다. 동성애자의 경우는 대부분 항문 성교가 행해지므로 그 행위시 직장이 손상을 입고 출혈하는 경우가 많아 HIV에 쉽게 감염된 경우였다.

그의 고백은 온 가족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머님이 세 번이나 실신을 거듭하면서 다 당신의 탓이라고 가슴을 쥐어짜는 데 정말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효도를 해야 할 부모님께 그런 고통을 안겨준 제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위로는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에게 “절대로 넌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된다. 네가 먼저 죽으면 네가 묻힌 곳에 나도 바로 묻힐 것이다. 아프지만 당당하고 지금 삶에 있어 최선을 다 해라.” 하면서 응원해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은 김용수 씨는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금은 온가족들이 김용수 씨가 에이즈로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를 자연스럽게 대하지만 처음부터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세탁이나 식사부분에서 가족들이 민감한 태도를 보였고, 그것은 곧바로 그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이해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에이즈라는 병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많은 부분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례로 대화 도중 침이 튀었다고 해서, 혹은 같이 밥을 먹거나 악수를 했다고 해서 에이즈에 감염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성적인 접촉만 없다면 결코 전염되지 않는 것이 에이즈라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아

그는 몇 년 동안 많은 길을 혼자서 걸어왔다. 아무도 모르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자신과 싸우고 또 싸우면서….

이렇게 그가 버틸 수 있던 것은 소중한 가족과 함께 보람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한 단체에서 에이즈 환우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아는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된 단체에서 자기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조언을 주면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에이즈라고 하면 천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곧바로 변태적인 성행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누구나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같은 투병자 중에는 할머니, 주부, 심지어는 갓 태어난 아기도 있습니다. 에이즈는 예측할 수 없는 사고나 다름없는 질병이지만 사람들은 에이즈 환자들을 편협 인 시각으로만 보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렇듯 에이즈는 어떤 특정인만이 걸리는 질병이 아니다. ‘설마?’ 했던 우리들도 감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에이즈를 다른 질병과는 달리 도덕적인 문제를 결부시켜 색안경을 쓰고 본다. 또한 같이 밥을 먹었다고, 대화를 했다고 걸리는 전염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서 에이즈 환자들은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제 이런 시각은 바꿔보는 것이 어떨까? 국가에서는 에이즈를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등록하고 있어 거의 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에이즈 환자는 사회의 비난과 병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감으로 중간에 치료를 포기하고 자포자기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이제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그들을 다른 질병과 같이 대해주고 관심을 갖는다면 그들에게 커다란 용기가 될 것이다. 또한 그들도 에이즈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함께 의사를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특히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재가복지사업이 더욱 활성화되어 그들을 사회로 환원시킬 수 있는 제도적 정비는 시급한 일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밝은 모습으로 에이즈를 투병하는 김용수 씨보다는 음지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는 에이즈 환자들이 더 많다.

지금 우리는 생각의 전환과 함께 행동의 변화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에이즈도 하나의 질병으로 생각하고 편견없이 바라보는 그런 밝은 사회를 2005년도에 기대해 보자.

☞ 에이즈 요약 노트

■정의

에이즈는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 하며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즉 HIV 에 사람이 감염되어 체내 면역체계가 파괴되는 것을 말한다.

■증상

·HIV 감염된 사람들은 수년간 증상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급격히 급성 바이러스감염과 기회감염의 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 감염 후 AIDS 발병까지의 기간은 CD4양성임파구수, 환자의 상태, 치료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며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평균 8 ∼ 10년 만에 에이즈가 발병한다고 한다.

·HIV는 CD4라는 표면 항원을 가진 임파구(CD4양성임파구)를 침입하여 신체의 세포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감염과 종양을 일으키며 신경계에 침입하여 치매, 마비, 신경이상을 유발한다.

■HIV의 감염 경로

HIV는 환자 및 감염자의 혈액, 정액, 질 분비액, 타액, 모유, 소변, 눈물 등에 포함되어 있으나, 실제 감염원으로서 중요한 것은 혈액, 정액, 질 분비액이다. 따라서 HIV는 주로 성행위 및 혈액을 매개로 전파되고, 드물게는 어머니로부터 태아로의 모자감염도 가능하다. 그러나 침, 눈물, 땀에 의한 감염이나 곤충 매개에 의해서는 감염이 일어나지 않는다.

※ 모자감염: HIV를 갖고 있는 보균자인 어머니로부터의 모자감염의 빈도는 30∼50%로서, 감염의 경로는

① 자궁 내의 태아에게 옮기는 태내 감염

② 출산 시나 출산 직후의 감염

③ 모유를 통하여 옮기는 모유경유 감염이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산모에서 출산한 아기들 가운데 약 50%가 에이즈에 감염되고 생후 일년 이내에 에이즈와 관련된 증상을 나타내고, 감염된 아기들 중 대부분은 생후 5년 이내에 사망하게 된다고 한다.

■ 고위험군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은 다음의 경우이다.

·성생활이 문란한 사람: 성생활 파트너가 다수인 사람, 동성연애자, 성생활시 항문을 이용하는 사람

·고위험군의 사람과 성생활 하는 사람
·정맥주사를 많이 하는 사람: 마약 등 빈번히 수혈을 받는 사람
·보건의료요원: 환자의 혈액 채취를 자주 하는 사람
·성병이 흔한 사람: 빈번한 성기의 궤양성 질환, 기타 성감염 질환
·고위험지역에 사는 사람: 아프리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 이럴 땐 의사에게

·특별한 원인이 없이 감기, 혹은 호흡기 질환이 잘 생기는 경우

·특별한 원인이 없이 임파선이 잘 붓는 경우

·피부 질환이 빈번하게 생기는 경우

·성기에 궤양성 질환이나 사마귀 같은 병변이 자주 생기는 경우

·증상이 없더라도 성생활이 건전하지 못한 사람

·증상이 없더라도 에이즈의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

■ 예방법

·성생활 시에 콘돔을 사용하거나 (남자 경우), 질내 살정제를 사용한다. (여자 경우)

·건전한 성생활을 영위한다. 제3 자와의 성생활, 동성연애 등을 피한다.

·불필요한 수혈, 빈번한 정맥내 주사를 피한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은 수시로 에이즈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은 향후 개발될 예방 접종(백신)이 필요할 것이다.
·에이즈환자에서 출산한 아이

■ 치 료

현재 AIDS의 원인인 HIV를 죽이는 약은 없으며, HIV의 증식을 막고 AIDS로 발병되는 것을 늦추기 위해 지도부딘, 라미부딘, 디다노신 등의 항바이러스제제를 병합하여 투여한다. 항바이러스제제의 병합요법은 HIV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약물내성의 위험을 줄임으로써 질병진전 속도를 늦추어 평균 생존기간을 효과적으로 연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치료는 꾸준히 받아야 하고 약에 의한 부작용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전문치료기관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AIDS를 예방하는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효과적인 치료제가 아직 없는 실정이므로 HIV에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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