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최명기(청담하버드 심리센터 연구소장,?정신과전문의)】
끼어들기 했다고 끝까지 쫓아가서 꼭 응징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매사 작은 일에도 불같이 화를 잘 내는 사람! 이런 성격 문제 있다는 건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조금 둔감해지려는 노력이다. 민감한 내 감각을 조금은 둔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노화도 막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 그 방법을 소개한다.
예민한 성격의 함정
의사가 환자에게 부작용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았다가 이상이 생기면 환자의 신뢰를 잃는다. 반면 어떤 환자들은 부작용이 무서워서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 예민한 환자가 계셨다. 부작용을 설명하고 약을 처방할 때마다 항상 부작용이 발생해서 치료 용량까지 약을 올리지 못한다. 급기야 그 환자는 부작용을 설명해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죽을 정도로 심한 부작용이 아니라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의 경우 심리검사를 해보면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아프고, 감정 동요도 심하고, 일이 뜻대로 안 되면 안달복달하는 소견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이 분들의 마음은 도자기처럼 잘 깨지고, 난초처럼 민감하고, 애완견처럼 약하다.
이런 분들에게는 모르는 게 약인 상황이 많다.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때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누가 나를 미워한다는 것을 알아도 복수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이 더 낫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이 낫다. 죽거나 다칠 일이 아니라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따라서 매사 너무 예민해서 고민이라면 조금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감정을 분리하자.
2. 자극을 줄이자.
3. 자극을 바꾸자.
4. 보상을 주자.
1 감정을 분리하자?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면 그에 연관된 감정이 생기게 된다.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다. 마음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다. 생각만 해도 죽고 싶은 것이다.
그럴 때는 일단 감정 그 자체를 마취해야 한다. 이를 뽑을 때 마취를 하면 통증도 느끼지 못하지만 맛도 느끼지 못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생각만 해도 괴로운 일이 있을 때는 감정을 분리해야 한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감정의 격리’라고 표현한다.
감정의 격리현상이 발생하면 너무 괴로운 일을 당했을 때 사건은 기억하지만 감정은 느끼지 못한다. 감정이 배제된 상태에서 사건만 기억하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사건을 감당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슬픔이 찾아온다. 고통도 다시 느낀다. 다시 오랜 시간이 흐르게 되면 사소한 감정들이 되찾아온다.
감정을 조금만 덜 느껴도 덜 예민해질 수 있다. 나를 사람이 아닌 뇌와 심장이라는 생물도구로 작동하는 기계라고 생각해보자. 감정이 조금은 식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는 것을 되새겨 보자. 과거에 엄청나게 나를 괴롭힌 일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다 지나간 과거에 불과하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일 역시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사실로 기억에 남을 뿐 더 이상 마음의 고통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2 자극을 줄이자
환자분 중에는 스마트폰을 쓰다가 일반폰으로 바꾸는 분들이 계시다. SNS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까 힘들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톡에 응답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 보니 계속 스마트폰에 신경을 쓰게 된다. 아무리 안 그래야지 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차라리 스마트폰을 일반 피쳐폰으로 바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휴가 때면 휴대폰도 안 터지고, TV도 없는 곳에 가서 머리를 식히고 오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를 자극이 없는 곳에 가두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뭔가 많은 것을 하면 할수록 자극도 더 많이 받게 마련이다. 긁으면 긁을수록 가려움이 더 심해지듯이 자극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민감해진다.
특히 나를 성가시게 하고 괴롭히는 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더 예민해진다. 나중에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도 짜증을 내게 마련이다.
따라서 나를 괴롭히는 이를 대하는 것을 줄여야 한다. 단 1분이라도, 단 10분이라도 대하는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마음이 편해진다. 1주일에 두 번 대하던 것을 1주일에 1번 대하는 것으로, 1주일에 1번 대하는 것을 한 달에 두 번 만나는 것으로, 매달 만나는 것을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것으로 줄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둔감해질 수 있다.
3 자극을 바꾸자
살다 보면 뭔가 꼭지를 돌게 하는 말이 있다. 똑같은 욕이라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욕이 있다. 똑같은 말이라도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말이 있다. 누군가는 자기 욕을 하는 것은 참지만 부모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다른 욕은 다 참지만 냄새난다는 말을 참지 못한다.
따라서 이럴 때는 상대방에게 차라리 요구를 하자. 제발 그 말만 하지 말아달라고. 욕을 해도 좋으니 다른 욕으로 바꿔달라고. 비난을 해도 좋으니 다른 방식으로 해달라고. 무시는 해도 좋으나 이 부분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욕을 하지 말라, 비난하지 말라, 무시하지 말라는 말은 대체로 해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딱 이것만 하지 말아달라는 것은 통한다. 딱 이것만 다르게 바꿔달라는 것도 통한다.
때로는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연애를 할 때는 잘 지내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다투는 커플이 있다. 연애를 할 때는 뭔가 갈등이 생기면 며칠 안 만나는 동안에 저절로 잊어먹거나 해결되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매일 마주치다 보니 갈등이 커진다.
그리고 연애를 할 때는 주로 밖에서 만난다. 항상 뭔가 할 것이 있다. 뭔가 갈등이 있더라도 잊어먹는다. 결혼을 하면 그때부터는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진다. 더군다나 결혼을 하면서 여성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경우 아내의 모든 신경은 오로지 남편을 향하게 된다.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다른 데 신경을 쓰지 못한다. 이런 경우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더 싸우게 된다. 신경을 분산시키면서 냉각기를 가져야 한다.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면서 냉각기를 가져야 한다. 어차피 해결도 안 될 일에 신경 쓰고 집착하느니 차라리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심리기제 중에서 가장 성숙한 심리기제 중 하나가 유머다. 내가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주위사람도 덩달아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주위사람이 불안해지면 나 역시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럴 때 적절한 농담을 하면 불안과 공포라는 자극이 웃음과 여유라는 자극으로 바뀌게 된다.
4 보상을 주자
똑같은 고통도 돈을 더 많이 받으면 참을 만하고 돈을 못 받으면 참을 수 없게 된다. 똑같은 고통도 충분한 보상이 있다면 참을 만하다. 현실의 사소한 기쁨이 없다면 삶을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식사를 하거나 물을 마셔야 한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쇼핑을 하건, 수다를 떨건, 자랑을 하건 뭔가 보상을 줘서 마음을 달래야 한다.
헛된 희망일지라도 미래에 대해서 상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솝우화에는 <우유 짜는 소녀>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유를 짜서 생계를 이어가던 소녀에게 하루는 어머니가 우유를 팔고 남은 돈을 가져도 된다고 말을 한다. 소녀는 우유통을 머리에 이고 우유를 팔러 가면서 우유를 팔아 달걀을 사고, 달걀을 부화시켜서 병아리를 키우고, 병아리가 닭이 되면 닭을 팔아 돼지를 사고, 돼지를 팔아서 송아지를 사고, 송아지가 소가 되면 소를 팔아서 예쁜 드레스를 사 입게 되면 멋진 청년이 청혼을 할 것이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가 우유를 엎질러서 꿈이 깨어진다.
이 우화에 대해서 엉뚱한데 정신 팔지 말고 하던 일이나 잘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고는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더 나은 미래가 있어야 현재의 고통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0대 아이들이 아이돌에 빠져 사는 것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한심할 수도 있다. 아이돌에 대한 환상이 부쩍 심한 아이들은 현실에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가 있다. 멋진 아이돌의 팬이 되었고 그 아이돌이 자신을 팬으로 아끼고 사랑해준다는 환상을 통해서 부분적이나마 헐벗고 괴로운 마음을 자가 치유하고 싶은 것이다.
자녀가 만약에 아이돌에 대해서 과도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면 하지 말라고 야단을 쳐서 해결할 수 없다. 야단을 치면 아이의 마음이 상처를 받으면서 아이돌에 더욱더 집착을 한다. 아이돌에 환상이 있기 때문에 괴로운 현실에 둔감해질 수 있는 것이다.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다. 삶이 너무 힘들고 매사에 짜증이 난다면 이번 주말에는 로또복권이라도 한 장 사서 잠시라도 일확천금 인생역전을 꿈꿔보자.
우울증 환자들 중에서 유난히 예민한 분이 많다. 특히 여자환자들은 생리 전에 예민해진다. 약을 먹고 예민한 것이 가라앉으면 과거에는 못 견디던 일도 견딜 만해진다. 조현병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과 질환만 문제가 아니다. 갑상선 중독증 환자들 역시 매우 예민하다. 어떤 부부는 매일 격렬하게 부부싸움을 했다. 알고 보니 아내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었다.
누군가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날 때는 가능하면 충분히 식사를 하고 만나자. 배고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둔감해진다. 만약에 너무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대할 때는 중간에 찬물이라도 한 잔 마시자. 물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둔감해진다. 둔한 성격으로 살면 생각보다 세상이 편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1. 감정을 분리하자.
2. 자극을 줄이자.
3. 자극을 바꾸자.
4. 보상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