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최명기(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코끼리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알코올 함량이 7%인 술이라고 한다. 과일이 부패하게 되면 알코올이 발생한다. 그렇게 부패한 과일을 계속 먹다 보면 코끼리도 술에 취하게 된다. 부패한 과일의 알코올 함량이 대략 7%다.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서 취하게 하면 이유 없이 소리를 내고 코로 땅을 때리는 등 그 증상은 인간과 유사하다고 한다. 따라서 만약에 코끼리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매일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자연에서는 다량의 알코올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수 없어서 알코올 중독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드물게 야생 코끼리가 땅 속에서 술단지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에 세찬 바람과 함께 큰 비가 내리면 숲 전체의 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땅속에 파묻히게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열매들이 숙성되어 땅에 고이게 되면 그것이 술과 유사한 성분이 된다.
기근이 닥쳤을 때 코끼리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서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때 자연 숙성된 술을 마시게 되는 수가 있다. 코끼리들도 술을 마시고 취하게 된다. 그런데 일부 코끼리는 한 번 술맛을 알게 되면 혹시 술이 있나 계속 땅을 판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목이 말라서 죽게 되는 코끼리도 생긴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중독은 뇌의 문제?
과거에는 중독을 의지의 문제라고 봤다. 그런데 지금은 의지의 문제 이전에 뇌의 문제로 본다. 중독은 흔히 물질중독과 행위중독으로 구분한다. 술, 마약과 같은 물질에 중독되는 것은 물질중독이라고 한다. 도박, 쇼핑, 게임, 섹스, 도벽과 같은 행위에 중독이 되는 것은 행위중독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독에 빠진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중독으로 풀려고 한다. 중독자들은 자신이 스트레스 때문에 중독에 빠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중독에 빠지지는 않는다. 매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다. 만약에 스트레스 때문에 중독에 빠진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중독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 중에서 중독에 빠지는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중독을 악화시키는 것은 맞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중독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당뇨병이 아닌 사람은 단 것을 먹어도 혈당이 정상범위로 조절된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는 단 것을 먹으면 혈당이 오른다. 마찬가지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모든 사람이 다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독자의 경우 스트레스를 받으면 중독이 악화된다.
흔히 중독에 빠진 이들에 대해서 의지가 약해서 문제라고 한다. 중독자들 중에서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의지가 약해서 중독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1. 바로 지금 멈추자.
2. 자신을 취약한 상태에 방치하지 말자.
3. 중독을 어렵게 만들자.
4. 실패하자마자 다시 시작하자.
1 바로 지금 멈추자
중독자들의 문제는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술이 되었건, 도박이 되었건, 게임이 되었건, 쇼핑이 되었건, 섹스가 되었건 일단 시작하면 멈추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멈춰야 한다. 중독자들이 가장 흔히 하는 말이 “딱 한 번만 더”와 “마지막으로”다. 그런데 지금이 마지막이 되지 못하면 영영 마지막이 오지 않는다. 중독자들은 자신들이 적당히 멈추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만약에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바로 지금 중단해야 한다. 하던 중이라도 중단해야 한다.
2 자신을 취약한 상태에 방치하지 말자
중독자들이 유혹에 약해지는 네 가지 순간이 있다. 배고플 때, 화가 날 때, 외로울 때, 피곤에 지칠 때다. 화가 나 있다면 화를 풀어야 하고, 외로울 땐 혼자 있으면 안 된다. 배가 고프면 뭔가 먹어서 적당한 열량을 취해야 한다. 사람은 잘 참다가도 불행해지면 또다시 시작한다.
그런데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는 위험한 일에 발을 담그면 안 된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위험한 투자를 하다가 가진 것을 모두 날리면 다시 중독에 손을 대게 된다.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규칙적이고 안전하게 살아야 한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삶이 불행해지면 안 된다. 조금은 지루하더라도 사건, 사고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3 중독을 어렵게 만들자
나쁜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관계된 사람도 만나지 말고 관계된 장소도 피해야 한다. 술을 끊기로 했다면서 조금만 마시겠다, 혹은 안 마시겠다며 술자리에 가는 분이 계시다. 그런데 사람들과 즐기기만 하고 술은 안 마시겠다는 것은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 도박이 되었건, 술이 되었건, 게임이 되었건, 섹스가 되었건 중독 대상과 접하면서 절제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순간 이미 파멸이 시작된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황을 피하고 접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특히 음주, 도박, 게임 등은 끼리끼리 모여서 하는 경향이 있다. 중독에 빠지다 보니 보통 사람들과는 멀어지고 중독자끼리 친구가 된다. 더군다나 중독자들은 누군가 집단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면 말리는 경향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였다가 술을 끊은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가 술을 끊자 술친구들은 “왜 이렇게 좋은 것을 안 하냐?”고 하면서 그를 마치 병자처럼 취급했다고 한다.
다른 중독도 마찬가지다. 중독을 함께 하면서 사귄 친구들은 그를 지옥으로 이끄는 악마의 동료다. 절대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독과 관계없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다. 대학교 때 술 때문에 의과대학을 유급하고 나서 술을 끊어버린 이가 있었다. 술을 끊고 나니까 과에서 하는 행사 중 참가할 행사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행사가 모두 술자리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술을 안 마신다고 하니까 선배들이 억지로 술을 먹이려고 해서 동문회도 참가할 수가 없었다. 그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없는 종교모임에 참가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과 함께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으면서 파티를 하는 데 익숙해졌다.
정말 절실히 중독을 고치려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중독과 관련 없는 사람들과 맨 정신에서 순수한 우정을 나누다 보면 과거의 중독 친구들보다 새로 사귄 맨 정신 친구들이 더 진실한 이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4 실패하자마자 다시 시작하자
뭔가를 안 해야지 하고 결심을 하더라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지키는 경우보다 더 흔하다. 모든 중독에는 완치가 없다. 언젠가 한 번은 무너진다. 오랫동안 중독생활에서 벗어나면 ‘이제는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술을 한 잔 마시고, 게임을 한 번 하고, 도박에도 다시 손을 대게 된다.
처음에는 과거 같이 빠져들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러다가 선을 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때 중독자들은 ‘이왕 버린 몸!’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왕 이렇게 된 것 원 없이 한 번 해보자.’고 생각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시 중독에 빠졌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자책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신감이 저하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한심하다. 그러다 보면 중독이, 나쁜 습관이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한 번에 술을 끊는 알코올 중독자는 거의 없다. 단주에 성공한 대부분의 알코올 중독자들은 10년, 20년, 30년 동안 수십 번의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술을 끊게 된다.
도박중독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감옥에 들락날락하고 끊게 되는 사람이 많다. 중독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매일 뭔가를 공부한다고 결심을 해도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건강을 위해서 과식을 줄이고 운동을 하고자 해도 나도 모르게 느슨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더라도 삼일에 이틀 꼴로는 결심을 지킨 것이다. 1년 내내 작심삼일을 하면 1년의 삼분의 이는 목표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실패한 순간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중독에서 벗어난다
중독을 끊는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해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중독에서 벗어난 후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중독에서 벗어나도 인생은 여전히 고달프다. 어디 그뿐인가? 중독에서 벗어나는 경우 처음에는 가족들이 용기도 주고 관심도 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처음의 관심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다들 바빠서 자기 일에만 신경 쓴다. 너무나 외롭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손을 대면 그때는 주위에서 언제 정신 차릴 거냐며 난리가 난다. 그동안 내가 꾹 참았던 것은 다 잊어먹고 단 한 번 실수한 것으로 죽일 놈이 되어버린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기대치를 지녀야 한다. 중독을 끊는다고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중독에서 벗어나도 사람들은 상당기간 나를 감시하는 눈초리로 쳐다볼 것이다. 틀림없이 나는 언젠가 또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기필코 중독에서 벗어날 것이다. 중독에서 벗어나 그것이 내 삶을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도록 노력한다면 중독에서의 탈출은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