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도움말 |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호정규 교수】
“냉이 많아졌다 싶었는데, 가려워서 병원을 찾았더니 글쎄 또 질염이래요.”
30대 직장인 김화선 씨는 잦은 질염으로 마음고생이 심하다. 처음에는 ‘한 번쯤이야, 곧 나아지겠지.’ 생각했지만, 툭하면 걸리는 질염이 이제는 슬슬 걱정된다고. 질이 자궁의 건강과도 직결되는 터. 잦은 질염이 반가울 리 없다. 더군다나 미래의 엄마를 꿈꾸는 가임기 여성이기에 더욱 그렇다. 걸핏하면 걸리는 질염, 대책은 없는 걸까?
질내 환경의 불균형이 질염 유발
입은 우리 몸과 외부환경이 연결되는 곳으로, 감기는 대부분 입을 통해 호흡기의 점막에 균이나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발생한다. 질 역시 여성의 몸, 즉 자궁과 외부환경이 연결되는 통로인데 이러한 질의 점막에 발생하는 감염이 바로 질염이다.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들에게 가장 흔한 질환이다.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호정규 교수는 “건강한 질은 약 pH 4.5 정도의 산성을 띠는데, 다른 균의 침입으로 인해 유산균이 없어지고 혐기성 세균이 증식하면서 이러한 산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질염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한다.
건강한 질 내에는 락토바실러스, 코리네박테리움 등과 같은 질을 산성으로 유지하는 유산균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살고 있는데, 이 균형이 깨지는 것이 바로 질염이라는 것이다.
질염은 크게 감염을 일으키는 원인균에 따라 세균성과 칸디다성, 트리코모나스성으로 나뉜다. 세균성 질염은 가드네넬라균 같은 혐기성 세균이 증식하면서 발생하는 가장 흔한 질염이고, 칸디다성 질염은 칸디다라는 곰팡이균이 원인이며,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트리코모나스라는 기생충에 의해 생기는 질염이다.
특히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전염성이 높기 때문에 한 명이 감염되면 성관계를 맺는 상대방도 반드시 함께 치료를 받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여성과 달리 남성들은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경우도 많다.
호정규 교수는 “일단 기존과 달리 분비물의 양이나 냄새, 색깔 등에서 안 좋은 변화가 있다면 질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질 분비물이 증가하며 가렵고 따갑다. 또 치즈 같은 분비물이 나오지만 감염 원인에 따라 누렇거나 녹색의 콧물 같은 분비물이 나올 수도 있다. 여기에 생선이 썩는 듯한 악취를 풍기기도 한다. 이렇듯 질염은 그 증상이 다양하다.
질내에 존재하는 유산균은 한 번 없어지고 나면 다시 서식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몸 상태나 위생 상태에 따라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일단 정해진 치료를 마친 후 추후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질내 청결을 유지해 감염균이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감염균이 살기 힘든 질내 환경 만들기 요령
생리 전후 더욱 신경 써라
건강한 질내는 약 pH4.5 정도의 산성이지만, 생리 시에는 pH7까지도 올라간다. 즉 질내 환경이 알칼리성을 띤다는 말이다. 이 경우 외부에서 균이 침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며, 생리 시 혈액 역시 세균에게는 더없이 풍부한 영양분이 된다.
따라서 생리 전후에는 세균들의 침입도 더 쉽고 질의 면역력도 떨어져 있는 상태라 질염에 걸릴 확률도 더 높다. 때문에 생리 시 좀 더 세심한 위생 관리가 필요하다.
여성 청결제는 외음부에만 사용하라
시중에 나와 있는 여성 청결제만 하더라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 질염을 예방하기 위해 외음부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자주 씻거나 과다 사용하게 되면 질내 이로운 균들도 함께 죽일 수 있다. 이는 질의 자정작용을 방해해 오히려 질염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때문에 여성 청결제를 사용하더라도 외음부만 씻는 정도로 사용하며, 청결제가 질 내부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질염 치료는 완벽하게 끝내라
질염 치료를 받을 경우 얼마간 약을 먹다가 증상이 호전되면 자기 마음대로 약을 끊는 경우가 많다. 질염을 일으키는 세균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만약 5일치 처방을 받은 후 3~4일 약을 복용하면 대부분의 세균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 증상도 사라진다. 하지만 증상이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세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질내 세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증상이 안 보일 뿐이다.
이 경우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약해지거나 질의 적정 환경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질염은 정해진 치료를 끝까지 마치도록 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증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다 나은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임신부도 치료 받아라
임신 기간 중에 질염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약 복용이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치료를 미루는 임신부들도 있다. 물론 임신을 하게 되면 태아의 건강이 염려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질염은 가능한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다. 질염균의 일부는 조기 진통이나 출산 시 신생아 감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오래 방치할 경우 처음에는 가벼웠던 질염이 요도나 방광에 염증을 일으키거나 드물게는 골반염 등의 합병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일상에서 질염을 예방하는 법
그 외에도 용변 후 항문을 닦을 때 바깥쪽으로 닦는 습관, 질 부위에 심한 자극을 주지 않는 습관 등으로 외음부를 청결히 유지하고 세균 감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외음부가 습해지지 않도록 속옷은 되도록 면제품을 사용하며 꽉 끼는 바지나 통풍이 안 되는 소재의 바지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인체의 면역 기능이 저하되지 않도록 지나친 과로나 스트레스, 음주나 흡연 등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러 소음순 성형 수술, 일명 ‘이쁜이수술’이 성감 개선뿐만 아니라 질염 예방과 치료에도 효과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습한 외음부의 특성상 위생적인 측면에서는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소음순 수술과 질염 발생과의 상관관계는 밝혀진 바 없다.
간혹 식초나 소금물로 살균을 한다거나 성분을 알 수 없는 연고를 구해와 사용하다 오히려 질염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환자 본인의 수치심도 심해지며, 회복기간이 더뎌질 수 있다. 따라서 질염 치료에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은 금물이다.
호정규 교수는 “많은 여성들, 특히 미혼 여성들이 산부인과 방문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질염 자체가 심각한 질환은 아니지만 계속 방치할 경우 자궁 내막염이나 골반염, 심하면 불임 등을 야기할 수도 있는 만큼 이상 증상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가라.”고 조언한다.
호정규 교수는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로, 대한산부인과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진료분야는 습관성유산, 고위험임신, 골반경수술, 미혼여성 및 미성년질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