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신경과 양광익 교수】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건, 2003년 일본 신칸센 열차 사고의 공통점은 뭘까?
3가지 사건 모두 잠이 부족해서 벌어진 참사다. 굳이 이런 참사를 거론하지 않아도 하루라도 잠을 안 잔 적이 있다면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조금이라도 잠이 부족하면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지고, 멍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몸은 천근만근이다.
하물며 이렇게 잠이 부족한 날이 계속된다면? 몸은 고혈압, 당뇨병, 비만 등의 공격에 약한 몸으로 바뀌는 등 시들시들 약해지기 시작한다. 반면 잠만 잘 자보자. 아침이 바뀌고, 하루가 바뀌고, 나아가 인생이 바뀔 수 있다. 자고 싶어도 잠이 안 오는 사람, 잠 잘 시간이 없다는 사람, 잠을 자도 자도 더 자고 싶다는 사람이라면 모두 주목하자. 돈 안 드는 진짜 보약, 꿀잠 자는 법을 알아본다.
내 몸이 참 좋아하는 잠
많은 이가 잠을 자지 않고 일하고,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고, 잠을 자지 않고 논다. 그까짓 잠쯤이야 여기며 쉽게 잠을 포기한다. 하지만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면 잠 대신 다른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수면의 단계는 비렘수면과 렘수면으로 분류된다. 비렘수면은 다시 얕은 잠과 깊은 잠으로 나뉜다. 잠이 들기 시작하면 비렘 얕은 잠으로 시작해 깊은 잠으로 이어지고 다시 얕은 잠으로 넘어가고 렘수면으로 들어간다. 밤에 잠을 잘 때는 이런 주기가 반복된다. 잠이 든 초기에는 비렘수면이 많다가 새벽에는 렘수면의 빈도가 높아진다.
주로 렘수면은 기억을 고착하고 뇌의 발달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비렘수면은 단백질이 합성되고, 성장호르몬이 분비되고, 뇌와 신체가 휴식하며 체온 조절 및 에너지를 보존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신경과 양광익 교수는 “잠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낮에 쌓인 마음과 육체 피로를 해소하고, 기억과 같이 고등 인지 기능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잠은 자연적, 주기적, 일시적, 가역적 현상이다. 인간의 원기를 회복하고, 에너지를 보존하고, 체온 및 면역체계를 조절하고, 신경 단위 간의 통합을 유지한다. 특히 유아 및 아동, 청소년기일수록 성장하고 학습하는 데 있어 수면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잠 부족 대한민국
잠이 부족하면 우리 몸은 비상상태에 돌입한다. 몸은 계속 피곤한 상태이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확 떨어진다. 감정 기복도 심해지고 식욕이 늘어 체중이 늘어난다. 잠이 부족하면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도 촉진해 이런 상황을 오래 지속하면 고혈압, 당뇨, 비만 같은 만성질환에 쉽게 노출된다.
과거 40년 동안 성인의 평균 수명은 2시간이나 줄었다. 양광익 교수는 “예전에는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에 맞춰 잠드는 수동적인 생활이었다면 현대 사회는 24시간이라는 세상의 시계에 맞춰 생활하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부족해졌다.”고 설명한다.
게임 및 오락사업의 발전으로 야간에 다양한 여가를 즐기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돈 잘 버는 것이 최고, 성공하는 것이 최고, 1등이 최고로 불리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충분한 잠은 뒷전으로 밀렸다. 하지만 그렇게 몇 달, 몇 년만 살다 보면 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잠을 잘 자는 것이 축복으로 꼽힌다. 잠을 자고 싶어도 푹 자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자도 자도 졸린다는 사람도 많다. 어떻게 자야 진짜 잠다운 잠을 잘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알아본다.
상황별로 알아보는 꿀잠 자는 법
양광익 교수는 “어떤 상황이든 잠을 잘 자려면 다음의 10가지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①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라.
② 잠자리 소음을 없애고, 온도와 조명을 안락하게 하라.
③ 낮잠은 피하고 자더라도 15분 이내로 제한하라.
④ 낮에 40분 동안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은 수면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늦은 밤의 운동은 도리어 수면에 방해가 된다.
⑤ 카페인이 함유된 음식, 알코올 그리고 니코틴은 피하라. 술은 일시적으로 졸음을 증가시키지만, 아침에 일찍 깨어나게 한다.
⑥ 잠자기 전 과도한 식사를 피하고 적당한 수분 섭취를 해라.
⑦ 수면제의 일상적 사용을 피하라.
⑧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을 피하고 이완하는 것을 배우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
⑨ 잠자리는 수면과 부부 생활을 위해서만 사용하라. 잠자리에 누워서 책을 보거나 TV를 보는 것을 피하라.
⑩ 잠자리에 들어 20분 이내에 잠이 오지 않는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완하고 있다가 피곤한 느낌이 들 때 다시 잠자리에 들자.
1. 자고 싶은 나, 유난히 잠이 들지 않는다면?
잠은 졸려야 잘 수 있다. 자려고 애를 쓰면 잠은 오히려 도망간다. 양광익 교수는 “이를 조건화 각성이라고 하며 밤에 잠을 못 잘 것 같은 과도한 걱정을 하면 오히려 더 잠들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이때는 과감히 어차피 잠이 안 오니까 차라리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하자고 마음먹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더불어 앞에서 밝힌 10가지 기본원칙을 지키자.
2. 잠이 모자란 나, 어떻게 보충할까?
업무나 공부로 인해 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집중적으로 할 일을 빨리 마무리하자. 그리고 휴식 개념의 TV 시청, 인터넷 서핑, SNS 소통, 야식 등의 행동을 삼가고 그 시간을 잠자는 시간으로 쓴다.
주말에 잠을 몰아 자지 말고 주중보다 1~2시간 정도 더 자는 것이 좋다. 주말에 주중보다 2시간 이상 더 자면 월요일 낮 생활에 방해가 된다. 양광익 교수는 “일요일에 평소보다 4시간 더 자면 마치 4시간 시차가 있는 곳에 여행을 다녀오는 것 같은 컨디션을 느낀다.”고 조언한다.
3. 자도 자도 졸린 나, 문제 있는 건 아닐까?
졸음이 심하게 오는 것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한 정상적인 현상일 수 있다. 보통 청소년이나 젊은 층이 자도 자도 졸린 일이 많다. 자정 넘게까지 TV, 인터넷, 게임, 술자리, 공부, 직장 업무를 하면 잠은 늦게 자고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하므로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규칙적으로 자는 것이 최고다. 최대한 일찍 일상생활을 끝내고 잠부터 자자. 이를 위해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양광익 교수는 “코골이, 수면 무호흡과 같은 수면장애가 있어도 잠이 계속 오고, 이러한 경우 외에도 낮에 계속 졸리면 기면병과 같은 중추수면과다증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4. 코골이 및 수면 무호흡인 나, 어떻게 할까?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이 발생하는 이유는 잠잘 때 기도가 심하게 좁아져 공기가 기도를 통과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숨을 쉬기 위해 뇌가 신호를 보내고 횡격막과 가슴근육은 더욱 힘을 주게 되어 결과적으로 잠이 자주 깰 수밖에 없다. 살이 찌고, 나이가 많은 남자거나 코에 문제가 있으면 더 잘 생기고 술이나 수면제를 먹으면 근육의 긴장도가 더 떨어져 기도가 더 잘 막힌다.
양광익 교수는 “수면 무호흡 증상이 오래 지속되면 혈압이 올라가며 심장부전, 부정맥, 심근경색증 및 뇌졸중과 같은 심뇌혈관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증상이 있다면 수면클리닉을 방문해 양압기 및 구강 장치와 같은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5. 술이나 수면제 아니면 잠을 못 자는 나, 잘 자는 방법은?
술은 졸리게는 하지만 숙면을 방해하고 잠이 일찍 깨게 한다. 술기운으로 잠자는 습관은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
수면제는 먹을 때만 효과가 있고 약을 끊으면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양광익 교수는 “일반적으로 최면 진정 효과가 있는 수면제를 먹으려면 불면증의 정확한 진단 및 원인에 대한 치료가 먼저”라며 “수면제는 불면증의 원인이 되는 수면장애를 감별하고 약물 남용의 가능성을 고려해서 단기 및 간헐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잠에 대한 두려움, 불안 등을 없애고 잘못된 수면 행동을 교정해주는 불면증 인지행동 치료는 불면증에 효과가 좋다. 최근 미국수면의학회는 만성 불면증 환자를 위한 약물 치료는 반드시 인지행동 치료를 먼저 한 후 고려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도 했다. 인지행동치료는 효과는 좋지만 수면제처럼 바로 잠이 오지 않는다. 대개 3~4주 이후부터 효과가 나타난다.
<TIP. 나는 얼마나 자야 할까?>
일반적으로 잠은 영유아기는 16시간, 소아기는 10~11시간, 청소년기는 9시간, 정상 성인은 7~8시간씩 자야 한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사람마다 필요한 수면 시간은 차이가 있다. 유전적 요소와 환경 등이 수면 시간의 길이에 영향을 준다. 양광익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서 피곤하지 않거나 낮에 활동할 때 졸리지 않은 상태라면 필요한 만큼 충분히 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한다.
양광익 교수는 폐쇄수면무호흡의 양압기 적정 및 치료, 불면증 인지행동치료, 기면병 및 주간졸림과다, 수면다원검사 판독 등을 전문으로 진료한다. 대한수면연구학회 최우수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대한수면연구학회 총무이사, Journal of Sleep Medicine 편집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