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 기자】
【도움말 |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도움말 | 장수과학연구센터 권기선 센터장】
장수는 인간의 꿈이다. 고가의 건강식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다. 사람들은 유기농 식품을 먹고, 헬스클럽의 러닝머신을 뛰면서 오래 살기를 소망한다. 100세까지 ‘건강 장수’하는 비결이 있을까? 노화연구 전문가들을 만나 장수의 조건을 물었다.
여성은 왜 남성보다 장수할까?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밝힌 한국 장수인의 5대 특징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열심히 적응하고 ▲보신補身 음식이나 약물에 휩쓸리지 않고 ▲잘 느끼고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는 제주도 같은 여성 장수촌이다. 나가노는 남성 장수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같은 지역이다. 세계 장수촌은 거의 비슷하다. 장수의 법칙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남성·여성 장수인 비율이 1대 12다. 남성은 같이 살아야 장수한 반면 여성은 혼자 살아도 장수한다. 특히 여성의 평균 수명은 남성보다 높다. 여성은 남성보다 기초대사량이 10% 정도 낮다. 산소 소비율도 차이를 보인다. 체내 대사 과정 중의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활성산소에 노출되는 정도가 남성보다 낮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비타민 E와 같이 항산화 작용을 갖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항산화능력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권기선 장수과학연구센터장은 “최근에는 성염색체의 차이가 평균수명 차이와 연관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X염색체를 하나 더 갖고 있는 여성이 X와 Y염색체를 각각 하나씩 갖고 있는 남성보다 X염색체에서 발현되는 단백질들의 체내 수준이 높아 남성보다 노화 진행이 느리고, 질병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장수의 1원칙…?운동은 장수의 ‘명약’
장수인들은 해발 200~300m의 중산간지역에 산다. 지형적 환경은 장수에 영향을 끼친다. 환경이 문화를 만들고, 식생활 패턴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장수인이 많은 전북 순창군, 전남 곡성군은 산간지역이다. 반면 평야지대인 전북 김제시·익산시는 장수인이 많지 않다. 산간지역에는 나물이 많다. 또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이 일상생활이다. 평지에 사는 노인들보다 운동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장수학 권위자인 박상철 서울대 의대 교수(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는 “나이가 들면 심폐기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비탈길을 자주 올라 심폐기능에 자극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등산하면 좋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꿈꿀 게 아니라 우면산, 청계산을 내 집처럼 올라 다녀야 장수한다는 얘기다.
권 센터장은 “노화에 의한 근육량 감소를 늦춰야 건강 장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화로 근육량이 줄면 활동 장애가 생긴다. 2차적으로 노인성질병-대사성질환, 심혈관질환 등-을 악화시킨다. 건강 수명을 늦추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운동은 능동적·적극적으로 노화를 제어하는 치료법이다.
운동이 장수에 도움이 되려면 노동이 돼선 안 된다. 즐겁게 해야 한다. 지루하게 반복되지 않고, 과격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운동이 좋다. 일주일에 3~4회, 40분~1시간쯤 하면 좋다. 운동 강도는 60~70% 수준으로 한다. 속옷에 땀이 살짝 배는 정도다.
지나치게 운동해 근육에 무리를 주면 안 되지만, 노년에도 보통 때보다 조금 지나치다 느낄 정도로 운동하는 게 좋다. 근육에 부하가 들어갈 만큼 몸 전체에 자극이 되도록 골고루 해야 한다.
유산소 운동은 심폐기능 유지에 좋다. 그런데 최근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무산소 근력운동이 장수에 필요한 근육을 유지하는데 유산소 운동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권 센터장은 “50대에 근력운동을 한 달만 해도 당뇨 수치와 혈압이 떨어진다.”며“웨이트 훈련이 노인 건강운동으로 중요하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년기엔 춤체조도 좋다.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고 유연성을 길러준다.
장수의 2원칙 … 움직여라, 시계추처럼 살아라
일을 찾아 현장에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오래 산다. 노령인구의 증가로 실버 직업박람회가 생길 정도다. 실직과 구조조정으로 40대에 직장을 그만두는 이들도 적지 않다.
권 센터장은 “갑작스럽게 생활 습관이 흐트러지면 생리 기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노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불가피하게 은퇴하더라도 일을 놓지 않아야 한다. 자원봉사도 좋다. 배움을 멈춰선 안 된다. 대학에 편입해 새로운 학문의 세계에 빠지는 것도 방법이다. 인생 2모작을 넘어 인생 3모작이 필요한 시대다.
규칙성은 장수인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시계추처럼 살면 장수한다. 일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여야 오래 산다.
장수의 3원칙… 이웃과 어울려라
남성 장수인이 적은 것은 어울릴 줄 몰라서다. 여성은 노년에도 동네일에 참견하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논다. 남성은 할 일이 없어 빈둥댄다. 정년퇴직 후 사회와 단절되면서 인맥이 흔들린다. 회사인간이 맞는 노년은 외롭다. 특히 남성들은 ‘왕년에~’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잘 나가던 젊은 시절을 떠올려봤자 장수에 도움이 안 된다. 과거에 집착하면 장수하기 어렵다. 뒤바뀐 세상을 받아들여라. 손자, 손녀들과 화상통화도 하고 컴퓨터 채팅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박 교수는 “어려선 부모, 젊어선 아내, 늙어선 며느리에게 의존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며 “주변사람들에게 부양받지 않고 혼자 주도적으로 인생을 꾸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장수지역은 지형이 험하지 않고 비교적 온난한 기후를 갖고 있다. 전남, 제주가 여성 장수 지역이다. 남성의 장수 지역은 험하고, 겨울에 춥고, 강설량이 많다. 강원도, 경북 북부 지방이다. 박 교수는 “거칠고 험한 지형에선 남성들이 가족을 돌보고 가사를 주도적으로 이끌기 때문”이라며 “활동량이 늘어나므로 장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수인들은 사람 만나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고,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를 사귄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대인관계가 장수에 도움이 된다.
장수의 4원칙… 음식은 규칙적으로 적당량 섭취하라
음식은 장수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박 교수는 “식食은 ‘플러스알파’일 뿐”이라며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수식품이나 약물보다 해로운 음식, 과음·과식이 나쁘다는 얘기다.
장수인들은 제때 정해진 양을 먹는다. 음식 재료나 조리법보다 규칙성이 중요하다. 활동에 따라 식사량은 달라진다. 박 교수는 “소식이 장수 비결은 아니다.”라며 “잘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단,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되 과식하지 않아야 한다.
고기는 숯불에 굽지 말고 삶아 먹어야 좋다. 단백질은 가열하면 온도가 높을수록 발암성 물질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생선이든 구워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일본 오키나와에선 주민들이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 고기를 삶아서 먹는다는 게 흥미롭다.
나물은 데친 후 무쳐 먹는 게 좋다. 생채소보다 5배 이상 섭취할 수 있고, 독성물질도 빠져 나간다. 전통식인 마늘, 생강, 고추 등 향신료는 노화와 퇴행성 병변과 관계가 깊다. 전통식은 장수식이다. 된장, 간장, 고추장 같은 발효식품에선 비타민 B12가 다량 검출됐다. 채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보충해야 할 영양제가 비타민 B12다.
장수의 5원칙… 능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라
박 교수는 “‘불원천 불우인 행지 여지 습지不怨天 不尤人 行之 與之 習之’하면 장수한다.”고 말했다. 하늘을 원망하지도, 다른 사람을 탓하지도 말고 ‘하고 주고 배우라’는 것이다.
부부 관계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가족이 화목해야 한다. 하지만 부부관계가 나쁜 이들이 장수인이 된 것은 힘든 역경에도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적응력이 뛰어나야 장수한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장수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나 지역에 대한 불평이 별로 없다. 환경을 담담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기고집과 주장이 강한 편이지만, 운명이나 현실에 순응하는 면도 있다.
장수의 6원칙… 긍정적인 성격이 장수한다
장수하려면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따질 줄 알아야 한다. 장수인들은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감정을 발산할 줄 안다. 할 말은 하고 산다. 또 낙관적이고 느긋하다. 박 교수는 “대부분 사교성이 높고, 불안해하지 않으며, 자아가 강하면서도 적절하게 제어할 줄 알고, 나눠줄 줄 아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는 양면성을 갖는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심장과 위에 타격을 주므로 노인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수명을 줄이는 질병의 원인이다. 그런데 같은 성격의 스트레스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여유를 갖는 게 장수에 도움이 된다. 문제를 인정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스트레스에서 해방된다.
늙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해야 한다. 박 교수는 “최근 안티에이징이 유행하면서 노화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며 “나이 먹는다는 사실을 당당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수의 7원칙… 금연하고 절주하라
규칙성과 함께 장수인들의 공통된 특성이 있다. 바로 절제와 중용이다. 장수 노인 85%가 평균 8시간 이상 잠자고 73%가 금연, 80%가 금주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술과 담배는 몸의 해독 작용에 무리를 일으킬 수 있고 적절한 휴식에 해롭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일본 도쿄종합노화연구소 야스유키 돈도 박사는 “금연, 절주, 규칙적인 운동 등 자기조절 능력이 있는 남녀는 장수와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지나친 음주와 흡연을 피하라. 신체 회복과 치유능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피하고 숙면해야 한다.
장수의 8원칙… 장수 유전자는 있다
장수 유전자는 존재한다. 부모가 장수하면 자녀도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 생명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꼬마선충, 초파리, 마우스를 이용한 장수유전자나 장수약물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권 센터장은 “인슐린(유사)내분비, 탄수화물대사, 텔로미어 등과 관련된 노화신호전달경로가 존재한다는 가설이 밝혀졌다.”며 “실험동물에서 알려진 노화과정에 대한 원리가 바로 인간에게 적용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이 일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수 연구는 초보적인 상태다. 2008년에는 100세 이상 초장수인들에게서 공통된 변이 유전자(인슐린유사수용체)가 발견됐다는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인간을 오래 살게 하는 장수 관련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학설에 대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다른 연구결과에 의하면 가장 오래 산 사람 중 한 명이었던 남성에게서 장수 유전자의 어떤 변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유전보다 생활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서양인들은 육식을 즐기기 때문에 심혈관질환 사망률이 가장 높고, 이와 관련된 유전자가 장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제1 사망 원인이 암이기 때문에 이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장수 유전자는 있지만, 환경이 장수에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박상철 교수는 국제노화학회장, 국제백세인연구단 의장을 지낸 국내의 대표적인 노화연구 전문가다. <한국의 백세인> 등을 썼다.
권기선 센터장은 서울대 미생물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과학기술연합대학원(UST)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