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10년 넘게 당뇨병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매일 혈당 측정을 하며 관리해 온 J씨(52세ㆍ여). 근래에 들어 혈당 조절에 어려움을 겪자 혈당을 떨어뜨려주는 인슐린 주사까지 맞는 중증 당뇨병 환자가 되었다. 고생하던 그녀가 당뇨 수술을 받은 건 한달 전이다. 이제는 혈당 수치가 정상이 돼 평소 꿈도 못 꾸던 설탕이 듬뿍 든 케이크까지 먹으며 눈물을 쏟았다. 환자를 평생 괴롭히는 질병으로 악명 높은 대표 난치병인 당뇨를 치료한다는 이 수술, 당뇨 환자에게 새 희망이 될까??
당뇨 수술 후 85%가 혈당 정상
우리나라의 당뇨환자는 약 400만 명. 일상생활의 불편함이나 합병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찾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보통 당뇨병은 뾰족한 대안 없이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하면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00년 전후 미국과 유럽에서 당뇨병을 수술로 치료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지난 2006년 세계 주요국의 외과 전문가 그룹 회의에서는 ‘당뇨 수술’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인하대병원 외과 허윤석 교수팀이 진행해 주목을 받고 있다. 허윤석 교수팀이 최근 대한외과학회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9월부터 11월까지 2달간 평균 10년 넘게 당뇨를 앓은 환자 14명에게 수술을 했다. 연구팀은 수술 전과 수술 후 일주일 단위로 환자들의 상태를 진단했다. 그 결과 12명(85%)이 인슐린 주사나 혈당강하제 없이 혈당이 정상 수치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 수치로 나타난 12명 외에 나머지 2명도 정상수치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 혈당 개선 효과가 높았다. 인슐린 투여를 약으로 바꾸거나 꾸준히 먹던 약을 줄이는 등 개선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 결과상으로는 나빠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 집중 조명받고 있다. 허윤석 교수는 “수술 후 대부분 식사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당뇨가 조절돼 식사 시작 당일에 인슐린을 끊고, 현재는 혈당 검사도 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만수술의 경우는 위장을 축소하고, 소장을 연결시켜 위장의 기능이 없어지게 되지만 이 수술은 위장이 그대로 남아있어 위가 없어져 생기는 불편도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유사한 방식으로 수술을 진행하는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외과 김응국ㆍ이용찬 교수팀과 순천향대병원 허경렬 교수팀의 발표 자료에서도, 수술 후 80%가 약물 의존 없이 혈당 조절이 잘 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 위장과 십이지장을 분리한다.
2. 소장을 중간에서 잘라 분리한다.
3. 잘린 소장을 위로 올려 위장과 바로 연결한다.
4. 십이지장과 연결된 소장은 소장 중간에 갖다 붙인다. 음식물이 접하는 소화기 효소는 위장, 소장, 십이지장순으로 바뀐다.
음식 경로 바꿔주자 혈당 낮아져
당뇨 수술은 한 마디로 위 모양을 바꿔 음식물 경로를 전환하는 ‘십이지장 우회술’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이 십이지장과 소장의 앞부분을 지날 때 상대적으로 인슐린 작용이 떨어지는 반면 음식이 소장 중간 부분을 지날 때는 인슐린 작용이 높아지는 점을 이용했다. 위장→십이지장→소장 순서로 음식물을 소화하는 우리 몸에 우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위장에서 십이지장으로 이어지는 부위를 잘라 둘을 분리시킨다. 소장도 중간에 잘라 분리한다. 중도에 잘린 소장을 바로 위장에 붙인다. 그 후 섭취한 음식물은 위장에서 소장으로 바로 넘어가고 십이지장은 뒤늦게 소장에 합류하게 된다. 음식물이 소화기를 지나는 순서가 위장→소장→십이지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허윤석 교수는 “이런 우회로가 혈당과 관련된 호르몬의 효율을 개선하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외과 전문의인 허 교수는 그동안 위암 수술을 약 2000건 진행한 바 있다. 그중 당뇨를 앓고 있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 당시에 지금의 당뇨 수술과 유사한 수술을 한 사람들이 부수적으로 당뇨 개선 효과를 본 것에서 착안했다.
처음엔 잘 못 먹고, 흡수력이 떨어지니 당뇨가 좋아지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식사나 흡수변화가 아니라 2형 당뇨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인슐린 저항성이 개선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위암 환자가 아닌 이상 멀쩡한 위장을 절제할 수 없는 노릇. 아예 위장을 건드리지 않고 우회로 수술만 하는 방법을 시도하게 되었다.
마른 당뇨 많은 국내 환자에게 ‘적합’
십이지장 우회술은 마른 당뇨로 불리는 정상 체중, 2형 당뇨 환자가 대상이다. 마른 당뇨는 서구에는 흔치 않지만 국내는 40% 정도로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2형 당뇨는 유전적인 영향이 높다. 비만이나 노화, 스트레스 등으로 진행되고 췌장의 인슐린 분비가 감소됐거나 비교적 정상이다. 약물, 운동, 식이요법 등 일반적인 치료로는 당뇨 합병증 예방과 완치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1형 당뇨는 자가 면역기전이나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췌장이 파괴돼 갑자기 발병하고 췌장의 인슐린 분비가 완전히 결핍된다.
당뇨 수술은 당뇨 원인 자체를 고치는 것이 아니다. 인슐린 조절능력이 어느 정도 남아있으나 저항성에 문제가 있는 2형 당뇨 환자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몸에 인슐린 생산 능력이 없는 1형 당뇨 환자는 해당하지 않는다.
2형 당뇨도 오래 앓으면 1형 당뇨에 가까워질 수 있다. 처음엔 당뇨 진단 후 10년 이상 경과한 환자는 수술 효과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15년이나 18년 된 환자도 수술로 정상 수치를 얻었다. 허윤석 교수는 “무조건 기간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며 “인슐린 분비능력이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당뇨학회 등 일부 의학계에서 장기적인 효과가 검증된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관해 허윤석 교수는 “이미 위암 수술이나 비만 수술로 안전성과 효과가 수십 년간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당뇨 수술 자체로도 꾸준히 성과를 축적해야 함은 맞지만 수술 데이터를 보면 논란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허윤석 교수가 답하는 당뇨 수술, 이점이 궁금해요
Q : 수술 회복 기간은?
A : 수술 후 3~4일째부터 식사를 시작한다. 일주일쯤이면 상처가 거의 낫고, 안정적으로 회복한 상태가 되므로 퇴원한다. 외국은 2~3일 후면 퇴원하는 추세지만 우린 도입 단계라 아직 다소 길게 지켜보는 편이다.
Q : 수술 후 주의 사항은?
A : 별다른 것은 없다. 당뇨 환자의 생활 수칙이 일반인에게 해가 될 것은 없으니 식이요법과 운동을 적절히 해주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Q : 당뇨 합병증에 걸린 사람도 수술할 수 있나?
A : 가능하다. 단 이미 진행된 합병증 치료는 안 된다. 병든 장기를 되돌릴 순 없다. 그러나 당뇨 자체는 좋아지니 합병증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Q : 당뇨 수술은 최후의 선택인가?
A : 너무 오래돼 1형 당뇨가 되면 오히려 수술이 불가능하다. 환자가 평소 생활을 조절하지 못해 당뇨 합병증으로 치명적 질병이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조절이 어려운 사람이 최후로 선택할 수도 있고, 합병증 예방 등에 앞서 최선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