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도움말 |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는 아내는 똑똑하고 유능한 커리어우먼이다. 남편 역시 일은 하지만 아내보다 수입이 적고 직장도 불안정하다. 맞벌이 부부가 대세인 요즘, 남편보다 더 활발한 사회활동과 뛰어난 업무능력으로 ‘알파걸’이라 불리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알파걸’과 비교되며 ‘베타보이’라고 불리는 남성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다. 이러다가 여성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이 둘의 조화, 정말 불가능할까?
#남편의 고민 “나보다 잘난 아내, 어쩐지 기죽어”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연애시절 나보다 똑똑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해 더 많이 배운 아내가 참 좋았다. 무슨 일이든 똑 부러지게 처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여자라면 결혼해서도 세상을 함께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결혼 후 내 생각은 바뀌고 말았다. 무슨 일이든 꼼꼼하고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아내 옆에서 나란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언제부턴가 집안 행사나 모임에서도 아내의 목소리는 커졌다. 집을 구할 때도, 부모님 용돈을 드릴 때도, 이사를 갈 때도. 하물며 마트에서 우유 하나 살 때도 아내는 “당신은 이런 거 모르지? 이거 다 비교해 보고 사야 좋은 걸 살 수 있어.”라며 모든 결정을 도맡아 했다. 어떨 때는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기도 했다.
이제 아내는 회사에서 승진도 나보다 빠르고 연봉도 더 높다. 얼마 전부터는 퇴근하고 나서 영어학원도 다닌다. 물론 자기 일에 열정적인 아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퇴근 후 아내를 기다릴 때면 내가 못난 사람인 것 같아서 어쩐지 기분이 착잡하다. 그렇다고 아내가 놀고 들어온 것도 아니라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아내가 잘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아내 곁에서 무능력하고 모자란, 거기에 옹졸한 남편이 되고 만다. 난 그저 허울뿐인 남편이다. 이런 관계가 싫다. 똑똑하고 잘난 아내가 이제는 피곤하다.
#아내의 고민 “남편아, 더 잘 벌고 더 배운 게 죄니?”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얼마 전 남편은 내게 “당신이란 여자 피곤해. 그렇게 잘났으면 나랑 왜 결혼했냐?”며 짜증을 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고 기가 찼다. 결혼 전에는 함께 돈 벌어서 좋다고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던 남편이었다. 나 역시 내 일을 존중해주고, 가정적인 남편이 마음에 들었다. 내 인생에서 남편은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혼 후 그것은 착각이란 것을 알았다. 남편은 잘 덤벙대고 생각보다 무식했다. 어떻게 하면 재테크를 더 잘 할 수 있을지, 어떤 것을 사야 더 좋은 선택인지를 고민하는 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하물며 마트에서 우유 하나를 사도 “저게 맛있어 보이니 그냥 사자.”라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영양성분이나 가격, 유통기한 등은 전혀 따지지 않는다.
또 변변찮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남편은 미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일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큰 열정을 보이지도 않는다. 한심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나라도 열심히 일하고 돈 잘 벌어 집도 얼른 마련하고, 아이에게도 더 좋은 교육을 시켜야지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 승진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영어회화 학원도 끊었다. 피곤하지만 다닐 만했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회식에서 거나하게 취해 들어온 남편은 내게 “잘났으면 다냐? 난 숨이 턱턱 막혀.”라고 폭탄발언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 벌고 많이 배웠다고 피곤하다니, 이런 옹졸한 남편이 어디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결혼이 후회스럽다.
남자, 알파걸에 밀리다
언젠가부터 ‘알파걸’이라는 용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 알파걸이란 그리스 알파벳의 첫 자모인 알파(α)에서 따온 것으로 자아존중감과 독립심이 강하고 또래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과를 내는 능력 있는 여성을 뜻한다.
반면 베타보이는 이러한 알파걸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어느새 알파걸은 남성을 이겨먹고 기죽이는 여성, 베타보이는 찌질한 남성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일찍부터 남녀평등이 구현된 북유럽 국가에서는 국회의원과 장관의 절반이 여성이고,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이 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알파걸, 베타보이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우리나라 역시 이제는 아들 딸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키우다 보니 여성이 동등하게 교육 받고 똑같이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서고 의대와 사법연수원, 공무원 시험에서 성적이 우수한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알파걸이 결혼을 한다면 어떨까?
김미영 소장은 “맞벌이 부부들 가운데 여성이 남편보다 수입이 많거나 학력이 높을 경우 이것이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남자들이여, 알파걸을 인정해라
남성은 ‘아내가 자신의 기를 죽이고 위축되게 한다.’고 주장하고, 여성은 ‘남편이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고 속이 좁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부부 사이에는 다른 다양한 갈등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기는 아내보다 못하다.’는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갈등이 심해지면 남편은 아내가 주장이 세고, 자신을 이기려 든다고 생각한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불행한 남자가 똑똑한 여자랑 사는 남자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똑똑한 여성과 사는 남성이 진짜 불행한 남성일까? 아내에게 밀리는 남편, 아내보다 더 여성스러운 남편이 정말 못난 찌질남일까?
이것은 소위 알파걸이라 불리는 여성들은 남편과 동등하게 가정을 꾸려가길 원하는 반면 대다수의 남편들이 아직까지도 전통적 여성관과 수직적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기도 하다.
김미영 소장은 “오히려 시대의 변화에 맞춰 ‘남성성’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성과 남성은 신체적 구조만 다를 뿐, 똑같은 교육을 받은 동등한 인격체로 사회 역할을 구분 짓는데 남성·여성이라는 성별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남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하진 않는다.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남성보다 경제적 능력이 더 뛰어날 수도, 혹은 남성이 가사적 능력이 더 뛰어날 수도 있다.
김미영 소장은 “다만 가정에서 가장 큰 권력은 경제권”인 만큼, “경제권을 쥔 자가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겨선 안 된다.”고 충고한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알파걸, 베타보이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다. 다만 알파걸, 베타보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스스로가 알파걸, 베타보이라는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