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환상의 짝꿍이 되려면 상대의 마음을 읽고 내 마음을 꺼내놓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지고 볶는 부부싸움이다. 이 싸움이 어떠한 길로 가느냐에 따라 ‘환상’의 커플이 될지, ‘환장’의 커플이 될지 갈린다.
많은 부부가 다양한 이유로 부부싸움을 한다. 부부마다 부부싸움 방식이 다르다. 크게 구분하자면 자주 가볍게 싸우는 부부, 가끔 크게 싸우는 부부가 있다. 어떤 싸움 방식이 좋다, 나쁘다 답은 없다. 하지만 싸움 방식으로 상처를 받았다면 지금 배우자와 잘 싸우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에게 자주 가볍게 싸우는 부부와 가끔 크게 싸우는 부부에게 각각 도움이 되는 맞춤 조언을 들어봤다.
CASE 1. 자주 싸워도 괜찮은지 불안한 남편 이야기
“또 싸워?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지!” 결혼 7년 차 남편 배명훈(가명) 씨와 그의 아내는 5살 된 아들에게 오늘도 잔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싸우지 말라고 할 때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잠시뿐이다. 오늘 아내는 카드명세서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훈 씨가 승진한 기념으로 후배들한테 한턱냈는데 아내는 결제한 금액이 한턱이 아니라 다섯 턱을 낼 수 있는 돈이라고 화를 냈다. 결국 명훈 씨가 다음 달 용돈의 50%를 자진 삭감하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싸움이 끝났다. 10분 후 둘은 언제 싸웠냐 싶을 정도로 머리를 맞대고 다음 달 휴가 여행지를 검색했다.
이렇게 싸우고 나면 명훈 씨는 다른 부부도 다들 싸우며 사는 건지 궁금했다. 싸우면 금방 화해를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싸우는 날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아내의 솔직한 돌직구에 상처받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아내가 싫은 것은 아니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예쁘고 생활력 강한 아내를 만날까 싶다. 흔히 싸우면서 정든다지만 기왕이면 안 싸우고 정들며 살고 싶다.
Q. 자주 가볍게 싸우는 우리 부부 이대로 괜찮을까요?
배명훈 씨 부부처럼 사소한 일로 자주 싸우는 부부가 많다. 이 경우는 이성적으로 풀어간다면 부부 관계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자주 표현을 하니까 나의 욕구와 감정을 배우자에게 잘 알릴 수 있어 서로의 마음 상태를 알기 쉽다. 감정을 보통예금처럼 사용하기에 분노의 축적이 크지 않아 큰 분노의 폭발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부는 감정 여과장치의 오작동이 문제다. 이성적인 대화보다 감정적인 대화로 인해 감정을 다쳐서 이성적인 문제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
자주 가볍게 싸우는 부부 맞춤 솔루션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자주 가볍게 싸우는 부부라면 다음 4가지를 체크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1. 나도 모르게 배운 잘못된 싸움 패턴이 있는지 파악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같은 이유, 같은 말투, 같은 마음가짐으로 싸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있다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배우자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 잘못된 패턴을 의식하며 바꿔나간다.
2. 나도 모르는 화가 내 속에 있는지 살핀다
그동안 살면서 차곡차곡 쌓아 놓은 화를 모두 배우자로 인해 생긴 화라고 오해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본다. 김미영 소장은 “배우자에게 표출하는 분노의 정체를 파악해 보면 그 원인이 자신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3. 말투를 바꾼다
늘 밀어내고 방어하고 공격하는 대화 패턴을 가진 사람이 싸움이 잦다. 부부싸움의 하수는 불편한 점을 감정적으로 표현한다. 상대만 나쁘다고 공격한다. 상처만 남는 싸움이다. 부부싸움의 고수는 이성의 소리로 호소하거나 부탁한다.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전달하는 나 전달법으로 이해시키고 공감을 끌어낸다.
4. 왜곡된 양육관, 경제관을 자각한다
아이 양육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자주 싸운다면 나의 양육관과 경제관이 바람직한지 알아본다. 당연하다시피 해왔던 양육, 돈 관리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인식했으면 노력을 통해 바꾼다.
CASE 2. 별거라는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아내 이야기
3년도 넘은 일이지만 서은선 씨(가명)는 그때가 생생하다. 큰 다툼 끝에 남편은 좀 떨어져 지내고 싶다고 했다. 숨이 막혀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결혼한 지 15년, 두 번째 부부싸움에서 남편은 별거를 이야기했다. 은선 씨가 안 된다고 자신이 달라지겠다고 했지만 남편의 뜻은 확고했다. 그 무렵 시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화해했지만 시어머니가 건강하셨다면 진짜 별거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혼 초부터 남편은 자신의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어 했다. 딱히 바람을 피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남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래도 은선 씨는 남편을 완벽하게 믿지는 않았다. 어디 가는지 매번 확인하고, 휴대폰을 몰래 보기도 하고, 야근 중에 불쑥 회사 앞에 찾아가기도 했다. 남편은 자신을 못 믿는 은선 씨에게 짜증 한 번 안 냈다. 그러다 그날 은선 씨는 남편의 휴대폰을 보다가 들켰다. 얼굴이 벌게진 남편은 그동안의 불만을 한숨에 불같이 쏟아냈다. 은선 씨도 질 수는 없었다. 마음이 떠난 남자와 사는 느낌이어서 비참하다고 쏘아 붙였다. 그랬더니 남편은 은선 씨의 의심과 간섭에 지쳤고 좀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말을 꺼낸 것이었다.
은선 씨는 또 언제 남편의 입에서 떨어져 살자는 말이 나올지 몰라 불안하다. 남편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그날 받았던 충격과 상처가 떠올라 그것도 쉽지 않다.
Q 가끔 크게 싸우는 우리 부부 이대로 괜찮을까요?
이런 부부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서로 상처는 많지만 안 건드리려고 지나치게 참고 있는 것이다. 김미영 소장은 “참는 동안 마음의 벽을 높이 쌓아두었다가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력을 보여 폐허가 된 마음을 복원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표현을 안 할 뿐이지 내면에는 늘 적대감이 있다. 상대를 긍정적으로 볼 힘이 부족해 가끔 있었던 큰 싸움이 점점 잦아질 확률이 높다.
또 다른 하나는 싸움을 잘 하지 않아서 싸울 줄 모르는 부부다. 이런 부부가 싸우면 크게 마음을 다쳐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부부는 사실 부부 애착 형성이 잘된 부부로 일반 부부 이상으로 잘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끔 크게 싸우는 부부 맞춤 솔루션
1. 지나친 인내는 독이다
너무 참으면 배우자는 허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배우자에게 나의 욕구를 드러내고 알리는 것은 부부생활에서 무척 중요하다.
2. 싸움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본다
싸움의 원인을 파악해본다. 꼭 크게 싸울 가치가 있었는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본다. 그럴 만한 일이 아니었다면 충분한 대화를 통해 같은 원인으로 싸우지 않도록 한다.
3. 진정한 사과를 한다
큰 싸움 후에는 사과와 화해로 감정을 풀어야 한다. 잘 안 싸운 부부라면 사과와 화해가 어색할 수 있지만 서로의 상처 치유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4. 대화를 잘하는 부부인지 생각해본다
최근 서로의 마음을 깊이 터놓는 대화를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대화가 없었다면 오해가 큰 싸움을 부르곤 한다. 평소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상황, 기분, 변화 등을 알고 있기만 해도 큰 싸움으로 잘 번지지 않는다.
싸움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흔히 부부는 싸움을 통해 타협을 배우고 포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싸우고 나서 울다가 화해하고 웃는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세운 날이 무뎌지고 둥글둥글해진다.
너무 싸워도 문제지만 싸우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김미영 소장은 “말만 하면 싸워서 상처받기 싫어 말을 안 하는 부부가 많다.”며 “이러다 보면 공감과 경청이 부족해지고 오해, 무관심, 부정적인 언어 사용, 적대적인 반응이 빈번해 부부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불행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부부 갈등도 몸에 생기는 병과 같다. 방치하면 말기 단계로 발전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꿈꿔온 부부생활이 펼쳐질 것이다.
김미영 소장은 부부갈등, 가족갈등 상담전문가다.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법학사이며 서울동부지방법원 이혼상담위원, 한국가족복지학회 상임이사, 여성가족부전문강사연합회 상임대표, KBS·MBC·SBS 상담자문위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