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수술과 여행. 공통점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조합이다.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과장인 김욱성 교수는 수술을 여행처럼 여기는 외과의사다. 환자의 심장이 다시 활기차게 뛸 것을 예상하며 수술 계획을 세울 때 그의 심장은 마치 여행을 앞둔 것처럼 두근댄다. 여행 후기를 찾아보듯 다른 의사는 어떻게 수술했는지 논문을 찾아보고, 온갖 변수를 고려해 여행계획을 짜는 것처럼 실수가 없도록 치밀하게 수술 계획을 짜는 시간이 좋다. 해야 해서 하는 수술이 아닌 마음이 끌려 하는 수술은 높은 성공률로 돌아온다. 심장외과 의사가 ‘천직’이라는 말 이외에는 딱히 어울리는 말이 없는 듯하다. 다른 이의 심장을 살리는 일에 심장이 뛰는 김욱성 교수에게 심장 이야기를 듣고 왔다.
가슴을 뛰게 하는 심장외과
의대생 시절, 외과의사가 되고 싶긴 했지만 심장을 수술하는 흉부외과는 후보에도 없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인턴으로 일할 때 맨 처음 간 곳이 흉부외과였다. 멈춘 심장을 심폐소생술로 다시 뛰게 하고, 죽음 앞까지 갔던 환자가 수술 후 얼마 안 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곳이 흉부외과였다. 응급수술이 많아 규칙적인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심장이 좋아져서 퇴원하는 환자를 볼 때면 가슴이 뛰었다. 김욱성 교수의 흉부외과 의사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시절의 심장과 지금 우리의 심장은 너무나 달라졌다. 심근경색, 협심증과 같은 관상동맥(심장동맥)질환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관상동맥질환이 늘어난 이유로는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한 것과 고령화를 들 수 있습니다. 평소 열량이 높은 음식, 기름진 음식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관상동맥질환이 생기는 연령이 젊어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관상동맥질환은 돌연사의 흔한 원인이라서 숨어있는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가슴이 아프거나 숨쉬기 어려운 증상 없이 심장마비가 첫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돌연사는 젊은 층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심장혈관 문제로 비롯된 돌연사를 예방하려면 심장혈관에 해로운 습관을 당장 버려야 한다. 흡연이 대표적이다.
심장 망치는 나쁜 습관, 담배와 과음
흡연은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확실한 위험인자이며, 담배 하나만 끊어도 관상동맥질환 위험도가 낮아진다.
김욱성 교수도 진료실에서 금연은 꼭 언급한다. 흡연 때문에 검진주기가 짧아진 환자도 있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는 망각은 때론 심장 수술을 계기로 담배를 끊은 이들을 다시 흡연자로 만든다. 수술을 받고 괜찮아지면 몇 년 후 다시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봐오면서 김욱성 교수가 결정한 방법은 병원에 오는 횟수를 조금 늘리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환자가 병원에 오기 보름이나 한 달 전부터는 음식도 신경 쓰고 담배도 안 피우니까 병원에 더 자주 오면 안 되겠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병원에 오기 전에는 더 건강에 신경 쓰는 환자가 많죠. 그래서 환자와 상의해 병원에 오는 주기를 일부러 조금 짧게 하기도 합니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대부분 환자는 짧은 검진 주기에 동의한다. 생명이 달린 심장 수술을 거치면서 얼마나 심장이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금연과 더불어 지나친 술도 심장을 위협한다. 술은 동맥경화를 부추기고 심장 수축 기능을 떨어뜨린다.
환자가 만족하는 진짜 비결
심장 수술 후 환자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금연하고 술을 끊듯 김욱성 교수는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담배를 끊고 술을 찾지 않게 되었다. 미국 의사면허가 있는 김욱성 교수는 몇 년 전 미국 메이오 클리닉(Mayo Clinic) 심장외과에서 의사로 일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심장외과도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결정한 미국행이었다.
그곳에서 최고령 심장외과 임상전임의로 일했던 김욱성 교수는 낯선 환경에서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새벽 5시 30분까지 병원에 갔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 자연스럽게 술을 안 마시게 됐다. 또 메이오클리닉이 있는 미네소타 날씨는 담배를 끊게 했다. 미네소타는 미국에서도 겨울에 춥기로 소문난 곳이다. 흡연 구역은 극소수인 상황에서 시베리아와 다를 바 없는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울 바에 그냥 참다 보니 저절로 끊게 되었다.
“늘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환경의 변화가 금연을 하게 만들었죠. 또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귀국을 환영하는 자리를 여러 번 갖고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몸에 안 맞는 게 느껴졌어요. 사실 술 먹고 느끼는 숙취는 예전과 같은데 제 생각이 달라진 겁니다. 미국에 갔다가 심장에 나쁜 두 가지 습관을 버리고 왔습니다.”
술과 담배를 찾지 않으니 몸이 훨씬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좋아진 것은 김욱성 교수의 몸만이 아니었다. 김욱성 교수가 수술한 환자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김욱성 교수가 메이오클리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병원에 만족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이었다. 한국과 같은 수술을 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도 그곳 환자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얼마 안 가 이유를 쉽게 찾았다. 한국의 병원보다 환자에게 설명을 잘하는 것이었다. 수술 전에는 어떤 수술인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수술 후에는 수술은 어떻게 진행됐으며 앞으로 어떤 상태가 될 것인지 상세히 알려줬다.
그래서 김욱성 교수도 변했다. 예전에도 설명을 잘하는 다정한 의사로 유명했지만 미국에 다녀온 후 더 많은 시간을 환자의 눈높이로 설명하는 데 쏟았다. 환자에게 빼놓지 않고 하는 말도 생겼다. “더 궁금하신 점 없습니까?”다.
심쿵하게 하는 심장 고치는 의사
깊은 공감과 관심으로 환자를 자주 심쿵하게 하는 김욱성 교수는 심장의 경고를 놓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강조한다. 가슴이 쥐어짜듯 아프거나, 가슴을 돌로 누르는 것처럼 묵직하거나, 명치끝이 아프거나, 왼쪽 팔이 저리는 등의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흡연자거나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심장병 가족력 등이 있다면 심장이 보내는 신호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화를 잘 내는 성격이 심장질환이 더 잘 생긴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급하게, 욱하며 살기보다는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심호흡을 하며 한 템포 쉬어가는 것도 좋은 습관입니다.”
운동 역시 심장 건강에 좋지만 심장질환을 앓았다면 피해야 할 상황이 있다. 경쟁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너무 이기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운동하다 보면 가슴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가슴통증이라는 심장의 신호를 헤아리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돌연사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심혈관질환이 있다면 운동할 때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무조건 이긴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와 같은 생각은 깨끗이 버리자.
심장을 지키면 따라오는 행복
김욱성 교수의 의사 인생은 어쩐지 심장과 닮았다. 심장은 잠시도 한눈 파는 일이 없다. 종일 쉬지 않고 뛰어서 산소와 영양분이 든 혈액을 온몸에 보낸다. 김욱성 교수도 늘 생명을 다루는 심장 수술을 해야 하므로 다른 생각이 끼어 들 틈이 없다. 어려운 수술을 한 날은 자다 깬 새벽녘에도 병원에 전화해서 환자의 상태를 묻는다. 몸이 피곤할 때마다 하는 스트레칭과 맨손체조도 수술할 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남의 심장에 김욱성 교수의 몸과 마음을 맞추고 살고 있다. 김욱성 교수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잡생각이 안 나서 좋다.”고 표현한다. 한 번 더 심장 고치는 의사가 천직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남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은 방법을 찾아 헤매는 우리에게 김욱성 교수의 하루는 많은 생각을 던진다. 도움을 받을 때, 도움을 줄 때 중 언제 가슴이 더 벅차고 심장이 뛸까? 행복해지고 싶다면 심장 건강을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시작하자. 그것이 운동이어도 좋고, 금연이면 더 좋다. 김욱성 교수처럼 소중한 것이 제 몫을 할 수 있게 돕고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
《TIP. 김욱성 교수가 제안하는 건강한 심장으로~ 7계명》
1. 금연하고 절주하기
2. 고열량, 기름진 음식 절제하기
3. 화 적게 내고 살기
4.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5. 고혈압, 당뇨병 등 철저히 관리하기
6. 가슴통증 등 심장 증상 그냥 넘기지 않기
7. 충분한 수면과 휴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