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
배우자의 바람은 그 상처가 너무 크다. 바람은 이혼 사유의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크나큰 배신이고 신뢰를 무참히 깨버린다. 그럼에도 바람피운 배우자를 용서하는 사람이 많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다시 잘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 사람이다. 백번 양보해 가정을 지키려 한 사람이다. 그런데 또 바람이 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첫 번째 바람과 두 번째 바람은 그 온도 차가 크다. 상처 위에 또다시 같은 상처를 입으면 낫는 게 쉽지 않다. 첫 번째 바람과 두 번째 바람의 같고도 다른 점을 알아본다.
CASE 1. 이혼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남편 이야기
A 씨는 몇 달 째 아내가 수상했다. 주말 근무가 늘고 야근이 잦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부부관계도 없었다. ‘혹시 바람난 걸까?’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호시탐탐 휴대폰을 노렸다. 그러다 아내가 샤워할 때 메신저, 문자, 통화 내역을 확인했다. 별다른 점은 없었다. 너무 예민했나 싶었다. 이번에는 통신사 내비게이션 앱에 들어가 봤다. 길 안내를 자주 받은 목록에 집 말고 다른 지역 아파트 주소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한 호텔에 간 흔적이 있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떨리는 손으로 다른 지역 주소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를 떠봤다. 친구가 그 지역에서 아내를 봤다는 말을 했다. 아내는 이혼한 친구가 외롭다고 해서 몇 번 그 지역에 간 것뿐이라고 했다. 일단 믿는 척 했다. 아내는 그 일이 있고 난 뒤 야근이 확 줄었다. 주말에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2주일쯤 지나자 또다시 야근이 시작됐다. 아내의 수가 훤히 보였다. 야근한다고 한 날 문제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지하주차장과 지상주차장을 모두 돌았다. 지하주차장 구석에 아내의 차가 있었다.
다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아내의 차를 찍었다. 그날 자정이 넘어 들어온 아내에게 이혼하자는 소리와 함께 주차장 사진을 내밀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더니 호텔에 간 이야기까지 하자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냥 잘해줘서 호기심에 만나왔고 가정을 깰 생각은 없다고 했다. 용서할 수 없었고 용서하기도 싫었다. 다만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당한 충격을 아이들에게 줄 자신이 없었다. 그 후 아내는 가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아직도 A 씨는 이혼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CASE 2. 의부증이었으면 하는 아내 이야기
B 씨는 오늘도 남편에게 의부증 환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1년 전 남편은 바람을 피우다가 걸린 전적이 있다. 그때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기 일쑤였다. B 씨는 남편을 없는 사람 취급했고 남편 역시 집에 오면 아이들하고만 대화했다.
그러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바람의 원인을 모두 B 씨에게 돌렸다. 애교도 없고, 부부관계도 거부하고, 걸핏하면 화를 내서 외로웠다는 거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바람피운 것은 용서할 수 없었지만 사랑받지 못해서 외로웠다는 말은 공감할 수 있었다. B 씨도 그랬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에게 다시 바람을 피우면 모든 재산을 B 씨에게 넘기겠다는 각서를 받고 아이들을 봐서 이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 노력하기로 했다. 평화는 얼마 가지 않았다. 몇 주 전 남편의 주머니에서 와인바 영수증이 나왔다. 소주파 남편이 와인바를 가다니 의심이 갔다. 남편에게 누구랑 갔는지 물었더니 의처증 초기라고 했다. 각서까지 썼는데 무슨 바람이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부쩍 옷에 신경을 쓰는 모습도 의심이 갔다.
그러다 어제는 남편이 자다가 없어졌다. 새벽녘에 집에 들어온 남편의 옷에서 여자 화장품 냄새가 진동했다. 분노에 휩싸여 남편에게 또 바람을 피우냐고 따졌다. 남편은 의처증 환자로 몰고 갔다. 떳떳하면 휴대폰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남편은 숨길 게 없다는 듯 순순히 휴대폰을 건넸다. 그때 마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에게 받으라고 했다.
망설이던 남편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여보세요?”라고 하자 “오빠 잘 들어갔어?”라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B 씨는 그길로 방에 들어가 남편 짐을 싸서 주며 나가라고 했다. 한순간도 남편과 한 공간에 있을 수는 없었다.
바람난 배우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
부부관계는 사랑을 주고받으며 유지된다. 그래서 잠깐의 바람, 한 번의 바람으로도 부부관계는 위기를 맞게 된다. 바람으로 인해 결혼생활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은 남편과 아내 모두 알고 있다.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왜 바람을 피우는 걸까?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다른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때, 배우자가 관계를 거부하거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할 때 바람을 피우는 일이 많다.”고 설명한다. 또한 배우자와의 관계에 자신이 없거나 약점이 있을 때, 성적 매력이 안 느껴질 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을 때도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바람은 배우자에게 큰 상처를 준다. 보통 배우자가 바람피운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도의 흥분 상태가 지속된다. 바람의 증거를 잡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초조하고 불안하다. 점점 몸과 마음이 지치고 온갖 망상과 상상에 시달리게 된다.
김미영 소장은 “외도의 후폭풍은 생각보다 심각하다.”며 “정체성, 정당한 통찰력, 특별한 존재라는 자부심,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자제력, 정의에 대한 믿음, 다른 사람과의 유대감, 삶의 의지를 비롯한 목적의식, 신앙심 등의 상실을 가져온다.”고 덧붙인다.
보통 바람을 피운 배우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화를 내고 무너지는 배우자의 모습을 보며 반성하게 된다. 만약 배우자가 용서해줬다면 다시 바람을 피우지 않고 다시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며 다시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용서한 배우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번의 바람에서 끝나지 않고 두 번째, 세 번째 바람으로 이어지는 일이 곧잘 벌어진다.
첫 번째 바람과 두 번째 바람의 다른 점
무슨 일이든 같은 잘못이 반복될수록 그것을 수습하기 어렵다. 첫 번째 바람을 용서한 배우자에게 닥친 두 번째 이상의 바람은 배우자가 더 믿지 못할 존재라는 확신을 준다.
가장 문제는 희망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바람에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두 번째 이상의 바람을 겪으면 앞으로도 계속 바람을 피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불신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김미영 소장은 “배우자가 두 번 이상의 바람을 피우면 배우자를 믿지 못하는 것 외에 자신이 배우자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열등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고 조언한다.
사실 앞서 밝힌 바람을 피우는 이유가 해결되지 않으면 두 번째 바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바람이 멈추는 것은 일시적으로 도덕성을 회복하고 감정을 잠깐 억제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음 한편에는 불륜이지만 원초적 본능을 충족시켰던 행복했던 추억과 그리움이 자리하다가 배우자와의 사이가 느슨해지면 다시 그 감정을 꺼내 보기 쉽다.
김미영 소장은 “외도 당사자는 담배, 마약, 술이 나쁜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듯 죄의식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경험에 중독이 되어 바람을 계속 피울 수 있다.”고 말한다.
바람아 멈추어다오! 바람 끝낼 부부 솔루션
바람은 부부의 근간을 흔들 불신의 늪으로 몰아간다. 그 기억이나 상처의 흔적은 쉽게 잊히지 않고 불쑥불쑥 떠올라 송곳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두 번 이상의 바람으로 생긴 상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가정을 지키고 싶다면 다음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람피운 배우자가 해야 할 일
1. 불신을 신뢰로 바꾼다.
각서를 쓰거나 통화 내역, 카드결제 내역, 휴대폰 비밀번호 등을 모두 공개한다. 이른 귀가로 잘못된 관계가 끝났음을 증명한다. 김미영 소장은 “돌아왔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한동안의 근신과 협조, 헌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 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늘린다.
신뢰 회복을 위해 배우자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여행을 가거나 산책을 하는 것도 좋다.
3. 깨어진 관계는 조심히 다뤄야 한다.
이혼을 안 한다고 해서 용서가 끝난 것은 아니다. 때때로 배우자가 바람을 언급하며 화를 내거나 잘못을 질책해도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4. 상처받은 배우자의 마음을 헤아린다.
바람을 피우면 부부 사이를 희망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잃는다.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떨어진 자존감을 올려준다.
5. 바람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정한다.
부모의 사이가 안 좋으면 자녀에게도 부부가 행복을 만들어 누리는 법을 전수하지 못한다. 불행을 대물림하는 것이다. 바람피운 것을 자녀가 알게 됐다면 충분히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킨다.
바람으로 상처 입은 배우자가 해야 할 일
1. 자신이 어떤 배우자였는지 돌아본다.
불화를 오랫동안 방치하지 않았는지, 대화하려고 노력했는지, 배우자의 욕구에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성적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생각해보고 부족한 점을 채워나간다.
2. 남녀 차이를 안다.
남녀의 보편적 성 심리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 바라는 점을 이야기해서 욕구가 충족되도록 노력한다.
김미영 소장은 부부갈등, 가족갈등 상담전문가다.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법학사이며 서울동부지방법원 이혼상담위원, 한국가족복지학회 상임이사, 여성가족부전문강사연합회 상임대표, KBS·MBC·SBS 상담자문위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