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흙장난으로 웃음을 빚어요”
모두 가난하고 힘들던 1970년대, 그 한복판에 국민의 주름진 이마를 활짝 펴주던 효자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가 있었다. 당시 땅딸이 이기동과 함께 출연해 안방극장을 주름잡았던 늘씬 미녀 미스 권, 권귀옥 씨(60세). 166㎝의 큰 키에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을 정도로 한 몸매하며 코미디언은 뚱뚱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확 깼다. 미모에, 시청자들을 제대로 웃기는 재능까지 겸비해 지금의 이효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그녀가 도예가가 되었다. 흙으로 웃기려고 흙장난을 친다며 크게 웃는 그녀. 건강한 웃음 비결이 궁금하다.
탤런트에서 희극배우로~
1970년 MBC 공채 2기 탤런트로 방송국에 발을 들였다. 동기생 중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탤런트로는 박원숙, 김자옥이 있다. 탤런트로 들어와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순발력과 위트감각을 보여 당시 코미디계의 대부로부터 희극배우를 권유받았다. 그래서 코미디언이 된 주인공이다.
그녀의 등장은 화려했다. 코미디언은 대부분 뚱뚱하고 웃기게 생겨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깨끗이 날려버렸다. 탄탄한 연기력과 타고난 재능으로 10년간 국민들을 웃기며 그녀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당시는 사회 분위기가 딱딱해서 희로애락을 표현하면 경망스런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였어요. 지금은 모든 관중이 웃을 준비를 하고 보지만, 그땐 팔짱끼고 한 번 해보라는 식이었죠. 웃을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을 웃기는 게 더 어려운 만큼 제대로 웃기는 보람이 있더라고요.”
지금도 그녀는 그 시절 열광적인 사랑을 보내 준 국민들이 여전히 감사하다. 아직도 잊지 않고 그녀를 첫사랑처럼 아련하게 떠올리는 사람들이 고맙다. 또 스스로 어려운 시기에 전국에 웃음꽃을 피워 시름을 덜어냈다는 자부심도 있다.
그녀는 “희극은 비극보다 훨씬 힘든 장르”라고 말한다.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는 “비극을 넘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경지가 희극”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권귀옥, 그녀를 두고 본인 말대로 흙장난 좀 치다가 희극 무대로 돌아와 경험으로 무장된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경험으로 무장된 코미디. 그녀는 “인생의 고통을 겪어봐야 희극을 제대로 연기할 수 있다.”며 자신의 희극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고독과 눈물을 버무리며 흙장난 시작
한창 인기 절정이던 1980년대 중반. 그녀는 모든 활동을 접고 미국행을 택했다. 결혼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김포공항을 떠났던 그녀가 1997년 싱글맘이 되어 돌아왔다. 딸과 함께였다.
그간의 사연이야 구구절절 말로 다 못하지만 17년 만에 고국땅을 다시 밟은 그녀에게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고국의 현실은 가슴 아팠다.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한 가정이 해체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해온 그녀였다. 미국에서도 자원봉사를 꾸준히 했었다. 유난히 버려진 존재에 애착이 갔다는 그녀. 그래서 결심했다.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거나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자녀를 키우다가 부모가 안정을 되찾으면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수양부모협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혼자의 힘으로 딸을 반듯하고 당당하게 키워낸 노하우는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일. 그런 덕분이었을까? 활발한 활동으로 자원봉사대상(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수양부모협회의 후원회장으로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다.
흔히 코미디언은 삶도 유쾌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버거운 것. 브라운관을 벗어나면 다른 사람과 똑같은 희로애락을 겪는다. 오히려 웃기는 사람이라는 편견과 이름값 때문에 더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그녀에게 흙은 좋은 친구였다. 흙으로 고독과 눈물을 버무리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도예를 전공한 적은 없다며 도예가라는 호칭은 과분하단다.
“흙장난은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 좋더라고요. 저는 흙장난쟁이라고 불러주는 게 편해요. 기술적으로는 부족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으려 노력해요. 흙으로 웃기는 거죠.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웃으면 성공이에요.”
벌써 전시회를 두 번이나 열었다. 첫 전시회 때 코미디언이 웬 도예냐고 의아해하던 사람들이 그녀의 두 번째 전시회에 다녀가면서는 즐겁게 웃었다.
건강한 장수 집안, 긍정적 분위기가 비결
본업인 코미디언에 도예가, 수양부모협회 후원회장으로 바쁜 그녀는 예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아직도 한 미모하고, 예전의 몸매 그대로다.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제일이에요. 밝은 생각과 웃음만한 명약이 없어요. 나이 들었다고 어깨에 힘주지 않고, 유치하게 장난치며 살다보니 웃을 일이 많아요.”
몸에 좋다는 비싼 약, 귀한 먹을거리를 찾아 먹는 일은 없다. 스스로 완벽하진 않지만 리틀 베지탈리언(채식주의자)이라고 부를 정도로 채소를 즐긴다. 과식은 되도록 피한다. 많이 먹으려고 욕심 부리면 살도 찌고 몸에도 안 좋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음식점에서 식사할 때 다 먹지도 못할 반찬을 더 달라고 요구하며 남기는 경우가 보기 안 좋다고 꼬집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양껏 먹는다.
도예를 하다 보니 앉아서 작업하는 시간이 길다. 이 때문에 운동을 잘 못하는 만큼 생활 속에서 운동을 한다. 이동할 때는 최대한 걸어 다니며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편이다. 바쁜 척하며 부산스럽게 걷고 뛰는 것이 주특기란다.
그녀는 친구들 중 거의 유일하게 안경을 안 쓴다. 젊었을 땐 눈이 나빠서 안경을 늘 쓰고 다녔지만 지금은 신기하게도 눈이 더 잘 보인단다. 깨알 같은 글씨까지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맨 눈으로 작업하고 신문을 보며, 식당 메뉴판도 편히 본다. 충치도 없어서 간장게장을 시원하게 씹어 먹는다. 돌도 깨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는다.
나이 예순에 너무 쌩쌩한 것 아니냐고 묻자, “저희 집안은 장수 집안이에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라며 집안 이력을 공개했다. 현재 그녀의 고모와 이모는 103세다. 부모는 두 분 다 80세를 넘겼다. 타고난 건강 체질도 있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하는 집안 분위기가 장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인생철학 ‘3뻐 건강법’을 소개한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나는 이뻐’가 1뻐, 바쁘게 살아가자고 채근하는 ‘나는 바뻐’가 2뻐, 이렇게 살아가니 항상 기쁨으로 가득해서 ‘나는 기뻐’가 3뻐다. 바쁘고 기쁘게 살아가는 멋있는 희극인 권귀옥 씨, 그녀의 건강한 웃음이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