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류마티스 관절염, 궤양성 대장염, 말트 림프종까지….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운명치고는 너무도 가혹했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생사의 분침 소리도 들어야 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숨 막히던 통증이 없어졌다. 더 이상 혈변도 나오지 않는다. 생명을 위협하던 말트 림프종도 없어졌다. 이 모든 것이 신의 축복 같다고 말하는 신미정 (50세) 씨!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3세에 류마티스 관절염
어느 날 갑자기였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
“류마티스 관절염이었어요. 발 통증이 너무 심해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결국 대학병원에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확진을 받았습니다.”
2002년 당시 치과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신미정 씨는 그 진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자가면역질환이고, 잘 낫지 않는 난치병이었다. 결혼을 서두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자가면역 수치가 높으면 임신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도 남편에게 고마워요. 6년 연애를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결혼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스테로이드를 잔뜩 먹고 결혼식을 올렸지만 참을 수 없는 통증은 나날이 심해졌다. 온몸 관절로 번지면서 관절마다 물이 찼고, 혹처럼 부어올랐다. 약도 소용이 없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통증이 하루 종일 계속됐다. 무릎을 꿇을 수도 없게 됐고, 손을 접을 수도 없게 됐다.
“신혼 3년간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어요. 외출할 때도 남편이 업고 다녔어요. 제 꿈은 현모양처였는데 남편한테 짐만 되는 게 너무 미안했어요.”
운동을 하기 위해 목발을 짚고 하천을 걸으면서도 잡풀이 보이면 ‘혹시 저것을 삶아 먹으면 내 병이 낫지 않을까?’ 수없이 생각했다고 한다. ‘제발 약 먹고 낫는 병이면 얼마나 좋을까?’ 절실히 소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절마다 퉁퉁 붓고 숨 막히는 통증 앞에서 그녀는 차츰차츰 알아갔다. ‘이 병은 결코 낫는 병이 아니구나.’
“그래도 남편에게만은 최대한 건강하게 보이고 싶었어요. 거동조차 힘든 몸이었지만 퇴근 시간에 맞춰 집도 치우고 밥도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혹시 내가 자다가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마!”
“이 말을 들은 남편이 목 놓아 울더라고요. 그동안 견딜 수 있을 정도의 통증으로 알고 있다가 너무 충격이었나 봐요.”
이때부터 남편은 열일 제쳐두고 류마티스 관절염 분야의 최고 권위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신미정 씨가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도 그런 노력 덕분이었다. 류마티스 관절염 명의를 알게 되면서 숨이 쉬어질 만큼 통증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날마다 한 움큼의 약을 먹고, 때로는 혈관주사를 맞으며 통증과 맞서야 했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래서 간호사로 재취업도 했다. 아프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더 심한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이었다. 신미정 씨는 “비록 하루 종일 계속되는 통증 때문에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일에 몰두하다 보면 통증을 잊을 때도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44세에 궤양성 대장염
류마티스 관절염에도 불구하고 치과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신미정 씨는 2012년 어느 날, 모골이 송연해졌다.
“갑자기 혈변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고름이 섞인 아주 기분 나쁜 혈변이었어요.”
곧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궤양성 대장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자가면역질환이었다.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서른넷에 류마티스 관절염이더니, 마흔넷에 궤양성 대장염까지….
“아마도 믿음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날마다 통증에 시달리면서 운명처럼 믿음생활을 시작했는데 신앙은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어요. 류마티스 관절염에 궤양성 대장염까지 누가 봐도 가혹한 시련처럼 보였지만 여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양성 대장염은 진퇴양난이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면역이 이상 항진되어 발생하는 질병이었다. 그런 탓에 면역 억제제 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궤양성 대장염은 달랐다. 장 염증을 치료하려면 면역력을 높이는 치료를 해야 했다.
상반되는 두 질병 앞에서 궤양성 대장염은 치료조차 할 수 없었다. 대장내시경을 찍으며 체크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로부터 4년 뒤, 또 다른 시련이 그녀를 찾아왔다.
48세에 림프종까지…
2016년 12월 5일, 신미정 씨는 근무 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던 병원이었다. ‘뭐가 잘못됐나?’
나쁜 예감은 잘 틀리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온 간호사는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림프종이라는 암세포가 발견됐다.”면서 “항암을 해야 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 후의 일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림프종이 암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거 암이에요?” 반문했고, 자신의 후임자를 뽑는다는 구인광고도 병원 사이트에 올렸다.
“여보, 나 암이래!”이 말을 들은 남편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정말 신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원망했다.
신미정 씨는 그것이 더 가슴 아팠다고 한다. 너무도 어렵게 남편을 신앙인의 길로 인도한 그녀였다. 4년을 하루 같이 날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 남편이 그녀의 신을 부정하고 나선 거였다. 그것은 암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다.
신미정 씨는 “그런 남편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 비로소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겠다.’며 기도를 올리는 남편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운명처럼 설악산으로~
신미정 씨는 지금도 남편과 함께 설악산으로 갔던 것은 신의 은총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상구 박사가 진행하는 9박10일 뉴스타트 캠프에 참가했던 것이다. 암이라는 말을 듣고 치과병원을 그만두는 그녀에게 병원장은 마지막 선물이라며 캠프에 등록을 해주었다.
“병원에 가서 치료부터 해야지 무슨 캠프냐?”고 펄쩍 뛰는 남편을 설득해 참가했던 뉴스타트 프로그램은 그녀의 인생 지침을 돌려놓았다고 말한다.
“암이 왜 생기는지, 건강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학정보와 생활습관 교정까지 심도 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어요. 어떻게 생활해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하고,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됐으니까요. 9박10일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는 몸이 회복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생겼어요.”
이때 그녀가 건강 회복을 위해 핵심적으로 실천했던 생활 지침은 크게 7가지였다고 한다.
1.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하기
불규칙한 식사 대신 규칙적인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꼭 시간을 지켜서 먹었다. 또 편식 없이 가리지 않고 다 먹었던 식습관에서 몇 가지는 제외도 시켰다. 동물성단백질, 우유단백질, 맵고, 짜고, 뜨거운 음식은 멀리 했다.
생채소보다는 익힌 채소의 비율을 높인 식사도 했다. 생채소와 익힌 채소를 40:60의 비율로 먹었다. 기름진 음식, 인공 소스류, 복잡한 조리과정의 음식도 피했다. 견과류와 과일, 식물성 단백질로 칼슘, 단백질, 미네랄을 보충했다.
주식은 현미식을 하되, 50번 이상 꼭꼭 씹어서 먹었고, 저녁은 최대한 소식했다. 하루 세끼는 규칙적으로 먹되, 간식, 야식, 과식은 하지 않는 식습관을 몸에 익혔다.
2. 적당한 운동하기
아침 6시면 일어나 산책을 나가서 심호흡과 함께 스트레칭을 30~40분간 했다. 또 공기 좋은 숲길을 하루에 평균 2.5~3km씩 날마다 걸었다. 걷는 도중에 틈틈이 휴식을 취해 피로하지 않도록 했다.
3. 충분한 물 마시기
하루 평균 정수기물 1500cc를 미지근한 온도로 수시로 마셨다. 물에 레몬과 자몽 오일을 타서 먹기도 했다. 단, 물은 식후 1시간 30분은 지나서 먹었다.
4. 충분한 햇볕 쬐기
하루 평균 2시간 이상은 햇볕을 쬐었다.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팔, 다리 등으로 햇볕을 많이 쬐었다.
5. 절제하는 마음 갖기
식사량도 절제하고 운동도 피로가 쌓이지 않을 정도로 절제했다. 지나친 휴식도 절제하는 등 욕심 부리지 않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6. 신선한 공기 최대한 많이 마시기
잣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깊은 심호흡을 하며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셨다. 행복감이 절로 들었다.
7. 충분한 휴식 취하기
진정한 휴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남편의 덕분이었다. 회사도 그만두고 일일이 챙기며 심리적, 육체적으로 최대한 편안하도록 배려해줬다.
8. 신뢰하기
하나님에 대한 의지는 절대적인 힘을 줬다. 감사와 견딜 수 있는 평안을 주었기에 고통의 길도 축복으로 여길 수 있었다.
신미정 씨는 “9박10일 캠프가 끝난 뒤에도 이 방법들은 자신의 삶을 이끄는 이정표가 되어주었다.”며 “그것은 최고의 행운도 가져다주었다.”고 말한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
2017년 8월 현재 신미정 씨는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그녀 인생에서 최고의 황금기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의 지긋지긋한 통증도 없어졌어요. 혈변도 나오지 않아요. 림프종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요. 제 인생에서 이런 날도 다 있네요.”
사실 9박10일 뉴스타트 프로그램을 마치고 최종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을 때 그녀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모든 검사가 끝났을 때 병원에서는 말트 림프종이라는 최종 확진을 내렸고, 치료는 항암 8번과 방사선 14번을 먼저 해보자는 거였다.
하지만 신미정 씨는 항암도 하지 않았고, 방사선 치료도 하지 않았다. 만성 난치성 질환을 두 개나 앓고 있는 상황에서 항암도 방사선도 의미 없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그녀가 매달린 게 있었다. 뉴스타트 캠프에서 배운 대로 살기 시작했다. 자꾸만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뉴스타트 생활을 하면 제 병이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로소 알았거든요. 종래의 제 생활이 병이 날 수밖에 없는 생활이었다는 걸. 그 생활을 바꿔보면 꺼져 있던 건강 유전자의 불이 켜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였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 대신 그녀가 향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에덴요양병원이었다. 뉴스타트 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 곳이었다.
2017년 2월 류마티스 관절염 통증으로 절룩거리며 이곳을 찾았던 그녀는 2017년 8월 현재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 더 이상 혈변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절룩거리지도 않아요. 언제부턴가 관절 통증이 없어졌어요.”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14일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 그녀 몸에는 암세포 없음으로 나왔다고 한다. 담당의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 치료를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며 지난 7월 또다시 4군데 조직을 떼어내 검사를 했는데 세 군데는 이상 없음으로 나오고 한 군데는 림프종 세포가 있긴 한데 회복단계에서 남아있는 잔존세포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신미정 씨는 걱정하지 않는다. 통증 없이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게 된 게 꿈만 같고, 오돌토돌 지저분했던 장 점막이 매끌매끌 깨끗해진 것만으로도 날아갈 듯 기쁘다. 17년 만에 찾아온 이 행복이 너무도 고맙고 소중하다.
그런 그녀에게는 이제 남은 소망이 있다면 하나다. “아기를 갖고 싶어요. 면역 억제제를 오래 쓰면서 임신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약도 끊었으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요.”
오늘도 신미정 씨에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뭐 먹고 나았어요?” 이 물음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절대적인 믿음에 끊임없이 감사했고, 그래서 굉장히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신미정 씨에게 두려움은 없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래서 신에게 감사하고,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