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김선영 기자】
“약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연으로 눈을 돌리면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공황장애라는 병명조차 생소했던 1997년 10월 어느 날! 당시 서른 한 살이었던 박희열 씨(50세)는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를 느껴야 했다.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날과 같이 평범하게 시작된 날이었고, 여느 날과 특별히 다른 점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수지 둑이 터지듯 순식간에 불어 닥친 두려움과 공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10여 년은 그의 인생에서 암흑이다. 원인도 병명도 모른 채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법을 수소문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공포와 두려움은 일상사처럼 그를 위협하고….하루하루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던 그가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알게 되고,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노하우는 무엇이었을까?
생전 처음 느낀 두려움의 정체
대학에서 토목과를 전공하고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박희열 씨는 1997년 들어서면서 종종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이 묘한… 마음이 굉장히 불안하고 기분이 아주 나빴습니다. 일생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죠.”
그 묘한 기분은 30분 정도 지속되다 사라졌다. 증상은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중한 업무 탓인가?’ ‘별일 아니겠지’ 했다. 난생 처음 겪는 첫 발작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1997년 10월의 어느 날,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그는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를 느껴야 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오니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겁난다, 두렵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 상태는 1시간 정도 지속된 후 조금씩 괜찮아졌다. 그토록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맞아본 건 처음이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두려움과 공포는 어김없이 그를 덮쳤다. ‘혹시 큰 병에 걸렸나?’ 병원에도 가봤다. 정상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공황장애라는 병명도 모른 채…
뚜렷한 원인도, 속 시원한 치료법도 들을 수 없이 힘든 하루하루가 계속됐다. 이상한 증상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갑자기 혈압이 치솟는 기분이 들어 두려움에 떨었지만 의사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어떤 날에는 얼굴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이 들어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의사로부터 “당신은 정상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마음먹은 대로 의심하는 대로 병이 생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황장애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을 20~30분 동안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과 같다더라고요. 거기에 놀라서 발작하는 병이었어요. 짧은 시간 동안 겪는 두려움과 공포가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또 오면 안 된다는 걱정을 하고, 그 걱정 때문에 기계적으로 호르몬을 쏟아내면서 증상은 파도타기를 반복하는 거였어요.”
지금은 공황장애라는 병명도 알고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아무 것도 몰랐던 1997년 당시 박희열 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정신연령이 꼭 세 살이나 다섯 살짜리였어요.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병명도 모르고 원인도 모른 채 눈물만 흘렸습니다.”
치료는 시작되었지만…
증상을 느낀 지 일 년 만에야 비로소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알게 되었다. 부산에 있는 한 병원의 의사로부터 약을 먹으면 좋아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지긋지긋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한 달치 약을 지어 와서 열심히 먹었다. 넉 달을 먹었는데 놀랍게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들뜬 목소리로 의사에게 “다 나았습니다. 약은 언제 끊을까요?”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치는 어렵다고 했다. 약을 끊으면 또다시 재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공황장애가 다시 왔다.
약을 끊을 순 없었다. 약을 줄이면 증상이 바로 나타나면서 그를 괴롭혔다. 설상가상 약 부작용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체가 2개로 보였다. 그래서 약을 바꾸자 이번에는 사람이 멍청해졌다. 일할 의욕이 없어졌다.
약을 줄여도 보고 끊어도 보고 바꿔도 봤지만 생각지도 못한 갖가지 부작용이 잇따라 나타나 한의원에도 가봤다. 먹은 한약 값만 해도 2,000만 원이 넘는다.
10년 동안 공황장애라는 괴물 같은 병을 만나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는 물론 한약, 침, 뜸 등 안 해 본 것 없이 다 해봤지만 결국 두 손 들고 말았다는 박희열 씨! 그러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공황장애는 증상을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지만 완치는 힘들다.’ 였다.
생채식과 절식으로 살아나다
낫고 싶었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집념으로 방법을 모색하다 광주에 있는 자연치료 의사 전홍준 박사를 찾아갔다.
전홍준 박사는 “세포와 세포 사이에는 세포전달물질이 있는데 피가 탁해지면 세포전달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며 “이럴 경우 생채식과 절식을 하면 피만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가 다 깨끗해진다.”고 말했다. 공황장애도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황장애는 뇌의 병이 아니라 장의 병이라고 했다.
이때부터였다. 그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전홍준 박사가 제시한 생채식과 절식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안 해 본 게 없는데 이 또한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선 생채식과 절식을 통해 피를 맑게 하고 장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주었다. 불에 익힌 화식 대신 생야채만 먹는 생채식을 10일, 건더기 음식은 전혀 먹지 않고 물 종류만 마시는 절식을 10일 했다.
마음 다스리기 요법도 병행했다. “나는 다 나았다.” 라는 주문을 외우고 다녔다. 이렇게 하면 불안하고 두렵고 언제 나을까 늘 부정적이었던 유전자 배열코드를 바꾸어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했다.
또, 서서 몸을 흔드는 ‘온살도리’ 운동도 열심히 했다. “나는 다 나았다.” 라고 외치며 이 운동을 1시간 동안 지속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박희열 씨는 전율했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같은 변화가 믿어지지 않았다. 10년 동안 줄기차게 그를 괴롭혔던 공황장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자연에 눈을 돌리면 해답이 있다!
공황장애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서 ‘의지가 약하다, 마음이 약하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그러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병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박희열 씨는 2008년에 완치된 이후에도 1~2년에 한 번씩은 꼭 열흘 동안 절식하며 피를 맑게 한다. 현재는 절식을 돕는 발효액을 만들고 공황장애 치유센터를 짓는 등 공황장애 환우들을 돕는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이다.
“현대의학으로 잘 치료되지 않는 병은 자연으로 눈을 돌리면 종종 해답을 찾을 수 있어요. 야생동물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공황장애나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가 없어요. 그들의 생활을 보면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인 이상 자연을 닮은 생활을 하고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면 공황장애뿐 아니라 많은 질병의 역습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공황장애로 10년 세월을 잃어버린 박희열 씨가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