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지영아 기자】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게 제일 좋아요”
한창 어리광부리며 떼를 쓸 나이인 6살에 백혈병 선고를 받은 김태식 군. 단란한 4가족의 막내로 온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태식이의 백혈병 선고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는 어머니 윤현애 씨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온다고 회고한다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한 어머니의 끊임없는 정성과 사랑. 그런 어머니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던 태식이는 벌써 6년째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태식이네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원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소초면 흥양리.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태식이를 위해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이곳까지 내려온 가족들은 집앞의 텃밭을 직접 가꾸고 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개구쟁이의 느낌이 묻어나는 태식이는 정말 아팠던 적이 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씩씩한 아이였다.
쏟아지는 코피, 절망의 시작
“98년도 겨울쯤이었어요. 태식이가 갑자기 코피를 흘리기 시작하는데 그 양이 엄청났죠. 너무 놀라서 응급실을 찾았더니 의사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군요. 그리고 나서 이틀 후 더 심하게 코피가 나는 거예요. 코에서 피가 물처럼 나오더니 나중엔 목에서도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혈액검사를 받아받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족 중에 암에 걸렸던 사람도 없을 뿐더러 태식이도 자라면서 잔병치레 하나 없었기에 백혈병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단다. 그러나 태식이의 혈액검사 결과는 그녀가 믿기엔 너무 참담했다.
“다른 검사를 해보지 않아도 분명히 백혈병이라며 바로 입원해서 치료를 시작하자고 하더군요. 게다가 태식이는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서 항암치료를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한 달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아직 너무 어리고 작은 아이가 고작 몇 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말에 저절로 눈물이 흐르더군요.”
혈액검사 후, 태식이는 바로 입원해 소아암 병동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싸움이 태식이한테는 너무 벅찬 싸움이었는지 항암치료를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더 심하게 야위어가기 시작했다. 소아암 병동 사람들 사이에서도 태식이가 6개월을 넘기기 힘들겠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항암치료 거부와 유기농 채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태식이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요. 머리 빠지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자주 경기를 하거나 심할 경우는 침대 위에서 대·소변을 보기도 했어요. 어린 아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저에겐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정말 이대로 놔두면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의사들도 놀랄 정도로 다른 아이들보다 항암치료의 거부반응이 컸던 태식이는 99년 5월, 5개월 남짓한 항암치료에 종지부를 찍었다.
양약 치료는 태식이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윤현애 씨는 소아암 병동에서 알게 된 보호자를 통해 K한방병원을 소개받고 한약과 유기농 채소만을 이용해 식단을 짰다.
“우선 인스턴트식품과 항생제를 먹이지 않으면서 전부 유기농 채소로만 요리를 해서 먹도록 했습니다. 또 산에 자주 올라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했죠. 무엇보다 제 자신이 불안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태식이가 느끼도록 해주었어요. 이 원칙은 태식이의 병이 다 나은 지금까지도 꼭 지키는 실천사항이기도 합니다.”
다른 것은 모두 지키기 쉬웠어도 자신이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지키기 어려웠다는 윤현애 씨. 하지만 자신이 불안을 느끼지 않아야 태식이도 엄마를 믿고 안심해 병을 빨리 이길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항암치료로 몸이 야윌대로 야윈 태식이를 업고 도시락을 싸서 매일 산에 오르는 일과가 시작됐다.
“제발 하루만 더 살아달라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산을 올랐죠. 그런 제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처음엔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음식을 두 달 뒤부터는 서서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정성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인지 밥과 유기농 채소, 과일만 먹기 시작한지 5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던 태식이는 점차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태식이를 위해 공기좋고 직접 재배한 채소도 먹을 수 있는 강원도 원주의 소초면으로 이사 온지 벌써 4년째. 윤현애 씨는 직접 닭장에서 키우는 닭들이 낳은 달걀과 집 앞의 텃밭에서 자란 야채를 이용해 음식을 만든다.
“점차 건강이 나아지는 태식이를 보면서 공기도 좋고 직접 야채를 재배할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그래서 주말마다 좋은 집터를 찾아다닌 결과, 지금 이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전에 살던 인천보다 공기도 맑고 무엇보다 야채를 직접 재배하고 흙을 밟으면서 일할 수 있는 텃밭이 있어서 좋습니다.”
주말에는 텃밭을 가꾸느라 따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며 가끔은 근처 산으로 등산을 가곤 한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태식이는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하지 않는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과 어울려 놀거나 학교에서 하는 특별 방과활동이 전부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여러 가지 학원을 보낸다고 하던데 저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 그런 것에 시간을 뺏기기보다는, 태식이가 또래 친구와 잘 어울리고 자연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하거든요.”
태식이가 건강하게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윤현애 씨는 아직도 운동회 때마다 달리기를 하는 태식이를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고 한다. 단 하루만 살아 달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과 정성으로 6년 동안 건강하게 지내온 태식이는 몇 달 전 받은 혈액검사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게 제일 좋다는 태식이는 “앞으로 로봇을 만드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요.” 라며 수줍게 웃어 보인다. 태식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만큼이나 밝은 미래가 함께 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