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지영아 기자】
“희망을 잃지 않은 긍정적인 생각이 저를 살렸습니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인 14살. 조정한 씨는 어른도 견디기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급성림프구성 백혈병과 힘든 싸움을 해야만 했다. 힘든 투병생활을 이겨내고 이젠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 목사님을 꿈꾸는 신학대학생이 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찾아온 백혈병
중학교 1학년 때쯤부터 조정한 씨는 허리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단순히 척추에 이상이 있는 줄 알고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허리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허리뿐만 아니라 골반 부위까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허리뿐만 아니라 골반 그리고 무릎까지 통증이 느껴져 제대로 걷기가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학교가 언덕 위에 있었는데 올라갈 때마다 참기 힘들 정도로 숨이 차고 코피마저 멈추지 않고 자주 났습니다.” 아플 때마다 갔던 동네병원에서는 큰 병원에서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합병원에서 피검사를 받아본 결과 그의 병명은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이었다. 곧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때 그는 겨우 14살의 아직 어리기만 한 중학교 2학년이었다.
백혈병을 진단받고 나서는 학교를 휴학하고 바로 1차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너무 어린 그에게 항암치료는 견딜 수 없이 힘들기만 한 일이었다. 처음 입원할 당시 167㎝에 75㎏ 정도 나갔던 몸무게는 항암치료를 시작한지 단 2주만에 20㎏이나 빠져버렸다. “항암제를 맞고나면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면서 움직이기도 힘들고 입안은 다 헐어서 먹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일주일마다 한 번씩 하는 척수, 골수 검사의 통증은 어린 제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활동적이고 건강한 아이였던 조정한 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점점 웃음을 잃어갔다. 머리는 전부 빠지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하는 무기력한 나날이 흘러갔다.
희망을 가지고 항암치료 견뎌내
그렇게 힘든 1차 항암치료를 끝내고 한 달을 쉰 후 다시 2차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여전히 항암치료는 그의 몸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했다. “1차 항암치료 때는 몸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 빨리 치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다시 2차 항암치료가 시작되면서 어차피 받아야 하는 치료라면 좀더 긍정적으로 생활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치료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조정한 씨는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몸이 너무 힘들 때는 쉬다가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보조기를 잡고 걸어다녔다. 그렇게 조금씩 보조기를 잡고 움직인 거리만큼 그의 몸도 나아지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는 편이 기분도 상쾌하고 좋더군요. 그전까지는 전혀 식욕이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먹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닭죽의 맛은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한 달 정도의 2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시작된 3차 항암치료에서도 그는 긍정적인 생활태도로 점점 건강을 되찾아 갔다. 꾸준히 보조기로 조금씩 걸음을 걸었던 결과, 3차 항암치료의 막바지에는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직접 지하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사 먹을 정도로 몸의 상태가 호전됐다.
“그때 병원 지하식당에서 국밥을 팔았는데 참 맛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환자복을 입고 내려가서 먹었었는데 나중에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가서도 먹곤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녀석이 씩씩하게 잘 돌아다녀서 병원에서는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죠.”
3차 항암치료까지 마친 그는 다시 친구들이 있는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병 때문에 학교를 휴학했다가 다시 다닐 경우, 대부분의 아이들은 적응 문제 때문에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하지만 워낙에 밝은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한 살 어린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재미있는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생활로 돌아갔지만 아직 치료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병의 재발방지를 위해 2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항암제를 투여받고 척수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2000년부터는 항암제를 투여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2004년부터는 12주에 한 번, 그리고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 피검사만 받고 있다. 이제 항암제를 투여하지 않고도 5년이 지나도록 병이 재발하지 않아 병원에서는 그가 백혈병을 극복했다고 보고있다.
목사님되어 나누는 삶 살고 싶어
아프기 전부터 교회를 꾸준히 다녔지만 특별히 목사님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혈병을 앓은 후부터는 목사님처럼 자신의 삶을 좀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됐다. “처음부터 목사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다시 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여름에 교회에서 수련회를 갔었죠. 그때 시인이면서 목사님이신 ‘용혜원’ 선생님의 감동적인 설교를 들으면서 그 분과 같은 목사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교회 여름 수련회에서 용혜원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받은 조정한 씨는 목사님이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에 진학해 현재 2학년에 재학중이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술과 담배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그는 사회복지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대학 동아리 역시 다른 나라에 갔을 때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선교할 수 있는 태권도 선교단으로 열심히 활동 중이다.
또한 그는 백혈병으로 투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이번 겨울에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중이다. 자신을 비롯해 백혈병이 완치된 친구들 3명과 같이 투병 중인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전거로 국토대장정을 할 계획이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7일 정도가 걸리는 힘든 일정이지만 아파서 누워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환하게 미소짓는다.
자신의 설교와 도움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목사님이 되고 싶다는 조정한 씨.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 암을 극복한 사례 인터뷰는 대한암협회(www.kcscancer.org)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