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유은정 원장 (유은정의 좋은의원)】
여자의 불행의 시작은 다이어트. 20대의 필자 역시 대부분의 여대생처럼 다이어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인턴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를 지불하며 효소 다이어트 한 박스를 구매했던 여의도의 한 지하 사무실에 대한 기억. 결국 다이어트는 실패했다.
인치바이인치와 같이 운동을 안 하고 누워만 있어도 살이 빠진다고 해서 속옷만 입고 사이즈를 측정 당하며 살쪘다고 혼났던 기억. 수치심으로 가득 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 열 개를 사서 한꺼번에 먹었다. 의사인 필자조차도 살이 찔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니 광고에 현혹된 셈이다.
정신과 의사로 개업가로 나오자마자 비만클리닉을 시작했던 것이 15년 전! 지금 돌이켜보니 우연은 아니었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여성들에게 왜 이렇게 다이어트는 힘든 것일까? 살은 왜 죽어도 안 빠지는 것일까? 다이어트 때문에 울고 웃는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하면서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몸을 잘 알아야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이고, 마음을 잘 다스려야 뺀 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가 평생 행복하지 못한 이유
다이어트에 중독되면 중독을 관할하는 뇌 부위인 ‘측핵’이 활성화된다. 이는 게임 중독과 같은 증상이다. 그러나 도박과 쇼핑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금전적 어려움을 동반해 나쁘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다이어트 중독은 자신의 건강을 위한 일이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각하기 어렵다.
실제 다이어트 중독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살이 찌면 안 된다는 ‘체중 강박’, 먹고 나서는 꼭 칼로리를 소모해야 한다는 ‘운동 중독’, 식욕 억제를 위한 ‘약물 및 설사약 중독’, 늘 칼로리를 체크하느라 타인과 외식을 하지 못하는 ‘식단 중독’까지 그 범위가 넓다. 흔히 알고 있는 ‘거식증’과 ‘폭식증’도 넓은 의미의 다이어트 중독에 해당된다.
처음에는 자신이 중독인 줄 모르다가 다이어트를 적정선까지 조절할 수 없는 조절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다이어트를 집착적으로 생각하며 모든 생활의 중심으로 만들고 건강을 해칠 정도로 식단을 조절하거나 약물이나 운동에 과잉 의존하며 오히려 자신을 학대하는 금단현상도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외모에 대한 평가를 직접적이고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말은 듣는 사람에게 언어폭력이 되어 평생 상상하지 못할 트라우마가 된다.
외모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를 받는 자료가 되어 ‘내 외모가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받을 때 나의 가치가 높아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외모에 대한 평가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이는 개인의 취향과 개성에 대한 굉장한 실례이기 때문이다. 실제 다이어트의 목표 기준은 좋은 몸매의 표준인 연예인이나 전문 모델이 되기 쉽다. 이상적인 몸매를 너무 높게 측정해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대생들의 꿈의 체중은 키를 막론하고 모두 48kg이다. 특히 여자들은 보정을 거친 모델들의 사진을 보며 마른 몸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외적 기준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지만, 외모로 대표되는 성적 우월감은 물질과 함께 간다. 즉 몸매 관리가 잘 되면 부유한 계층이라는 인식과 날씬한 여성이 권력을 가진다는 사회 풍조가 있는 탓이다.
이렇다 보니 다이어트로 대표되는 외모 스트레스는 정신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비만과 식사장애는 정신의학 교과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정신질환이 되었고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이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식욕 억제’인데 식욕을 조절하는 중추는 뇌에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장은 가득 차도 뇌에서 배가 불렀다는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심리적 허기’가 발생한다. 비만 치료제에 신경정신과 약물이 많이 처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이어트 성공은 행복호르몬과 자존감이 좌우
다이어트는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는 운동 같은 ‘신체 다이어트’와 ‘마음 다이어트’로 나눌 수 있다.
마음 다이어트란 식욕을 조절하는 뇌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여러 물질을 관리하기 위해 식습관뿐만 아니라 숙면, 휴식, 운동, 성생활 등 균형 잡힌 생활을 통해 ‘생활습관’ 자체를 교정하는 것이다. 심신균형 다이어트의 중요성을 꼭 강조하고 싶다.
필자 인생의 최고 체중을 찍었던 인턴 생활이 끝난 뒤 생활의 균형을 잡으니 체중은 저절로 줄었다. 식습관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습관 자체를 조절해야 건강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는 경험을 얻게 된 것이다.
실제로 식습관이나 스트레스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폭식할 수 있고, 식습관의 균형이 없다면 어떤 수술이나 약물도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다시 요요현상이 찾아온다.
따라서 ‘식욕 억제제’를 먹거나 ‘지방 흡입’은 급한 불을 끌 수는 있겠지만, 평생 유지되는 다이어트라고 보기 어렵다.
이렇게 어렵게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려면 비만 치료제를 복용해도 2년 동안 추적 연구한 결과 50%에서 체중이 증가되어 있다는 연구결과가 공통된 의견이다.
체중 유지의 실패에는 스트레스가 큰 몫을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과 싸워서 이겨내는 행복호르몬, 즉 세로토닌 생활습관을 길러야 하는데 숙면을 하고 햇빛을 쬐면서 산책을 하거나, 명상을 하면서 몸에 좋은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다.
체중계에 수시로 올라가면서 1~2kg에 울고 웃고 하지 말자. 체중이 늘었다는 것은 마치 기름을 충전하러 주유소에 가듯이, 내 몸과 마음의 엔진 오일을 교체하라는 신호등이 깜빡인다는 증거이다.
다이어트라는 것은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내가 자신을 돌보지 않았구나.’라는 마음으로 과식하지 않는지, 잠은 잘 자는지, 피곤하지 않은지 점검하는 시간이다.
또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와 자아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도 필요하다. 고유의 체형과 체중을 받아들이며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자존감에서부터 나를 위한 모든 노력과 행동은 시작된다.
자존감은 다이어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병원에서 다이어트 치료를 할 때도 자존감 회복을 가장 근본적인 치료로 여기고 자존감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몸에 살집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땅의 다이어트를 하는 모든 이들은 우리를 살찌우게 만드는 것들과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20년 전의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내 몸과 마음을 가장 먼저 행복하게 해주어야만 불필요한 살들이 없어지고 날씬한 몸으로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