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건선 예방을 위해 피부 자극 줄이세요. 때밀지 마세요”
“어느 병원에 계신가요? 간절히 원합니다.”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한때 대기 환자가 가장 많아 일 년을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었던 피부과 명의!
지금도 여전히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선 치료의 대가! 윤재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2012년 서울대병원을 정년퇴임한 그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여전히 건선 환자들에게 새 희망의 보루가 되어주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건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 건선 치료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데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불모지여서…
통영이 낳은 수재 윤재일 교수가 1977년 서울대 의대에서 피부과를 전공한 이유다. 당시만 해도 난치성 피부병을 주 대상으로 삼던 피부과는 의료인에게 절망만 안겨주는 분야였다. 원인도 잘 모르고, 잘 낫지도 않는 난치병이 대부분이어서 다들 기피했다. 윤재일 교수는 “그래서 더 끌렸다.”고 말한다. 뭔가 할 일이 많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 그에게 당시 새로운 학문으로 막 떠오르기 시작했던 광선치료와의 만남은 지금도 운명처럼 느껴진다. 세계가 인정하는 건선 명의 윤재일 교수의 오늘을 있게 한 신호탄이 됐기 때문이다.
피부과 전문의로 임상을 시작했을 때 윤재일 교수는 일찍부터 광선치료에 주목했다. 난치성 피부병에 새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 난치성 피부병에 광선치료는 최적화된 치료법이었다. 특히 건선에 효과적이었다.
윤재일 교수는 “광선치료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애를 먹던 건선 치료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말한다.
1982년 국내 최초로 서울대병원에 건선클리닉을 개설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건선 연구에 의학적 신념을 걸기로 했던 것이다.
1년을 기다려야 진료 받을 수 있는 의사?
환자는 많은데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잘 낫지 않는 난치병으로 악명이 높았던 건선! 먹는 약은 아예 없고, 바르는 약은 스테로이드밖에 없어 환자들은 치료를 포기했고, 의사들도 해줄 게 별로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윤재일 교수는 국내 처음으로 건선클리닉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건선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자.’ 윤재일 교수의 각오였다. 이를 위해 그가 쏟아 부은 땀과 열정은 말로 다 못 한다.
국내 처음으로 건선 치료에 안스라린요법과 인그람 치료법을 도입함으로써 건선 치료의 새 기틀부터 마련했다. 또 미국 하버드대학 부속 MGH병원에서 연수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광선치료를 국내에 맞게 접목, 건선 치료에 새 포문도 열었다. 특히 건선에 광선치료를 정착시키면서 우리나라 건선 치료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건선 치료를 체계화시키고, 새로운 치료 기법도 발빠르게 도입하면서 우리나라 건선 치료의 의료지형까지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런 때문일까? 윤재일 교수가 이끄는 건선클리닉은 건선 환자들에게는 성지로 여겨졌다. 전국 각지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신규 환자를 제한할 정도였다. 하루에 100명을 봐도 못 보는 환자가 생겼다. 실제로 윤재일 교수는 대학병원 중에서 대기환자가 가장 많은 의사로 꼽히기도 했다. 1년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1년을 어떻게 기다리냐?”며 항의하는 환자도 많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35년 임상 노하우 건선 치료에 새 지평
건선이란 병에 대해 우리 모두가 잘 모르고 있을 때 건선을 전공하고, 또 건선 치료의 새 길을 내온 윤재일 교수!
그가 축적해온 지난 35년간의 임상 데이터는 우리나라 건선 치료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건선 연구에 기여해온 크고 작은 연구 성과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벅차다.
건선클리닉 등록환자 5000명을 대상으로 밝혀낸 임상 데이터는 우리나라 건선 치료에 새로운 분수령을 마련했다. 한국형 건선의 주요 특징을 방대한 임상으로 밝혀낸 전무후무한 연구 성과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얼굴 건선을 주로 연구하면서 얼굴 건선의 유형을 밝혀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특히 건선 치료에 효과적인 자외선 B 311nm 파장대를 우리나라 건선 치료에 정착시키면서 광선치료 효과를 월등히 높이는 데 일조를 담당했다.
이 같은 연구 성과들이 건선 치료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건선 치료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더 이상 치료되지 않는 난치병이 아니었다. 치료하면 90% 이상 치료되는 병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윤재일 교수는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좋았고 첫길을 내는 것이어서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그 열정이, 그 노력이 우리나라 건선 치료에도 새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밝히는 건선은 어떤 병일까?
완치는 안 되지만 치료는 되는 병
윤재일 교수가 평생을 파고든 건선은 살갗에 좁쌀 같은 것이 오톨도톨 올라오면서 그 주변에 새하얀 비듬 같은 각질이 겹겹이 쌓이는 피부병이다.
원인조차 몰랐던 예전에는 잘 낫지 않기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에서 많이 발생해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건선이 면역 반응 이상으로 생긴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그러면서 다양한 치료법이 활용되기 시작했고, 치료 전망도 밝게 하고 있다.
윤재일 교수는 “오늘날 건선은 약을 바르는 국소요법, 광선을 쬐는 광선요법, 약을 먹는 전신요법, 주사를 맞는 생물학제제요법 등이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좋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며 “완치 개념은 없지만 치료를 하면 90% 정도는 좋아지는 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재발을 막을 수는 없다.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 윤재일 교수가 지금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발을 늦추거나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하나다. 비록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지만 건선은 누구나 조심해야 될 병이라는 것이다.
윤재일 교수는 “건선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예방 지침은 모두가 꼭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1. 피부 자극이나 피부 손상을 받지 않도록 하자
건선은 다른 피부병과 달리 전신 피부 어느 곳이든 병변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생기는 원인 중 하나는 피부의 지나친 자극이 문제가 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피부 자극이나 피부 손상은 건선이 생기는 원인이 되거나 악화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때를 미는 것은 금물이다. 피부에 독이 된다. 때를 밀면 피부의 각질세포와 수분, 피지 등이 함께 몰살되면서 피부 건강을 망친다.
2. 편도선염과 같은 염증을 조심하자
편도선염, 인후염 등의 상기도 감염은 주로 연쇄상구균이라는 세균에 의해 발병한다. 그런데 이 세균에 감염되면 건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보고돼 있다.
3. 피부가 건조하지 않도록 하자
건선 환자의 피부는 건성피부가 많다. 피부 건조를 막는 것이 건선을 치료함과 동시에 예방책이 된다.
4. 건선 환자는 겨울을 잘 넘기자
11월은 건선 계절의 시작이다. 겨울에는 건선 환자가 2배로 늘어난다. 겨울이 되면 햇빛을 못 쬐고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건조를 막아야 한다. 적당한 운동을 하고 피부가 건조하지 않도록 피부 오일이나 보습제를 충분히 발라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건선 연구에 남은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는 윤재일 교수!
평생 건선 연구를 해왔고, 국내 논문 240여 편, 국외 논문 95편으로 수많은 연구 실적을 발표해 왔지만 아직도 그에게는 못다 한 일이 많다. 지금은 건선과 만성병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래서 건강관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3~4일은 헬스클럽에 가서 러닝머신도 타고 근력운동도 한다. 잡곡밥을 먹고 채소를 많이 먹고 저염식을 하면서 건강관리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그런 그가 긴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당부하는 말은 “건선도 치료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기 치료가 치료율을 높이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