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문지영 기자】
【도움말 | 고려대 의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영훈 교수】
당신은 갑인가, 을인가? 갑을 관계에서 파생된 ‘갑질’이라는 말은 갑의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권력에 있어서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취하는 부당한 행위를 통칭한다.
우리 사회에서의 갑을관계는 위아래를 구분 짓는 것을 기본으로, 나보다 약간만 더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무슨 짓이든 함부로 해도 된다는 교만함과 무례함,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굽실거리며 어떻게든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막무가내의 기대감 등으로 표현된다.
반말, 무시, 욕설은 물론 선물이나 향응을 강요하는 등 불합리한 갑질 유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승무원을 위협해 승객이 모두 탑승한 항공기를 되돌린 항공회사 대표의 딸, 제자에게 고문을 가하고 인분을 먹인 교수 등 도덕적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부조리한 갑질 횡포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밖에도 우리 사회를 좀먹는 사회악의 원흉, 갑질은 시시때때로 소시민의 일상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갑질, 이 정도는 보통이야! ?우리 사회의 대표적 갑질 사례 12345
1 포스코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라면을 끓여주지 않는다며 기내 승무원을 폭행했다. 소위 ‘라면’ 상무 갑질로 불리는 이 사건은 갑을관계의 발단으로 회자되며, 포스코에서 해당 상무를 보직해임하면서 마무리 되었다.
2 한국수자원공사의 30대 대리가 설계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50대 수주업체 이사의 얼굴에 서류철을 집어던져서 안경이 박살나고 눈 밑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혔다.
3 편의점 업체인 CU의 한 편의점주가 편의점 업체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자살하자, CU는 유족이 아니면 입수할 수 없는 사망진단서를 빼내서 편의점주의 사인을 조작해 언론에 유포했고 이것이 드러나며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비난은 끊이지 않고 있다.
4 백화점 주차장에서 주차를 제대로 하지 않은 어느 고객 모녀가 주차장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차를 다시 주차해달라는 부탁을 받자 주차장 한복판에 아르바이트생을 무릎 꿇리고 호통을 쳤고, 상황을 보고 달려온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까지 모조리 무릎을 꿇리며 심한 폭언, 폭행을 했다.
5 한 음식점에서 손님 일행이 주문한 철판볶음밥을 가져온 종업원이 손님들이 먹을 수 있도록 비닐장갑을 끼고 밥을 비벼주었는데 손님이 그 조리과정이 기분 나쁘다며 상을 뒤엎고 종업원에게 난동을 부렸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종업원에게 억지로 먹이려하고 종업원 머리에 쌈장을 뒤집어 쏟는 등 비인간적 행위를 계속했다.
그 외 직장인 매거진 <M25>가 홈페이지 방문자 63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밝혀진 최악의 갑질은 ‘재벌 2세 야구방망이 구타 사건’과 ‘자기 아들 과학 숙제로 병아리의 탄생을 찍어오라고 해서 양계장까지 달려갔던 일’, ‘퇴근했는데 불러내서 자기 술값 계산하라고 했던 일’, ‘벌초까지 가야 했던 일’, ‘은행에서 일하며 VIP자녀와 친인척의 자녀 등과 강제로 맞선을 봐야했던 일’ 등 공분을 살 수 있는 황당한 갑질들이 팽배해 있다.
우리 사회에 갑질이 만연한 이유는?
고영훈 교수는 “우선 갑질을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대방보다 자신이 우월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지적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낮을수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분과 사회적 지위로 그것을 만회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즉,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대체로 부모로부터 적절한 칭찬과 인정을 받지 못하며 성장하거나, 환경적 분위기가 자존감을 채워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것은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지위, 축적된 부와는 별개의 차원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이런 갑질에 대해 과도한 재량권을 보장하고 명확한 사회적 제재를 가하지 않기 때문에 갑질이 더욱 만연할 수밖에 없다. 제도적 건전성이 담보가 되어야 할 공무원 사회에서 역시 갑질 횡포나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대부분 가벼운 징계로 끝나기 때문에 갑질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며 그 과정에서 물질만능주의와 과도한 경쟁의식, 부정부패 등 잘못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며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방출할 수 없게 되면서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식으로 갑질이 돌고 돌며 부정적인 뫼비우스의 띠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큰 요인으로 손꼽힌다.
갑질, 이렇게 해결하자!
고영훈 교수는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한 번 갑을 관계가 영원한 갑을 관계가 아닐 수 있게 되었고,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해졌다.”면서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상대방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이 자신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꼭 기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갑질에 피해를 입은 을의 경우 자신의 상황을 되새김질하지 말고 자신의 상황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심각한 상황이라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갑질에 대한 합리적인 대처 시스템이 마련되도록 다함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사회가 경제적 발전과 함께 이루어낸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이전보다는 눈에 띄게 향상된 시민의식의 발전일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갑을 관계를 문제시해서 볼 줄 아는 시각을 지닐 수 있게 되었으며,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우리 사회의 막힘과 닫힘이 점차 해소되어 가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인터넷을 통해 갑질을 규탄하고 다시 보복당할 위험이 줄어들면서 그래도 조금은 효과적인 제재 방법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의 내가 영원한 갑이 아닐 수 있으며, 오늘의 내가 영원한 을이 아닐 수 있다는 사회구조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서로가 공감하고 소통하며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사회!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지사지의 사고를 통해 보다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