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문지영 기자】
【도움말 | 고려대 의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영훈 교수】
CASE 1.가족끼리 화가 난다!
맞벌이 부부인 결혼 5년 차 L 씨(34세)는 최근 시아버지 제사 문제로 시어머니와 다툼이 있었다. 야근 때문에 제사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자 시어머니가 “그깟 월급 얼마나 받는다고 직장 다니는 유세를 하냐!”며 시누이와 역공을 퍼부은 것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남편까지 합세해 “낮에 회사 가느라 음식 준비도 못 하면서 제사에 참석까지 안 하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며 시어머니와 여동생 편을 들자 기가 차서 대꾸할 말이 꽉 막혀버렸다.
결국 회사에 간신히 말을 하고 제사에 참석한 L 씨는 집으로 오는 내내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소연할 친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혼한 부모님과 오랫동안 연락도 안 해온 터라 L 씨의 감정은 점점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을 넘어 시어머니와 시누이에 대한 분노에 이르고, 남편에 대한 감정이 극에 치달으며, 결국 시누이 집에 불붙은 부탄가스통을 던져버리며 큰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CASE 2. 일하다 갑자기 화가 난다!
10년 차 광고기획사 PD인 K 씨(42세)는 기획회의 중에 부장이 섭외해온 신인 모델과 불협화음을 냈고 해당 모델이 자신의 SNS에 K 씨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네티즌의 표적이 됐다.
쌍방이 서로 잘못한 일에 대해 일방적으로 사람들에게 매도된 상황이 화가 난 K 씨는 자신도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본인의 SNS에 감정을 실어 답글을 달았다. 서로 SNS를 통해 치고 박고 하는 사이 무명이었던 모델은 대중들에게 이슈화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부장과 회사 동료들이 K 씨를 비난하며 심한 말을 하자 결국 K 씨는 야밤에 신인 모델의 자동차를 파손하며 법정에 서게 됐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일하다가도, 가족끼리도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화가 치미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앞에서 예로 든 광고기획자와 평범한 주부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유산 싸움으로 부모를 살해하는 아들, 이별한 여자 친구의 가족을 처참하게 살해한 전 남자친구,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로 화장실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여성을 살해하는 ‘묻지마 살인’ 등 가정과 직장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바탕에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적개심, 곧 ‘분노’다!
우리는 왜 분노하는 것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분노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엔 억울했던 감정이 가슴에 응어리가 되고 그것이 적개심으로 변하며 복수심으로 커지고 급기야 감정적 통제가 어렵게 되면서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노를 조절하기 힘든 상황을 정신건강의학에서는 ‘분노조절장애’로 진단하고 있다.
고영훈 교수는 우리 사회에 이렇게 분노가 만연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부당한 처우를 받았더라도 그것을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그만큼 화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이 그 분노를 그대로 안고 가야만 하고, 그러다 보니 공격성이나 폭력성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영훈 교수에 따르면 사람이 기본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감정을 갖는 것은 뇌에서 조절을 하게 된다고 한다. 특히 전두엽이 그런 것을 제어한다. 하지만 사고를 당해서 뇌나 신경기관이 손상을 입거나 선천적으로 스트레스 유발 요인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지는 경우, 혹은 성장과정에서 부모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그 기능이 덜 발달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문제는 정신건강의학적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통해 치료되어져야 할 부분이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와는 별개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일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변화의 시작은 개인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나를 한 번 돌아보자. 나도 혹시 분노조절장애일까?
분노조절장애 자가 체크법 1234
1. 나만이 오직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감정이 지나치게 풍부해서 상대방에게 너무 민감하고 그만큼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3. 타인에 대한 공감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감정과 우울감이 일상을 지배한다.
4.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것을 방해하는 이들에게는 이해보다는 분노와 적개심이 먼저 생긴다.
이를 토대로, 자신이 분노를 조절하기 힘든 상태라고 판단된다면 적극적으로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왜? 분노는 참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참으면 참을수록 오히려 가슴에 쌓여 파괴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 분노의 핵심적 특징이다. 혹시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강박증과 같은 심리질환으로 전이되거나 그 스트레스가 신체적 질환으로 연결되어 암 발생률을 높이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고영훈 교수는 “분노가 생기면 반드시 적절한 방법으로 이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방법을 소개한다.
나를 위한 효과만점 분노 해소법
1 분노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분노가 발생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심장박동과 맥박이 빨라진다. 따라서 이러한 신체 반응을 객관적으로 알아채고 느끼며, 심호흡을 하고 물을 한 잔 마시는 등 생리적으로 긴장되고 각성된 상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2 내 분노의 본질을 파악하자
화가 났을 때 무작정 화를 내기보다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어떻게 하면 그 화를 풀 수 있는지 내 감정과 분노의 원인, 그리고 그 이면의 다른 감정을 잘 파악함으로써 분노가 보다 크게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3 상대방에 대한 비난은 금물! 나를 전달하자
분노가 치밀 때 흔히 나타나는 반응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다. 그럴 경우 상대방 역시 화를 내기 마련이고 다툼이 커지며 분노 역시 커진다. 따라서 화가 날 때는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왜 화가 났는지를 ‘너’가 아닌 ‘나’를 주어로 표현하고 차분하게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상호작용을 하며, 그에 따라 적절하게 나를 성숙시키고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방법으로 분노를 잘 다스리며 분노가 건강의 악이 아닌, 건강한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러한 분노가 내가 아닌 타인에게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소하게 혹은 대범하게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정신적, 신체적 테러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처 방법은 무엇일까?
고영훈 교수는 이에 대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들과 되도록 맞닥뜨리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일을 하며 혹은 생활하며 그러한 상황이 불가피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하고 독일 연방 정보원 정보국에서 10년간 일하며 범죄자들과 제보자들의 감정을 속속들이 파헤쳐 연구한 정보 요원 ‘레오마르틴’은 그의 저서 <감정테러리스트>에서 타인의 폭발하는 분노에 대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
레오마르틴의 ‘타인의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
1 겁먹지 말자
분노를 폭발시키는 이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할 때 공격적 성향이 훨씬 더 극대화된다. 따라서 그런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침착함을 잃지 말고 당당하게 자세를 유지하며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 분노의 크기를 얕잡아 보지 말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화가 극에 치밀어 있는 상대에게 “그래 봤자, 니가 별 수 있겠어?“ 식으로 자극적인 코멘트를 하게 되면 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말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긴 상대방은 더, 더, 더, 큰 분노를 폭발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3 간단히 끝내자
누군가가 나에게 불합리하게 화를 낸다고 생각할 때는 한 템포 쉬며 그 사람의 화가 정말 틀린 것인지 혹은 합당한 것인지 분별해보자. 그리고 혹시 자신이 정말 잘못했다면 얼른 사과함으로써 상대방의 분노가 커지는 것을 막고 상황을 의외로 쉽게 끝낼 수 있다.
4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자
분노를 폭발시킨 상대방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다. 상대방에게 같이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대신 침착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상황을 전문적으로 분석할 경우 오히려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에 상황이 호전될 수 있다.
5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바꿔보자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는 상대방이 사실은 나를 화나게 하고 두렵게 하는 우월한 대상이 아닌 불쌍한 사람,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그럴 경우 그 사람에게 당하고 있는 내가 희생양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오히려 분명하게 내 감정을 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다만, 내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치욕과 모욕을 줄 때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잠깐! 적어도 나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
분노하는 사회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처럼 분노와 우울과 스트레스로 가득 찬 세상, 이름하여 ‘헬조선’을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힘들고 아프고 무서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영훈 교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환경 속에서 만족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하고 있는 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영훈 교수는 “이러한 개인의 노력이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반드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하며,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가지지 않으면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못 미치는 자신의 상황에 만족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일!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지혜가 아닐까 싶다. 부디 2017년에는 새롭게 파이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