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고정관념 중에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섹스란 삽입하여 관계 맺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남자의 경우라면 ‘피스톤 운동’을 운운할 것이고, 여자라면 절정에 도달하는 모습을 멋지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리라. 이러한 생각 때문에 멍드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하고 애무하는 진정한 사랑이 오로지 ‘삽입’만을 강조하는 섹스의 무지 앞에서 퍼렇게 멍들고 마는 예를 적잖이 보게 된다.
사업을 하는 A씨(45세), 자리에 앉자마자 모든 것을 다 아내에게 맡긴다는 표정으로 아예 의사를 외면하는 눈치였다. 그가 기본 검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부인과 자세한 병력을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남편에게 만족하며 살았죠. 5년 전 당뇨 증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당뇨가 생긴 후로 남편의 발기력은 눈에 띄게 나빠졌지요. 이를 안 시어머니는 부부관계가 당뇨에 안 좋다며 남편을 너무 들볶지 말라고 구박하기 시작하더군요.”
결국 부인은 2년 간이나 남편 곁을 떠나 애들과 함께 자며 섹스 없는 부부생활을 해야 했다. “시어머니의 간섭도 서러운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어쩌다 사소한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날이면 남편이 말끝마다 ‘그래, 내가 병신이다’, ‘우리는 남남이다’라며 자신의 콤플렉스를 더 드러내는 바람에 눈물로 날을 지새워야 했어요.” 남편의 건강을 위해 일부러 잠자리를 피했으나 남편은 자기 처지를 비관하며 그 탓을 오히려 아내에게 돌려 더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 후 한 침대에서 자기로 했죠. 손으로라도 남편을 애무하여 욕망을 해소시켜 주려고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을 위해서…. 그런데 남편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이었어요. 마음을 다해 애무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삽입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보다 더 괴롭고 야속한 것은 어떤 애무를 해도 무신경하게 나오는 남편의 태도라고 그 부인은 토로했다.
물론 치료를 받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당뇨를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에 A씨는 입원하여 인슐린 주사를 맞는 등 적극적인 치료를 받았으나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어 급기야는 발기불능 및 사정불능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부인은 부인대로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였고, 당연히 얼굴이 축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며 아픈 데를 건드리는 바람에 이래저래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자신의 고민이야 체념하고 살면 될 테지만 날로 기죽어 가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기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고민 끝에 남성클리닉을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초진 시 결과는 공복시 혈당 300mg/㎗, 복합초음파 검사에서 동맥기능 부전, 시청각 자극 검사에서 완전 불능이 기질적 장애로 나타났다. 그에게 자가주사요법이나 보형물 수술을 권했더니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망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2차 단계로 권한 것이 삽입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애무였다. 성 트러블을 겪는 부부 중 상당수가 다음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첫째, 무엇보다 성관계 시 반드시 삽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전희 단계에서 애무없이 삽입에 의한 섹스만 해오다가 발기가 안 되는 상황에 이르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즉 삽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애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으며, 이것 역시 진정한 사랑을 지키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둘째, 발기력이 떨어진다고 하여 부부관계를 금하고 잠자리를 따로 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남편에게 정신적 충격을 더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며, 성기능 손상 역시 더 빨리 진전되는 경우가 많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긍정적으로 애무하며, 과하지 않을 정도의 섹스로 남성이 녹슬지 않게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짐으로써 남성 불능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셋째, 이미 기질적 장애가 왔는데도 혹시 회복되지 않을까 하여 시간을 낭비하는 부부가 많다. 하지만 초진 당시 이미 기질적 변화가 온 상태라면 향후 증세는 더 나빠질 뿐이다. 가능한 한 빨리 전문의의 진단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수술 치료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혹시 완전히 병신 되는 것 아닌가’ 걱정한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일단 접어두는 것이 좋다. 의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제 남성들의 성고민은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글쓴이 최형기 님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주임교수이며 국내 최초로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성기능장애클리닉’을 개설한 주인공이다. 특히 아·태지역 성의학자들과 국제적인 교류를 가지면서 아·태임포텐츠학회 창립 멤버로 활약, 제 2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성 치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그동안의 치료와 임상실험을 인정받아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시술 및 강의 초청이 쇄도하고 있다.?이 글은 그의 저서 <아내와 남편이 함께 하는 섹스 코디네이션>(명진출판 刊) 중의 일부분을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