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 기자】
【도움말 |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농문 교수】
학부모 장신문 씨(42·서울 관악구)는 중학 1년인 딸을 볼 때마다 속이 터진다. 책상에 진득히 앉아 교과서를 파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부 좀 해!” 엄마가 잔소리하면 책상에 앉지만 전자오락을 하거나 친구와 통화하며 수다 떨기 일쑤다. 장 씨는 집중력만 키워주면 중위권인 성적이 오를 것 같아 한약방에도 다녀왔다. 몰입 연구가인 황농문 서울대 공대 교수는 “몰입 훈련을 하면 공부가 즐거워진다.”며 “머리를 자꾸 쓰면 IQ가 높아지고 창의력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몰입은 마라톤… 1분 몰입부터 훈련하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드라마를 시청했다.”, ?“게임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가끔 이런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무엇을 하는 게 바로 몰입이다. 황 교수는 “보통 시험 등 위기상황이 다가오거나 TV 시청, 게임 같은 재미있는 일을 할 때 몰입도가 높아진다.”며 “몰입 훈련을 하면 자신이 필요할 때 언제든 몰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몰입은 집중력과 어떻게 다를까? 집중력은 ‘순간집중’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간판을 보고 읽는 것이다. 몰입은 한 가지 활동에 주의집중을 지속하는 것이다.
우선 1분부터 시작해 5분, 10분, 30분, 1시간으로 늘려간다. 황농문 교수는 “몰입은 마라톤과 같다.”며 “처음에는 두뇌가 견딜 수 있는 한계의 70% 수준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리를 끙끙대고 씨름하다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문제를 읽은 후엔 바로 덮는다. 자연히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다음부턴 난도를 높여간다. 약한 몰입-중간 몰입-강한 몰입 단계다. 강한 몰입은 24시간 문제만 생각하는 단계다.
몰입을 할 땐 해답은 보면 안 된다. “반드시 풀겠다.”가 아니라 “1년이 걸려도 좋다. 답을 안보고 스스로 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높이가 4, 밑변이 5인 직각삼각형 면적을 구해보라.” 이 문제를 배우지 않은 아이는 답을 모를 수밖에 없다. 황 교수는 “어려서부터 수백 차례, 수천 차례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쌓이면 생각만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며 “기업이 원하는 도전정신과 열정을 가진 자녀로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해결되면 답이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 이렇게 쉬운데 바보 같이 왜 몰랐지?” 몰입 강도가 높아지면서 두뇌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다.
문제 해결에만 마냥 매달려 있으면 안 된다. 10분 몰입을 했는데 문제가 안 풀리면 넘어가야 한다. 종이에 따로 적어놓고 숙제를 하거나, 다른 공부를 한다. 공부모드와 몰입모드는 다르다. 다른 문제로 넘어가야 공부 페이스가 망가지지 않는다.
종이에 적은 문제는 시간 날 때마다 공략한다.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파고든다. 중간몰입 단계에서 사고력이 엄청 높아진다. 이때 문제를 풀다 선잠을 자는 게 좋다. 선잠을 자면 기분이 달콤해진다. 잠잘 때 인간의 뇌는 ‘슈퍼맨’처럼 강해진다. 황 교수는 “뇌과학에서 잠은 공부를 공짜로 해주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누워서 깊이 잠들면 몸 상태가 나빠진다. 앉아서 자야 한다.
‘천천히 생각하기’ 효과적… 선잠 자는 동안 문제 해결
몰입을 할 땐 뒤로 약간 젖혀지는 목 받침대가 있는 의자에 편히 앉는다. 의자가 45도 이상 기울어지면 좋지 않다. 다른 의자에 두발을 놓고 생각을 하다 잠들어도 된다. 한마디로 힘을 빼라는 주문이다. 골프나 테니스, 수영 같은 운동을 잘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 힘을 빼야 기량이 나오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게 된다.
황 교수는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 등을 꼿꼿이 하고 책을 파고든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온몸의 힘을 빼고 의자에 편안히 앉아 알파파를 유지한 채 천천히 생각하듯 공부하면 몰입도가 높아지고 오랜 시간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부의 진입 장벽은 높다. 10분 워밍업을 하면 좋다. 먼저 온몸의 힘을 빼고 의자에 편히 앉는다. 10분간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눈감은 채 공부할 내용을 천천히 생각한다. 뇌파가 알파파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10분쯤 천천히 생각하기가 끝났으면, 난도가 낮은 내용부터 공부한다. 천천히 진도를 나가 내용을 충분히 소화해야 몰입도가 조금씩 높아진다. 공부하다 졸리면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그대로 목을 뒤로 기대고 잠을 잔다. 몰입도를 올렸는데 인터넷을 하거나 TV 시청을 하면 몰입도가 크게 떨어진다.
‘천천히 생각하기’(Slow Thingking)는 몰입도를 높여준다. 몰입 상태에선 뇌의 전두엽 오른쪽이 활성화되고, 두정엽이 비활성화된다. 명상이나 기도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와 같은 뇌 상태다. 목숨을 걸듯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되,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매일 운동하면 몰입도 높아진다
운동을 하면 똑똑해진다. 학습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황 교수는 “매일 30~40분 운동하면 모든 세포가 100% 활성화돼 최상의 몸 상태가 된다.”며 “땀 흘리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축구, 농구, 야구, 테니스, 라켓볼, 배드민턴 등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몰입을 할 땐 목표를 높게 잡아야 한다. 황 교수는 “먼 목표는 ‘전국 수석이 되겠다’는 식으로 한없이 높게 잡고, 매일의 목표는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잡아 성공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래야 목표 지향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황 교수의 설명. “뇌에서 ‘사령관’인 전두엽이 ‘이것이 목표다!’라고 하면 100조 개의 세포가 철저하게 복종한다. 목표에서 가까워지면 쾌감을, 멀어지면 불쾌감을 느낀다. 목표에 방해되면 자연히 멀어진다. 이때 ‘나는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틈나는 대로 전국 수석이 된 자신을 상상해야 한다.”
목표 설정 뒤 자녀가 PC게임에 빠져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부모가 잔소리하면 안 된다. “너, 이래갖고 수석하겠니?” 이렇게 말하면 자녀는 “아빠가 나를 공부시키려고 그런 말 한 거구나.”라고 받아들인다. 목표 지향 메커니즘은 작동을 중지한다. 또 자녀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새벽까지 공부할 경우, 자제시키는 게 좋다. 공부는 마라톤인데 지쳐서 중도 탈락하기 때문이다.
황농문 교수는 1990~97년 절정의 몰입 사고에서 이룬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 CEO,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활발한 몰입 강연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