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발단은 간염이었다. 그것이 화근의 싹이 될 줄은 짐작조차 못했었다. 간염에서 간경화로, 간암에서 폐암으로…. 속수무책 진행되는 암세포의 맹공 앞에서 의사는 점점 할 말을 잃어갔고, 가족들은 몰래몰래 눈물을 훔쳤다. 누가 봐도 힘든 싸움. 그래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 전주에 사는 유익현 씨(62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암과의 기나긴 사투에서 새생명을 얻은 그가 오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연을 들어본다.?
간염, 그것쯤이야?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30대 초반 예비군 훈련을 갔다가 헌혈을 했는데 비활동성 B형 간염 보균자로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유익현 씨는 ‘그까짓 것’했다고 한다. 별다른 증상도 없었고,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술 한 잔 하는 기쁨도 맛보고, 생활에서도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 정확히는 40대 초반의 어느 날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날도 퇴근길에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맥주잔을 기울이던 그는 깜짝 놀랐다. 언제나 술술 잘 넘어가던 술이 한 모금도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마시기만 하면 구역감이 일어났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그는 날이 밝자마자 동네 병원으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 간염이 만성으로 진행됐다면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 근처 대학병원에도 갔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기적인 검사를 꼭꼭 해야 하고, 치료약도 반드시 복용해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졌다.
이때부터 유익현 씨는 병원에 다니는 틈틈이 간염에 좋다는 약, 좋다는 민간요법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기 시작했다. 최고의 간 전문가도 만나보고, 좋다는 민간비방도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면 나을 줄 알았다.
그러나 간염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병이 아니었다. 2001년, 새로운 모습으로 유익현 씨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어놓았다. 그것은 그의 나이 54세 때의 일이었다.
간암 진단, 수술은 불가?
2001년 봄 어느 날, 그날은 정기 검진 날이었다. 그런데 담당의사가 CT를 한 번 찍어보자고 했다. 일주일 후 결과를 들으러 갔더니 이번에는 MRI도 찍어보잔다. 그러고 나서 하는 말이 “간에 1.8~2cm 정도의 암세포가 생겼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간의 가장자리에 암이 붙어 있으니 수술로 떼어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암이라는 말에 놀란 가슴은 조금 진정이 되었다. 곧바로 입원을 했다. 숱한 검사가 이어졌고 수술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담당의사가 찾아와 수술을 할 수 없다더군요. 암세포가 간의 뒤쪽 가장자리에 붙어 있어서 옆구리까지 절개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큰 수술이 된다는 거였어요.”
결국 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색전술이었다. 그러나 색전술은 결코 치료의 끝이 아니었다. 1차 색전술을 받고 한 달 후 병원에 갔더니 다시 암이 생겼다며 색전술을 또 해야 한다고 했다.
안되겠다 싶었다. 큰 병원에 가보자며 서둘러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2차 색전술을 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됐던 걸까요? 2차 색전술을 마치고 난 뒤에는 통증이 너무 심하고 입맛이 똑 떨어져 밥 한 톨 삼킬 수가 없었어요. 한 끼에 2~3숟가락도 먹지 못한 상태로 한 달 정도 지나니 몸이 해골처럼 변해가더군요.”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의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암세포보다 못 먹어서 죽게 생겼다며 사방팔방으로 수소문 하고 다녔다.
그런 정성이 통했던 걸까?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간암을 이겨낸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사람으로부터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을 먹으면서 바보처럼 살다!
“간암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분을 만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큰 행운이었던 같아요. 그 분은 광주의 한 약사님을 소개해주면서 바보죽 요법을 꾸준히 따라해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만난 약사는 죽을 쑤어 먹으면서 반드시 바보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죽을 쑤는 방법도 일러주었다. 현미+찹쌀현미+쥐눈이콩+검은깨를 생으로 갈아서 죽으로 쑤되, 소금 간을 하지 않는 무염식이어야 하고 먹을 때는 반드시 100번 이상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조한 말, “늘 바보처럼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금 간도 안 한 무염식 죽을 먹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넘어가지가 않았다. “죽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는 물로 삼켰어요. 억지로 먹어서인지 소화도 잘 안 돼 바로 설사를 해버리더군요. 이렇게 며칠 지나니 항문이 헐어버릴 정도였어요.”
그래도 먹어야 살 수 있다며 애원하는 아내 앞에서 억지로, 억지로 죽을 삼켰다. 그렇게 10일 정도가 지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잃어버렸던 입맛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먹을 수 있게 되자 몸은 바로 회복 기미를 보였다. 누렇게 보였던 얼굴의 황달기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일주일마다 한 번씩 병원에 가서 하는 혈액검사에서도 뚜렷한 반응이 감지되었다. 알부민 수치도 좋아지고 암수치도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살 것 같았다.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쳐 지나가던 TV의 한 장면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건강보조식품으로 암을 이길 수 있다는 보도였다. 실제 사례도 소개되었다. 마음이 혹했다. 무엇보다 하지 말라는 금기사항도 별로 없어 더 매료됐다. 죽요법 대신 그 방법을 따라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났어요. 얼마 되지 않아 간암수치는 확확 올라갔고, 병원에서는 암이 재발됐다면서 다시 색전술을 해야 된다고 하더군요.”?
결국 세 번째 색전술을 했다. 그래도 암 수치는 떨어질 줄 몰랐다. 의사는 또다시 색전술을 하자고 했지만 그는 망설였다. 그 즈음 겨드랑이를 만지면 칼로 베이는 듯 선득선득 느껴지는 기분 나쁜 느낌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폐로 전이된 암… 수술도 힘들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목안에 든 가시처럼 하루하루를 불편하게 하자 유익현 씨는 서울로 향했다. 그동안의 진료 차트를 챙겨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리고 가슴 사진부터 찍었다. 선득선득 느껴지는 기분 나쁜 정체를 알고 싶어서였다.
오전에 찍은 가슴 사진 결과는 오후에 바로 나왔다. 사진을 보고 있던 의사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간암세포가 폐로 전이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수술을 꼭 원하면 해줄 수는 있지만 그 가능성은 30% 이하”라면서 “수술을 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숨 막히는 몇 시간이 흘렀다. 죽고 사는 문제다보니 아무도 선뜻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어쩌면 내 인생이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그전에는 간암이라고 해도 죽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면서 머릿속으로 몇 번 죽어도 보고 살아도 보고 하면서 내린 결론은… 수술은 하지 말자는 거였어요.”
그 대신 그가 이 악물고 결심한 게 있었다. 절대 이 병으로는 죽지 않겠다는 오기였다.
어떻게든 낫게 해보리라!
수술을 포기한 유익현 씨는 ‘어떻게든 낫게 해보겠다.’는 오기를 품고 의사에게 물었다. 수술 대신 할 수 있는 게 뭔지. 담당의사는 방사선 치료를 권했다. 그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이와 함께 그가 목숨 걸고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 있었다.
“전에 하다가 너무 힘들어 포기했던 바보죽요법을 다시 시작했어요. 그때는 느슨한 마음으로 투정도 부려가면서 실천했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먹기 싫어도, 맛이 없어도 무염식 죽을 먹었고 기쁘지 않아도, 힘들어도 독한 마음으로 웃었어요.”
병원에 있는 그를 위해 아내는 새벽부터 일어나 죽을 쑤어 병원으로 날랐고, 개다리춤도 함께 추면서 웃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18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바보죽요법도 죽을 힘을 다해 실천했다. 폐에 생긴 암세포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다.
“검사를 해보니 암 덩어리가 5mm 정도 줄어들었다더군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한두 달 만에 암세포가 없어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사의 말을 듣고 퇴원을 했어요.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었으니까요.”
퇴원을 한 뒤로는 더 철저히 바보처럼 살았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 열고 나오면서 하하하 웃음소리로 온가족을 깨웠고 소금 한톨 안 들어간 무염식 죽을 150~200번씩 꼭꼭 씹어서 먹었다. 유행가 틀어놓고 박자 맞추며, 따라 부르며 하루 5끼 죽을 먹었다. 틈틈이 영양제 맞기, 알부민 맞기, 녹즙 마시기, 붕어즙 먹기도 병행했다. 모든 생각은 접어두고 오로지 바보처럼 웃으면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그랬던 덕분이었을까? 한 달 후 다시 대학병원에 가서 정기 체크를 했다. 그런데 방사선 주치의가 느닷없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말을 했다. 폐에 있던 암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뻤다. 살았구나 싶었다.
내과 주치의도 찾아가 체크를 했다. 방사선 치료 때 910까지 올라갔던 암수치가 120으로 떨어졌다며 놀라워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5년, 유익현 씨는 내과 주치의로부터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입원 당시 절망적이었는데 이렇게 좋아진 사례는 만 명당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하다면서 앞으로는 혈액검사만 하면서 지켜보자고 하더군요.”
이때부터는 집근처 병원에 다니면서 혈액검사만 해오고 있다는 유익현 씨. 2009년 12월 현재 그의 몸에 남아있는 암의 흔적은 암수치 1.3이다. 주치의는 완치 판정을 내린 상태다. 이 모두가 바보처럼 웃고 산 덕분이라고, 바보죽요법을 꾸준히 실천한 덕분이라고 유익현 씨는 믿고 있다. 그런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암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암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면 그때부터 살 길이 열린다고 당부한다.
유익현 씨가 전하는? 암 이기는 비결 12계명
1. 무조건 웃어라. 억지로 웃는 웃음도 항암제가 된다. 바보가 되는 것이 지름길이다.
2. 낙천적인 생활습관으로 바꾸어라.
3. 암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친구로 삼아라.
4. ‘나는 살 수 있다.’ 확신을 가지고 적극 대처하라.
5. 암과의 싸움을 장기전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대처하라.
6. 나에게 맞는 치료방법을 찾아서 100% 믿고 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7. 가급적이면 내가 하려고 하는 치료법으로 완치된 환자를 한두 명이라고 만나보고 신뢰를 가지고 시작하라.
8. 밥 한 수저를 먹더라도 150~200번을 꼭꼭 씹어서 먹어라.
9. 암이 좋아하는 마음, 생각을 만들지 말라. 즉 스트레스를 만들지 말라.
10. 암이 좋아하는 음식을 절대로 섭취해서는 안 된다. 기름지고, 동물성 지방이 풍부하고 화학적인 것, 인공적인 것은 되도록 멀리하라.
11. 암환자는 최대한 잠을 많이 자 두어라.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것은 완치의 지름길이다.
12. 모든 것에 감사하라. 가족, 친척, 친구 등 심지어 사물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