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현아 기자】
【도움말 | 가정의학과 전문의 오한진 박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여자(84.4세)가 남자(77.6세)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평균수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강수명 아닐까? 한 재벌가에선 부친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9988’이 들어간 자동차 번호판을 선물했다고 한다. 9988, 즉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면 좋겠지만 과욕이 아닐 수 없다. 온갖 질병으로 골골대며 장수하기보다 팔팔하게 살다 세상을 떠나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평균수명까지 팔팔하게 사는 것은 평소의 나쁜 생활습관만 확 뜯어고치면 그렇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성 싶다. 건강수명은 몸이나 정신에 아무 탈 없이 튼튼한 상태로 활동하며 사는 기간을 가리킨다.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을 입어 활동하지 못한 기간을 빼면 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생명표’에 따르면 남자의 건강수명은 65.2년, 여자는 66.7년이다. 평균수명보다 한참 낮고, 남녀 격차도 훨씬 적다. 특히 여자는 남자보다 오래 살지만 20년 가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병치레하다 숨을 거둔다. 이 같은 사슬에서 벗어날 방법, 과연 없을까?
스트레스는 건강수명의 ‘최대 적’
여기서 잠깐! 여자가 왜 남자보다 장수할까? 가정의학과 전문의 오한진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보다 체력 소모가 적은 것이 첫 번째 이유다. 피하지방이 많고, 매달 생리를 하고,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아 미리미리 대비할 뿐 아니라 여성호르몬이 남성호르몬보다 건강에 유익하다.”
그런데 남녀 평균수명 격차는 꽤 큰데 건강수명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여자가 스트레스에 더 취약해서다. 스트레스는 건강수명의 최대 적이다.
남자는 감정적으로 상처가 적은 동물이다. 반면 여자는 예민하다. 감정이 남자의 10배가량 크다. 기분 좋았다가 나빠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스트레스는 감정의 상처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스트레스가 많다. 어릴 때는 감정의 상처가 생겨도 별로 아프지 않지만 이게 점점 쌓여서 중년이 되면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상태를 넘어선다. 40∼50대 이후 골골대는 이유다.
스트레스는 몸에 산화 손상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많이 발생시켜 노화를 가져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가진 자율신경에 문제가 생긴다.
평균수명까지 팔팔하게 살려면 감정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게 감정의 상처가 있음을 인정한 후 내가 아픈 이유, 불행해진 이유를 찾아본다. 욕심이나 시기, 질투, 부정적인 사고나 감사할 줄 모르는 태도 때문일 수 있다. 오한진 박사에게 그 해법을 물어봤다.
큰 행복을 바라지 말라
빌 게이츠만큼 돈을 벌겠다,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처럼 예뻐지고 싶다는 욕심에서 벗어나라. 바라면 바라는 만큼 불행해진다. 빌 게이츠처럼 갑부가 되기 위해 복권을 사지 말고 그 돈으로 아내와 영화관에 가고, 자녀들과 자장면 한 그릇 더 먹는 게 훨씬 행복해지는 길이다.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작은 일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라.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
가치 있는 활동에 도전해보라. 남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거나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다양한 취미를 즐겨라
우리가 쌓은 지식은 사실 돈벌이에만 이용된다. 스스로 즐거워지는 데 활용되지 못한다. 주민센터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그림 그리기나 악기 연주, 주변사람과의 대화, 요리 등을 배워보자. 옛 선비처럼 난을 치는 취미나 인문학 공부도 좋다.
일십백천만 이론을 들어봤나요?
주말만 되면 히말라야 등반 때나 입는 요란한 옷을 입고 산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친구와 이야기하며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하는 산행에서 일등 경쟁을 하니 하나도 즐겁지 않다. 하산해선 술 마신 후 늘어져서 귀가한다. 이런다고 건강에 도움이 될까?
오한진 박사는 “영화 감상, 독서, 시장 구경, 기타 연주 등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배워두라.”며 “자신이 즐거워지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여러 가지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제때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남편과 아이만 생각할 뿐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엄마들이 참 많다. 새해부터는 혼자 여행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는 습관을 길러보자.
인터넷에선 건강수명을 높이는 비법으로 ‘일십백천만 이론’이 소개돼 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좋은 일 하고, 열 번 이상 웃고, 백 자 이상 글을 쓰고, 천 자 이상 글을 읽고, 만 보 이상 걸으라는 것이다. 스테레오형 여자와 달리 모노형 남자는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강도 높게 파고들어 재미를 느껴보자. 한 가지 취미에 집중적으로 빠져 ‘오타쿠’가 되는 방법도 괜찮다.
소식해야 건강수명 늘어난다
적게 먹으면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소식한다고 수명이 크게 늘어나진 않는다. 연구결과 1년 2개월가량 늘어난다니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대식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병으로 골골대며 아프다가 사망하는 반면 소식가는 비교적 끝까지 건강하게 죽는다. 영양 과잉의 시대에 팔팔하게 살려면 음식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
오한진 박사는 “살찌지 않으려면 음식의 양보다는 음식의 종류에 주의해야 한다.”며 “소중대 식사법을 지키면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아침에는 밥 한 숟가락 정도의 탄수화물을 먹고 점심에는 두부나 살코기, 달걀 위주의 단백질을 배가 찰 정도로, 저녁에는 채소를 양껏 먹는 것이다. 뿌리채소로는 당근과 우엉이 좋으며 줄기채소로는 시래기, 열매채소로는 가지가 좋다. 채소는 하루에 보통 작은 접시로 4∼5접시가량 가득 차게 담아 먹으면 충분하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생활화하라
흡연과 음주는 건강수명의 2대 적이다. 지금 당장 담배를 끊고, ‘불금(불타는 금요일)’마다 과음하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생활습관이 건강수명을 높일 수 있는 첩경이다. 규칙적인 식사와 주기적인 운동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해서 비만과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등을 앓지 않아야 건강수명이 늘어난다.
항산화 작용을 하는 음식을 먹어라
세포가 늙지 않게 하려면 활성산소를 없애야 한다. 활성산소는 밥을 많이 먹거나 스트레스, 흡연, 음주로 인해 많이 발생한다. 특히 심한 운동을 하면 빨리 노화된다.
항산화 물질을 섭취하면 노화를 예방할 수 있다. 비타민, 미네랄, 색깔 물질은 항산화 작용을 한다. 나이든 사람이 음식을 다양하게 먹지 못하면 비타민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종합비타민을 먹는 게 좋다. 색깔이 짙을수록 항산화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
검붉은 색깔의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을수록 좋다. 블루베리, 복분자, 오디, 자두, 포도가 대표적이다. 포도는 껍질째 먹는 게 좋다.
당분의 맛 때문에 과일을 많이 먹지만 비타민은 채소보다 훨씬 적다. 검붉은 채소에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 포함돼 있다. 검은콩, 검은쌀, 검은깨, 비트, 순무, 미역, 김, 자색 양배추와 가지 등을 자주 섭취해야 한다.
오한진 박사는 현재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정회원이자 대한비만건강학회장, 비에비스나무병원 갱년기·노화방지 센터장으로 있다. 성균관대의대 교수, 관동대의대 제일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 <마흔의 다이어트는 달라야 한다>(중앙북스刊)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