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유상우?의학박사】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 괜한 생트집을 잡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화가 나면 화를 풀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화를 풀 때도 기술이 필요하다. 삶의 행간행간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화라는 감정,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 방법을 알아본다.
화를 내라?
2013년 가을, EBS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화풀이’라는 프로그램에 전문가로서 참여를 요청한다 했다. 현대인들이 가장 고통 받는 감정에 해당하는 분노, 화(火)! 이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접하는 필자는 그 취지에 공감하였다. 수개월간 프로그램 속에서 다양한 사례를 접하면서, 화라는 감정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화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리 쉽지 않다. 생생한 사례를 분석하고 그에 관한 해결책을 고민해보는 과정이 단순하게 이론적인 설명을 전개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가장 흔하게 받는 질문 중 하나가 “화를 내야 하는가, 참아야 하는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는 것보다는 화를 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 무조건 화부터 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랜 기간 무조건 참고 감정을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엄청난 후유증이 찾아올 수 있다.
50대 중반 여성의 분노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다.”며 머리끝까지 차있는 분노감을 터뜨리는 50대 중반의 여성. 그녀는 원래 화를 못내는 성격이라며, 평생 가족들에게 화 한 번 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분노 대상은 친정어머니였다. 4형제였던 그녀는 친정어머니가 자신만을 차별한다고 느껴왔고, 그 증거가 재산분배에서 자신만 소외된 것이라 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전혀 표출되지 못하고 전부 그녀의 발바닥으로 향해 있었다. 지난 2년간 발바닥의 신경종으로 엄청난 통증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녀는 발바닥의 통증으로 인하여 5분 이상 서 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라 했다.
그녀와의 면담을 통하여 그녀의 분노 대상이 남편, 딸, 어머니, 친한 친구 등에게 시차를 두고 순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화는 매번 흉통, 두통, 발바닥 통증 등 다른 형태의 신체 증상으로 둔갑하여 나타났다.
이런 사실을 그녀가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분노와 화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로 써보도록 하였다. 글을 써가면서 그녀는 어떤 감정이 과도한지 또는 적절한지 상황을 객관화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평생 화를 품지 않고 살았던 기간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드러내지 않고 참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화가 쌓여서 이제 폭발 직전이었다.
그녀에게 화를 조절하고 적절히 표출하는 첫 시도로 글을 쓰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그 글을 정리하면서 수십 차례 읽고 고친 후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의 답변은 “네가 그렇게 느끼는지 정말 몰랐다. 너에게 너무 미안하구나.”였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어머니로부터의 공감이었다. 그녀의 분노는 얼음이 녹듯이 사그라졌다.
고인 물은 썩는다!
수십 년간 시어머니의 “넌 왜 그 모양이냐?”란 말이 한이 되어 시어머니와 결국 원수가 되는 사례는 이미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화가 날 때 스스로에게 ‘무조건 참아야지’라고 하지 말자.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라고 자문하자. 그리고 구체적으로 ‘언제까지’라고 답을 해두자.
그 다음에는 그 가짓수가 수백 수천 가지에 이르는 ‘어떻게 화를 내야 할까?’를 고민해볼 차례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의 분노를 적절히 통제하거나 해소함으로써 극단적인 분노 상태에 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주변에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또 단순히 감정의 나열이 아니라 어떤 생각이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이때 글로 스스로의 감정을 객관화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녹음기에 녹음을 해보는 것도 좋다. 결국 주변 사람들이나 분노의 대상에게 스스로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화를 내지 말고 화를 잘 전달하자. 화가 난 상태로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것보다는 “내가 화가 많이 났어.”라고 말로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보자. ‘네가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해. 누구라도 화가 날거야’. 화가 나 있는 나를 내 자신이 위로하지 못한다면 누구를 위로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화는 기쁨이나 슬픔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평생 곁에 두고 같이 가야 할 친구 같은 존재다. 어떤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래 가기 위해서는 우선 그 친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라는 감정도 존중하고 이해하자.
유상우 박사는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연세의료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에서 수련, 동대학원에서 정신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유&김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임상지도교수. 외래교수, 한림의대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로 재임 중이다. 공황장애 전문가로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공황장애 인지행동그룹치료 클리닉을 운영해오고 있다. 2001년 최초의 동영상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 ‘다나박사의 공황장애’를 개발했고, 이를 실제 치료에 적용하고 있다. 주요 저서는 <다나박사의 공황장애> <부자가 되는 뇌의 비밀>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