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이기옥 기자】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환자를 돌보는 만큼 의사 자신의 건강도 잘 돌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에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오히려 자신의 건강은 등한시하기 쉽다. 용원휴요양병원 가정의학과 김선규 박사(62세)도 그랬다. 병원은 한창 잘 나갔지만 그만큼 몸은 혹사당하고 있었고, 급기야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김선규 박사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대장암을 극복했다. 전체 암 사망률 4위이며, 수술 후 재발률도 상당히 높은 대장암을 스스로 이겨낸 의사, 김선규 박사를 찾아가 암을 이겨낸 건강비결을 들어보았다. ??
병원 일을 돕다가 의사의 길로~
김선규 박사가 대학 진로를 결정해야 했던 1973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육성정책을 선언, 정책사업을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정책의 영향으로 많은 이들이 공대에 지원했고 문과였던 김선규 박사 역시 공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대의 교육과정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고심 끝에 입대를 결심했다. 군 생활 중에 몸이 좋지 않아 수도통합병원에 몇 개월 입원해야 했다. 심한 상태는 아니었기에 틈틈이 병원 일을 도왔다.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제대 후 복학을 해야 했지만, 공대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것이 의대였다. 군 시절 병원 일을 도우면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대입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연세대 의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문과 성향이 강했던 김선규 박사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의료를 다루는 가정의학과를 택했다.?
김선규 박사는 “한 가지 특정 질병만을 보지 않고 환자의 가족사와 사회적 관계까지도 다 고려해 종합적인 토탈 케어를 목적으로 하는 가정의학과의 이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그의 진료에, 삶 속에 녹아들어 있다.?
너무도 건강했는데 직장암 3기!
참 잘 나가는 의사였다. 하루에 200~300명을 진료해 소변보러 갈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 김선규 박사는 “정신없이 일했죠. 또 술을 무척 좋아해서 진료 후 밤늦게까지, 때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낮에는 또 200~300명 진료를 보면서 정신없이 살았죠.”라며 그 당시를 회상한다.?
과로와 과음 그리고 과식이 반복되었다. 운동은 아예 생각도 못했다. 급기야 몸무게가 100kg을 넘어섰다. 그러던 중 1998년 어느 날 갑자기 설사가 시작됐다. 워낙 건강 체질이었기에 낮에 지사제를 먹고 진료를 보면서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설사는 2~3주간 계속됐다. 가족들은 검사를 받아보라고 성화였지만 그는 그저 “괜찮다.”는 말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막내였다. “아버지가 검사받지 않으면 우리 가족 모두 오늘부터 단식할 거예요.”라는 최후의 통첩이었다.?
정신이 바짝 났다. 헤아려보니 한 달이 되도록 설사가 멎지 않았다. 근처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했다. 담당의사는 내시경 결과를 보니 대장 안에 시뻘건 덩어리가 있다며 어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대장암 3기. 그때 나이 겨우 40대 중반이었다.?
연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장을 약 20cm나 잘라냈다. 2~3주간 입원했다가 한 달 후 항암치료를 예약하고 퇴원했다. 집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왜 암에 걸렸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동안의 과로, 과음, 과식. 항암치료보다는 더 급한 것은 자신의 잘못된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고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홀로 지리산으로 향했다.
자연의 치유를 받다
지리산에 들어가 버려진 빈집에 짐을 풀었다. 나무로 불을 때고 솥에 물을 데워 목욕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산에 올랐다. 대장암 수술로 장을 잘라내면 섭취한 음식이 대장에서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영양분 흡수가 안 되고 설사도 자주 하게 된다. 김선규 박사도 하루에 20~30번씩 화장실에 가야 했기에 처음에는 그다지 먼 곳까지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지리산 생활을 할수록 차츰 화장실 가는 횟수가 줄고 간격도 길어졌다. 그렇게 매일 꾸준히 운동 삼아 산에 올랐다.
음식재료도 모두 자연에서 얻었다. 직접 채소를 키우고, 식물도감을 들고 산에 올라가 야생의 먹거리를 채집했다. 그리고 된장, 고추장,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을 주로 먹었다. 김선규 박사는 “채소 하나라도 자연산은 맛도 다르고 향도 달라요. 아무래도 야생의 악조건에서 자라면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물질을 스스로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인데 그 물질이 바로 우리에게 약인 거죠.”?
이렇게 산속에서 3년여간 생활을 하다 보니 몸이 좋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암 재발 징후가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
암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을 꿈꾸며
산에서 내려온 김선규 박사는 다시 의사로서 비만클리닉과 모발클리닉 등의 진료활동을 했다. 특히 암 원인 중 하나가 비만이라고 생각했기에 비만클리닉에 집중했다. 또한, 장내 ?유익균을 살리는 발효음식의 효능을 깊이 경험한 그는 발효음식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고, 올 2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그는 경남 창원의 용원휴요양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진료를 보고 있다. 김선규 박사의 진료는 여기서도 남다르다. 그저 의사로서 처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치매 환자, 암 환자들을 돌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60~70년의 역사를 살펴보고 공감하며 함께 한다. 그의 이러한 진료는 환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선규 박사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암 환자들을 위한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자신이 했던 것처럼 요양병원에 유기농 텃밭을 마련해 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스스로 키우고 수확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스스로 자신의 먹거리를 키우는 과정에서 암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강화하고, 자연 속에서 마음의 풍족함은 얻고 스트레스는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규 박사의 요양병원에서 많은 암 환자들이 치유의 기쁨을 얻기를 기대한다. ?
김선규 박사의 암을 이기는?건강비결 5계명
1. 자신만의 암 극복 방법을 찾아라
누군가 성공한 방법으로 나도 반드시 성공하리라 생각지 말자. 자신이 왜 암에 걸렸을지를 생각해보고 그간의 그릇된 생활 및 식습관이 있다면 이를 개선하도록 노력한다.
2. 여럿이 함께하는 운동을 해라
평생 해야 하는 것이 운동이다. 의무적으로 하는 운동이라면 평생 계속할 수 없으니 여럿이 함께 즐기며 할 수 있는 운동을 해라. 그러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3. 먹거리에 특히 신경 써라
평생 자기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음식이다. 야생에서 먹거리를 얻는 것이 가장 좋다. 집안에 작은 텃밭을 마련해 직접 채소 등을 키워 먹도록 하고, 주말농장 등을 이용해보자. 그럴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유기농을 먹도록 하라. 된장, 고추장, 김치, 생막걸리와 같은 발효식품을 많이 먹자. 장내 유익한 미생물을 살리는 것이 건강 회복의 길이다. 발효식품은 장내에 유익한 미생물이 살게 해 체내 생태계를 회복시켜 준다. 또한, 과식하지 않도록 한다.
4. 정신 건강을 잘 챙겨라
종교가 있다면 종교생활을 열심히 해라. 그렇지 않다면 명상이나 태극권, 요가 등을 하는 것도 좋다.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노래를 많이 부르는 것도 정신 건강에 굉장히 좋다. 노래방을 찾아가 그날 기분에 따라 선곡해 노래를 불러보자. 스트레스가 풀리고 정신 건강에 도움도 된다. 그동안 미뤘던 취미생활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5. 몸은 자신이 살리는 것이다
병원에서 내 몸을 낫게 해준다고 생각지 마라. 병원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마라. 병원은 단지 나를 도와주는 곳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내 몸 치료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적극 치료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런 마음가짐이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