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산으로 떠난 지 8년…암 승리자라고 부러워하네요”
한순간에 너무도 달라져버린 삶! 대장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였다. 하루하루 생사의 기로에서 악전고투하는 삶! 12개월째 항암치료로 초주검이 되면서부터였다. ‘죽음만이라도 조용히 맞이하자!’ 그래서였다. 거동조차 힘든 몸으로 산으로 향했다. 전북 장수군 산서면의 깊은 산속, 인적 없는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산속 생활을 시작했다. 외로움? 무서움? 생사의 기로에서 그것은 사치였다.
세상과 단절된 채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살아온 지 올해로 8년! 그 세월은 한 사람의 인생 지침을 돌려놓았다. 기사회생의 발판도 마련해주었다. 5년 암 생존율의 주인공이 된 지는 오래고, 암 환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됐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북 장수군 산서면의 깊은 산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정점호 씨(59세)를 만나봤다.
나이 오십에 닥친 위기
이상했다. 화장실에 갔다 와도 시원하지 않았다. 잔변감이 오래갔다. 변비도 심했다. 나이 들면 으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날로 그 증상이 심해졌다. 화장실 가는 횟수도 자꾸만 늘어났다. 1년째 그런 증상이 계속되자 정점호 씨는 전주에서 유명하다는 내과를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별것 없었다.
“위장 내시경도 하고 대장 내시경도 하고 초음파도 찍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어요. 변비약과 몇 가지 약을 처방해 주길래 그것만 먹었습니다.”
그러나 약을 먹어도 잔변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점점 더 심해져 갔다. 하루에 화장실을 10번까지 가면서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즈음!
“결국 종합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5분 만에 끝났습니다.”
이상하게 여기는 그에게 담당의사가 말했다. “용종 하나를 떼어냈다.”고. 그러면서 “소견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 후의 일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될 것이다.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소견서를 들고 대학병원에 갔더니 용종 CD를 보고 직장수지검사를 한 후 바로 그러더군요. 암이라고. 좀 더 정확하게는 ‘암이라는 걸 부인 못한다. 이 지경까지 있었냐?’고 했어요.”
부친을 대장암으로 여읜 그였다. 그래서 건강관리도 열심히 했던 그였다. 하루 세끼 식사는 꼬박꼬박 챙겼고, 술도 안 했다. 운동도 늘 하고 그래서 바른생활 사나이로 통하던 그였다.
그런데 암이었다. 똑같이 대장암이었다. 크기는 7~8cm라고 했다. 정점호 씨는 “대장암 몇 기인지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1기든 말기든 의미 없다 여겼다. 어쨌든 암이었다.
2008년 4월 어느 날, 정점호 씨는 나이 오십에 대장암 진단을 받고 그의 생애에서 가장 힘든 하루를 보냈다.
“대장 1.5m를 잘라내야 합니다”
항문에서 7.5cm에 암이 퍼져 있다고 했다. 전이는 안 됐고, 재발 확률은 100%라고 했다. 그래서 대장 전체를 절제해야 한다는 게 담당의사의 말이었다.
정점호 씨는 그나마 수술할 수 있는 암이어서 안도했다고 한다. 결국 대장 1.5m를 잘라내는 대수술이 진행됐고, 소장과 항문을 연결하면서 수술은 끝이 났다. 장루는 하지 않아서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수술 후 며칠이 지나도 가스가 나오지 않아 죽다 살아났어요. 복수가 차면서 혼수상태에 빠져 한동안 정신을 잃었어요. 담당의사는 장루를 안 해서 복수가 찬 것 같다며 재수술을 하자고 했는데 수술 전날 다행히 복수가 빠지면서 재수술의 고비는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위급했던 상황은 지금도 후유증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아직도 배가 비대칭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점호 씨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지만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 살았구나’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암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항암주사 30번, 항암약 7개월
정점호 씨가 퇴원하면서 병원으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싫고 좋고가 없었다.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해서 퇴원한 지 한 달 만에 또다시 병원을 찾았다.
“5일 만에 한 번씩 항암주사 30회를 맞았고, 항암약을 7개월 간 먹으면서 세상에 이런 고통도 있나 싶었어요. 대장을 제거한 탓에 물 한모금만 마셔도 곧바로 화장실행인데 설상가상 항암치료 부작용까지 더해지면서 사람 몰골이 아니었어요.”
항암치료가 끝나갈 무렵에는 병원 근처에만 가도 속이 울렁거렸다. 병원 예약 날짜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먹지 못하고, 먹었다 해도 곧바로 화장실행이니 몸은 날로 피폐해져 갔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였다. 정점호 씨는 독한 결심을 했다.
“산속으로 들어갈 결심을 했습니다. 몸은 형편없이 망가져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가족들에게도 아픈 남편, 아픈 아빠의 모습만 보이는 게 싫었고…그래서 떠날 결심을 했습니다.”
정점호 씨는 “조용히 죽을 자리를 찾아 떠나는 기분으로 전북 장수군 산서면의 깊은 산속에 있는 빈 농가로 찾아들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2009년 5월 23일의 일이었다. 1년간 계속된 항암치료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을 때였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홀로 맞서야 했던 산속의 적막감은 지금도 그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영상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자’
울창한 소나무와 잣나무로 둘러싸인 곳!
인가에서 1km나 떨어져 있어서 사람 구경조차 하기 힘든 곳!
전북 장수군 산서면의 깊은 산속에서 빈 농가를 빌려 산속생활을 시작했던 정점호 씨는 한 가지만 결심했다고 한다.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자.’ 자연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자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산속에서의 그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1.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깊은 산속에 암자가 있어서 전기는 들어왔지만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둠은 어둠대로 두었고, 밝음은 밝음대로 두었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2. 아침에 일어나면 숲속 오솔길을 따라 1시간 남짓 걸었다. 날마다 걸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었다.
3. 먹거리는 기본적으로 1식 5찬 1탕식으로 먹었다. 한 끼를 먹을 때 잡곡밥+ 반찬 5가지+국이나 탕을 먹었다.
4. 먹거리는 직접 재배해 먹었다.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렸다. 거동조차 힘든 몸이었지만 무도 심고 배추도 심었다. 콩도 심고 당근도 심었다.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지만 농약을 뿌리지 않고 제초제도 쓰지 않으면서 제철 채소를 손수 키워서 그것을 먹었다. 간장, 된장도 직접 담가서 먹으며 산속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그런 생활 덕분이었을까? 산으로 들어간 지 8년이 지난 지금 정점호 씨는 기사회생의 주인공이 됐다. 5년 암 생존자에도 그 이름을 올렸고, 암조차도 전화위복으로 만든 사람이 됐다.
정점호 씨는 “산속에서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 자연이 준 먹거리를 먹으면서 거동조차 힘든 몸이 나날이 회복됐다.”며 “산속생활을 견딜 수만 있다면 산으로 들어가는 것도 병든 몸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017년 9월 현재 정점호 씨는…
자연의 변화를 좇아가는 것만으로도 하루 일과가 빠듯하다는 정점호 씨!
암 수술 후 8년이 지난 탓에 암 완치자로 분류되지만 여전히 그는 산속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해가 뜨면 일어나 아침운동을 하고 닭도 키우고 염소도 키우고 개도 키우느라 바쁘다. 웬만한 채소는 손수 농사 지어 먹느라 쉴 틈이 없다. 꽃이 피면 꽃도 봐줘야 하고, 가을 되면 밤도 주워야 하고 한시도 자연은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끊임없이 말을 걸고 대화를 요구하는 탓에 하루해가 짧다고 말한다. 지금 그의 건강 상태는 어떨까?
“암 때문에 병원에 가지는 않습니다. 다만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만 하고 있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이 모두가 자연의 덕분이라고 말하는 정점호 씨! 그래서 앞으로도 자연의 한 점으로 살아갈 생각이다.
그런 그가 이번 기회를 빌어 꼭 말하고 싶다는 메시지는 하나다. “암의 승패는 성실성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성실하게 운동하고, 얼마나 성실하게 제대로 된 먹거리를 먹고 하는 일련의 노력들이 암에서 탈출하는 비결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산속생활 8년을 통해 얻은 결론이란다.
앞으로는 암 환자들의 권익을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것이 정점호 씨의 남은 꿈이다.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도 겪었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말 한 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이 암 환자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의료진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생사를 좌우할 만큼 위력적이다.
“날마다 보는 것이 암 환자이고, 그래서 의료진에게 암 환자는 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암 환자는 하나뿐인 목숨을 놓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사람이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항암 신약이 나와도 절차에 밀리고 정치싸움에 휘둘리는 동안 수많은 암 환자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