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효진 교수】
하루 일을 끝내고 오직 나를 위해 두 발 쭉 뻗고 따뜻한 잠자리에 드는 시간.
정말 꿀맛 같은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있기에 고단한 하루를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공포의 시간일 수도 있다. 가위눌림에 시달리느라 공포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자주 가위에 눌리는 사람은 ‘밤이 오는 게 싫다!’
‘차라리 잠을 안 자고 싶다!’고 절규한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치를 떠는 가위눌림, 그 섬뜩한 공포를 예방할 방법을 알아본다.
가위에 눌려 보셨나요?
사례 1.?
30대 직장인 성재영 씨(가명)의 침대 맡에는 야구방망이가 2개 있다. 몇 번 가위에 눌려 본 성재영 씨는 가위눌림이 끝나고 손발이 움직이는 순간 야구방망이를 들고 허공에 몇 번이고 휘두른다.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겠는데 침대 곁에서 누군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을 비웃다가 가위눌림이 풀리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나니 그렇게라도 방망이를 휘둘러야 분이 풀린다. 그러고 나면 잠이 홀딱 깬다. 혹시나 잠이 들면 또 가위눌림이 시작될까 무서워 잘 생각도 없어진다.
사례 2.?
40대 자영업자 황서철 씨(가명)는 약 5년 넘게 잊을 만하면 밤에 두 사람을 봤다. 그들은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다. 이제는 안 보고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익숙하지만.
5년 전 사업실패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였다. 자고 있는데 천장 위에서 두 사람이 자신을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딸과 엄마로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누구냐고 외치고 싶었지만 말은 안 나오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두 명은 며칠에 한 번꼴로 황서철 씨를 찾아와 한참을 쳐다보고 가곤 했다. 잠자리를 옮기면 괜찮을까 싶어 혼자 사는 친구 집에서 몇 달을 같이 살았지만 둘은 여전히 잊을 만하면 나타났다.
장사도 잘되고 아들도 대학에 들어가는 등 삶이 안정된 요즘은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꼭 잠들기 전에는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가위눌림, 병일까?
가위눌림은 잠을 자는 도중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정상적으로 우리 몸은 잠들었을 때 근육이 이완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래서 꿈을 꿀 때 그 내용대로 우리 몸이 움직여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아직 몸이 이완 상태에서 회복되지 않았는데 의식이 깰 수 있다. 이때 우리 몸이 마비되어 있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가위눌림, 의학적으로는 수면마비라고 한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효진 교수는 “수면마비는 의식의 각성이 불완전해 뇌는 깨어 있으나 사지는 깨지 않은 상태이며, 뇌의 각성 상태가 불완전하므로 환청이나 환각을 잘 동반한다.”고 설명한다. 가위눌림은 심각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하고 몸이 공중부양하거나 나쁜 기운이 침실로 들어오는 듯한 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은 보통 10대에 처음 시작하지만 어떤 연령이든 일어날 수 있다. 최근 한 연구를 보면 일생 중 약 1/3의 사람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의 수면마비를 경험했으며, 그중 10%는 반복적으로 공포 증상이 있는 가위눌림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몽, 공황장애와는 달라
가위눌림은 꿈은 아니다. 가위눌림을 때론 악몽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이 둘은 다르다. 악몽은 말 그대로 나쁜 꿈을 꾸어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만 가위눌림처럼 몸이 마비되는 느낌은 뚜렷하지 않다.
잠들기 전에 나타나는 공황발작을 가위눌림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공황발작은 짧은 시간에 공포, 불안이 급격히 증가해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고 숨이 막히거나 가슴이 답답해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이다. 공황발작은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공황발작 역시 가위눌림처럼 뜻대로 몸을 못 움직이는 느낌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한밤중 혼자와의 극한 싸움 가위눌림 극복법
1 옆으로 자자!
가위눌림이 얼마 동안의 시간을 두고 되풀이된다면 보통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 고효진 교수는 “똑바로 누워서 자지 않고 옆으로 자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옆으로 누워서 자면 목젖이 기도를 막으면서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이 없어지고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서 깊은 잠을 자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코골이, 수면무호흡증, 목이 두껍고 짧은 경우에는 옆으로 자는 것이 좋다.
2 규칙적으로 잠을 푹 자자!
고효진 교수는 “충분한 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잠을 잘 자는 것도 수면마비를 예방하는 데 좋다.”고 말한다. 불규칙한 생활, 수면 부족, 과로, 스트레스가 심할 때 가위눌림이 찾아오는 일이 많다. 자신의 생활, 특히 잠이 불규칙하고 부족하지 않은지 점검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잠을 청해본다. 푹 자고 싶다면 침실을 어둡게 하고, 오후부터는 커피나 카페인 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자신이 지금 걱정하면 달라지는 일과 걱정해도 달라지지 않는 일을 구분하자. 대부분은 걱정해도 달라지지 않는 일일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으로 귀한 잠을 내쫓지 말자.
3 가위에 눌리는 질병을 없애자!
가위눌림 때문에 몹시 불안하고 밤에 잠을 못 자거나 낮에 졸음이 심하게 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가위눌림이 오는 원인 질환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기면병이나 다리 경련과 같은 수면질환, 양극성 장애, 약물남용, 고혈압, 간질 같은 병이 있어도 잘 나타난다.
고효진 교수는 “여러 가지 수면장애, 스트레스,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물을 잘 살펴봐야 하며, 특히 기면병의 경우 정확한 진단을 위해 수면다원검사, 반복적 수면 잠복기 검사 등의 특별한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공황장애, 조울병과 같은 정신질환 여부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고효진 교수는 “수면마비가 있는 사람들은 불안척도 점수가 높게 나오는 등 정신병리학적으로 불안과 깊은 관련이 있다.”며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덧붙인다.
고효진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에서 노인정신장애, 치매, 수면장애, 조울병, 조현병 등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