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지금으로부터 7년 전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사람!
췌장과 담도 사이에 생긴 암 때문이었다. 병원에서는 총담관암이라고 했다. 73세라는 나이 땜에 수술도 못 한다고 했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 화제다.
올해 나이 80세, 아직도 하루에 5군데 이상 초중등학교를 돌며 교재 세일즈도 한다. 천안에 사는 이장복 씨(80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총담관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그가 80 장수를 누리며 아직도 현역에서 팔팔 청춘을 살고 있는데 그 비밀은 과연 뭘까??
2010년 10월에 총담관암…
이장복 씨는 천안에서 갑부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젊어서부터 시작한 서점은 잘 됐고, 참고서 총판까지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국내 서점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그의 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설상가상 사기까지 당하면서 벼랑으로 내몰렸다. 그 즈음이었다. 몸이 좋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이 빠졌다. 소화도 잘 안 됐다. 그래서 찾게 된 동네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등골이 오싹했다.
“얼굴도 노랗고, 눈도 노랗다면서 초음파를 해보더니 곧바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부랴부랴 천안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서 MRI를 찍었고, CT도 찍었다. 그러더니 잘못됐다고 했다. 암이라고 했다. 췌장과 담도 사이에 암이 생겼다고 했다. 총담관암이라고 했다.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하루아침에 암이라니… 그렇게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 암이라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할 말을 잃었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의사에게 한 말은 “꼭 살아야 한다.”는 거였다.
“제가 죽으면 피해를 볼 사람이 많아서 몇 년은 더 꼭 살아야 하는데 여기서 수술하면 살 수 있겠냐고 담당의사한테 대놓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서울로 가라고 하더군요.”
2010년 10월 이장복 씨는 이름도 생소한 총담관암 진단을 받고 서울로 향했다. 꼭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며.
수술이 어렵다?
‘어디서 수술을 해야 하나?’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생사가 달린 문제여서 더 그랬다.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모든 인맥도 총동원했다. 그런 끝에 이장복 씨가 향한 곳은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이었다. 췌담도외과 이우정 교수를 찾아갔다. 췌장암 수술을 잘하는 의사로 소문나 있어서였다. 그런데 어쩌나?
“수술이 어렵다고 했어요. 일흔셋이라는 나이가 문제였어요. 나이가 많아서 모든 내장 기능이 저하돼 있고 그래서 수술해도 회복하기 힘들다고 하대요.”
그래서 물었다. “얼마나 살 수 있냐?”고. 의사의 대답은 6개월이었다. 일흔셋에도 뜨거운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한참을 울고 난 뒤 이장복 씨는 다시금 담당교수를 찾았다. 약속도 없이 교수실로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매달렸다.
“지금 죽을 수 없다고 매달렸어요. 지금 죽으면 사업체가 망해서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본다고 매달렸어요. 그래서 몇 년은 더 살아야 한다고, 꼭 살아서 정리를 해야 한다고 매달렸어요.”
이장복 씨는 “수술을 못 하는 이유가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면 검사라도 한 번 받아보고 싶다며 매달렸다.”고 한다.
“믿는 구석이 있었어요. 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특별히 해온 운동이 있어서 누구보다 건강하리라 자신하고 있었거든요.”
발바닥 두드리기였다. 걸음을 못 걷던 사람이 오래해서 다시금 걷게 됐다는 말을 듣고 시작한 운동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해온 운동이었다. 양쪽 발을 각각 1600번씩 나무봉으로 두드렸다. 발바닥에 집중돼 있는 16군데 경혈을 100번씩 두드렸다. 날마다 하루 30분씩 양발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래서였다. 검사라도 해봐달라고 설득했다. 누구보다 내장기능이 튼튼하리라 자신했다.
그렇게 해서 받게 된 검사 결과는 의사도 놀라워했다. 수술을 해도 될 만큼 내장기능이 튼튼하다고 했다. 혈압도 정상, 당뇨도 없었다. 그리하여 2010년 11월 11일 이장복 씨는 수술실로 향했다.
열심히 운동하는 환자로 병원에서 유명~
장장 12시간에 걸쳐 대수술을 해야 했던 이장복 씨! 오전 10시에 시작된 수술은 밤 10시에 끝났다. 위장 일부를 잘라냈고, 췌장을 잘라냈고, 십이지장을 잘라냈고, 담낭을 잘라냈다. 수술한 지 3일 만에 깨어난 그에게 담당교수는 말했다. “수술은 잘 됐으니 이제부터는 운동을 해야 삽니다.”
이때부터 이장복 씨는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병원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온몸에 호스를 주렁주렁 매달고 2시간마다 한 번씩 병원 복도를 걸었다. 사람들이 다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병원 개원 이래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열심히 걸었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한 달 후 퇴원을 할 때 그는 수술 부위가 잘 아물어서 깨끗하다는 칭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7년 3월 현재, 이장복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전히 팔팔~ 현역인생을 사는 주인공
2017년 3월 10일, 천안시 쌍용동에서 만난 이장복 씨는 건재했다. 올해로 만 여든 살이 되었다지만 하루에 4~5곳의 초중등학교를 다니며 교재 세일즈도 한단다.
“암 수술 후 55년간 해오던 서점은 문을 닫았어요. 어음을 빌려간 사람이 막지 않아서 그렇게 됐지만 원망은 하지 않았어요. 생사의 문턱까지 갔다 오니 세상사 이해 못할 일도 없더라고요.”
평생 동안 일군 것을 모두 잃었지만 죽다가 살아난 행운이 고마워서 그냥 “그까짓 것” 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편했다. 그래도 궁금했다. “암 수술 후 후유증은 없었어요?”
이장복 씨는 “암 수술 후 더 건강해졌다.”며 좋아한다. 암 수술 후 5년도 지나고 7년째로 접어든 지금 그의 몸 상태는 이상무다. 지난해 초에는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담당의사의 통보까지 받았다. 재발도 없고, 전이도 없고 아주 깨끗하다고 했던 것이다.
이장복 씨는 “그동안 꾸준히 해온 건강 관리법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암 수술 후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열일 제쳐두고 열심히 했다는 몸 관리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1.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실내자전거 타기.
새벽 4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실내자전거를 30분간 탄다. 되도록 옷을 다 벗고 목에 수건만 두르고 한다. 기아를 변속해서 빡빡하게 해놓고 각 발마다 500번씩, 하루 1000번은 꼭꼭 페달을 밟는다. 다리에 힘이 생기고 걸음걸이도 활기차졌다.
2. 팔다리 스트레칭 30분 하기.
팔, 다리, 몸 구석구석을 늘려주고 당겨주면서 온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날마다 30분씩 한다. 만세도 부르고 돌려도 보면서 잘 쓰지 않는 몸 구석구석에 자극을 준다.
3. 발바닥 두드리기 30분 하기.
발바닥 두드리기는 지금도 여전히 날마다 하는 운동법이다. 발바닥에 분포한 경혈 16군데를 각각 100번씩 두드려 한쪽 발에 1600번씩 30분간 두드려준다.
4. 날마다 발목펌프운동하기.
암 수술 후 신경외과 의사인 친구 아들이 추천해서 하기 시작한 발목펌프운동은 이장복 씨가 극찬하는 운동이다. 하는 요령도 간단하다. 누워서 한쪽 다리를 조금 들어 올린 뒤 다리의 힘을 빼고 발목펌프기에 툭 떨어뜨린다. 한쪽 발에 35번씩 날마다 한다. 피로가 풀리고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열심히 실천한다.
5. 밥 한 숟가락을 50번 이상 씹어 먹기.
특별히 가려 먹는 것은 없다. 다만 인스턴트식품, 가공식품은 되도록 안 먹는다. 또 밥 먹는 시간도 조금 오래 걸린다. 밥 한 숟가락을 50번 이상 꼭꼭 씹어서 먹기 때문이다. 최대한 오래 씹는다. 숫자를 세어가면서 오래 씹는다. 그래서인지 위장 일부, 췌장, 십이지장, 담낭을 잘라냈지만 소화 기능에 문제가 없다.
포기는 금물, 성공은 실패에서 오는 것!
오늘도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실내자전거를 타고, 팔다리 운동을 하고, 발바닥 두드리기를 하고, 발목펌프운동을 하면서 건강한 80세를 살고 있는 이장복 씨!
나이 일흔셋에 암이라는 최대 적수를 만났지만 거뜬히 이겨내고 장수하고 있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건강하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기운을 얻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달밤에 체조하는 사람이 그였다. 하기 싫은 날도 있었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바닥을 두드리고 발목펌프운동을 했던 그였다.
그렇게 열심히 했더니 그 결과는 정직하더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렇게 열심히 했더니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나더라는 게 그의 전언이다.
췌장을 잘라낸 탓에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던 그였다. 그런데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고도 당뇨 걱정 없이 잘 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다들 암이라고 하면 죽는다는 생각부터 하는데 절대 그러지 말라고 이장복 씨는 말한다. 오늘부터 새롭게 태어난다는 생각을 하라고 이장복 씨는 말한다. 건강이 나빠져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강근한 체질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 성공은 실패에서 오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 몸이 나빠졌으니 이제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암의 덫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된다는 게 이장복 씨의 당부이다.
그런 그에게는 아직도 한 가지 꿈이 더 있다. “올해 손자가 중학교에 들어갔어요. 손자가 장가 갈 때까지는 살고 싶습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이장복 씨의 노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편한 삶 대신 날마다 운동하고 날마다 활동하면서 하루하루의 삶에 반짝반짝 윤기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