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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소심한 성격의 덫, 불쑥불쑥~ 화병 이기기 전략

2010년 03월 건강다이제스트 봄빛호 44p

【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 기자】

【도움말 |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화병스트레스클리닉 김종우 교수】

【도움말 | 정신경영아카데미 문요한 원장(정신과 전문의)】

‘(머리) 뚜껑 열려!’ ‘피가 거꾸로 솟아!’ ‘미치고 펄쩍 뛰고 싶다….’

흔히 다혈질인 사람들이 벌컥 화내며 하는 말이다. 분노를 못 참고 충동적으로 폭발한 상태다. 화병의 영어명은 분노증후군이다. 화병은 6개월 이상 반복되는 스트레스로 생긴 분노를 표출할 수 없을 때 생긴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화병스트레스클리닉 김종우 교수는 “최근 화병 환자군의 범주가 넓어졌다.”며 “고부갈등을 겪는 며느리,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가 여전히 많지만, 직장인·학생화병이나 며느리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시어머니 환자 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학생·시어머니 화병 환자 늘어

화병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한국인의 문화관련 증후군이다. 분노조절장애는 정식 진단명은 아니다. 단일 질병군이라기보다 우울증, 불안증, 성격장애, 충동조절장애, 중독성 질환 등의 한 증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신경영아카데미 문요한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예전에는 지나친 분노 억압으로 생긴 화병 상담이 많았다.”며 “요즘은 지나친 분노 폭발로 인한 ‘분노조절장애(일명 울컥증)’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급증하는 분노조절장애를 보면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충동적인 분노 폭발형’과 ‘습관적인 분노 폭발형’이다. 충동형은 강한 생리적 반응이 동반돼 도저히 화를 못 참다가 분노를 폭발시킨다. 다혈질이 대표적이다. 습관형은 생리적 반응은 강하지 않지만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식의 경험을 통해 분노 감정을 키워온 경우다.

화병은 우울증과 다르다. 화병 환자는 억울하고 답답한 감정을 느낀다. 이는 우울장애나 불안장애와 다르며 스트레스성 질환에 가깝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하는 우울증과 달리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싶어한다. 가사와 같은 일상생활이나 활동에 큰 어려움은 없다.

김 교수는 “같은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긴장되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열이 치솟는다.”며 “화병에 걸리면 분노가 없어도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여성은 갱년기 때 화병이 많이 생긴다. ‘빈둥지증후군’도 화병과 관련 있다. 문 원장은 “갱년기 이전엔 주도권이 적고 자녀 양육에 힘쓰다 보니 상대적으로 분노 억압이 이뤄졌던 것에 비해 갱년기 이후 분노 억압이 잘 되지 않고 분노 표출이 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생물학적 변화도 이유다. 갱년기로 인한 에스트로겐의 감퇴가 문제다. 우울증이 겹쳐지면서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상대적으로 감퇴된 여성호르몬으로 남성호르몬 비중이 높아지면서 성격이 바뀐다. 문 원장은 “자녀들이 커서 독립하거나 결혼하면서 심리적 상실감이 깊어지고, 자녀 양육 때문에 참아온 부정적 감정을 참을 필요를 느끼지 않다 보니 화병에 걸리기 쉽다.”고 말했다.

문 원장은 “화병이 있는 사람들은 감정 억압을 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신체 증상을 주로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며 “뚜렷한 원인도 모른 채 소화불량, 두통, 흉통 등의 증상으로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다니기 쉽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묻지마 살인’사회 범죄도 화병에서 기인

화병은 개인적 문제인 동시에 사회 문제다. 2008년 숭례문을 잿더미로 만든 채모 씨는 “토지 보상금에 대한 불만 때문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소용이 없어 사회에 대한 반감 때문에 방화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문 원장은 “분노조절장애와 분노범죄의 급증은 사회 문제에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사회의 중심축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자기억제’보다 ‘자기표현’이 강조되고 관계의 힘이 약해지고 있어서다. 특히 과잉경쟁사회와 승자독식사회가 되면서 협동의식보다 경쟁의식이 높고 많은 사람들이 ‘실패자(루저)’ 혹은 ‘잠재적 실패자’라는 느낌을 갖고 있어 사회적 좌절감과 분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게 문 원장의 분석이다.

분노를 느낀 대상과 분노를 표현하는 대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약자에게 분노를 표현하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자신을 공격한다. 청소년들이 자해나 자살 같은 행동을 많이 하는 이유도 건강하게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통로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문 원장은 “‘묻지마 살인’은 분노 표출 통로를 마련하지 못한 개인이 불특정 사회 약자에게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며 “이들은 좌절과 분노에 대한 원인을 개인 잘못이 아닌 사회 문제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는 스스로 ‘마이너리티’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촛불집회도 일부 피해자 의식이 표출된 것 아니냐”며 “국민들이 이분법적 사고를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진단. “우리나라는 한 사건이 인생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땅값, 집값이 그렇다. 부동산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큰돈을 거머쥔 부자들을 주변에서 보면서 가치관의 혼돈에 빠진 경우가 많다. 해방 이후 짧은 기간에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순간적인 선택에 의해 부를 쌓을 수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혁신도시 지정 이후 땅값 보상 문제로 빚어지는 사회 갈등이 심각하다.”

김 교수는 “앞으로 학생집단과 국제결혼 이주민들의 화병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입시 중심의 학급에서 방치된 절반의 학생군과 국제결혼 이주민과 이들의 2세, 3세의 ‘마이너리티’ 의식이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화병을 앓는 실직자들도 많다. 노동 유연성이 떨어져 ‘괜찮은 일자리’가 많지 않다 보니 구조조정을 겪은 실직자들의 피해자 의식이 깊다.

분노 억제하면 암·당뇨병 생긴다

김 교수는 “마음에 쌓인 화병을 장기간 방치하면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한다.”며 “분노 표출(Anger-Out) 환자는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 분노 억제(Anger-In) 환자는 암과 당뇨병에 각각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화병을 앓는 가족에겐 환자의 억울함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 편들어주기보다 “참 속이 상했구나!” “오죽 힘들었으면~”과 같이 마음을 받아주는 게 중요하다. 분노의 대상 앞에서 감정을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거나 격려해주면 좋다. 성격과 화병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심한 A형’이 화병에 걸리기 쉽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분노를 받으면 직접적으로 풀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풀거나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화병에 취약하다.”며 “자기공격형, 수동공격형 성격이 화병을 부른다.”고 말했다.

자기 긍정감이 깊은 사람은 ‘난 피해자’라는 의식 대신 ‘내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이 유연해야 화병에서 자유롭다는 얘기다. 삶 자체가 여유 있는 사람은 화병에 걸리지 않는다. 한 발짝 물러서서 상황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김 교수의 얘기. “어떤 장면을 본 후 ‘멋있다’ ‘좋다’ 하며 감동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화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화병에 걸린 기혼 여성에게 ‘남편과 가장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없다’고 말한다. 행복을 찾아낼 줄 모르면 화병에 걸리기 쉽다. 나쁜 기억 때문에 좋은 기억이 들어설 공간이 없는 것이다.”

화병을 앓는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부인과 가장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자신에게 잘해줬을 때나 자녀를 위해 희생했을 때 이야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문 원장은 “감정을 잘 받아들일 줄 알고, 사람들 앞에서 건강하게 표현할 줄 알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삶 속에서 연결시켜 간다면 화병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병 예방을 위한 4가지 실천 수칙

한걸음 떨어져서 분노를 관찰한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는 위험하므로 스스로 ‘분노의 통제자’ 역할을 한다. 이는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다. ‘분노의 관찰자’가 돼야 한다. 분노 뒤에 숨은 감정이 많다. 수치심, 죄책감, 무능감, 외로움 등 정작 맞닥뜨리기 힘든 감정을 감추려고 방어적으로 분노를 느낀다.

예를 들면 아이가 부모에게 불만을 털어놓으면 스스로 무능한 부모처럼 여겨 이를 감추기 위해 아이에게 “버릇없다”고 화를 낸다. 문 원장은 “분노 이전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아차리고, 이를 분노로 방어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실제 상대에 대한 분노는 약해진다.”고 조언했다.

분노 관찰을 위해 분노관찰일지를 쓰는 것도 방법이다. 자신이 화난 객관적 상황, 분노 뒤에 숨어 있는 감정과 생각, 1~10점으로 기록하는 분노 지수, 분노와 관련된 충동, 실제 자신의 분노표현행동 등을 표로 만들어 써본다.

분노 폭발의 순간에 자제 능력을 높여야 한다.

‘멈춤 능력’을 강화하라는 얘기다. 대개 분노 폭발은 자극에 대해 30초 안에 이뤄진다. 이 순간을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타임-아웃’ 방법을 쓰면 효과적이다. 자주 분노를 느끼는 상대에게 평소 미리 양해를 구해놓는다. “내가 더 이상 통제가 안 되면 ‘잠깐’이라고 이야기하고 밖에 나갔다가 올께. 그 순간은 피해서 이야기해!”라고 약속하고 그런 상황이 오면 그렇게 행동한다. 실제 분노의 상대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급격한 분노는 재빠르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완활동도 도움이 된다. 흔히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마음을 가라앉힐 특정 활동을 준비해둔다. 눈을 감고 평소보다 가늘고 길게 20번쯤 심호흡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식을 발바닥과 걷는 것에 집중하면 이완과 주의전환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묵은 화를 풀어낸다.

문 원장은 “우리가 지나치게 분노하는 것은 현재의 분노자극 때문만은 아니고, 과거에 해결되지 못한 상처와 분노가 마음에 쌓여 있기 때문”이라며 “상담이나 자기 성찰을 통해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분노의 역사’를 기록하면 좋다. 부모님은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났는지, 어떻게 화를 표현했는지부터 어떻게 분노를 느끼고 다뤄왔는지를 깊이 떠올리며 기록해본다.

건강한 분노 표현방법을 훈련한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자기 주장을 해야 할까? 1단계는 지금 마음에 거슬리는 행동에 대해 설명한다. “이번 주말에 해변에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넌 나에게 바보 같다고 했는데, 그 말에 난 지금 화가 나.” “내가 주말에 할 일을 제안한 것에 대해 그런 식의 말투를 안 썼으면 좋겠어.” 자신을 화나게 만든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2단계는 “나 지금 화났어.”라고 자기감정을 밝히는 것이다. 3단계는 “바보 같다는 말 하지마.”라고 특정한 행동 변화를 요구한다.
문 원장은 “분노 표현에 앞서 자신의 분노가 어떤 메시지를 알려주는 것인지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며 “분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키거나 이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일 상사가 자신에게만 일을 더 많이 줘서 화가 났다면 공평하게 일이 나눠지도록 만드는 게 해결책이라는 얘기다.

TIP. 혹시 나도?? 화병 체크 리스트

●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혀 힘이 든다.

●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어 힘이 든다.

● 얼굴이나 가슴으로 열감이 느껴진다.

● 목·명치에 뭉친 덩어리가 느껴져 힘이 든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많이 든다.

●마음속에 화가 쌓여 있거나 분노가 치민다.

* 최근 6개월간 설문 문항 중 ‘매우 그렇다’와 ‘자주 그렇다’가 4개 이상이면 화병일 가능성이 높다.

<출처=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화병스트레스클리닉>

생활 속 화병 예방법

● 화가 난다고 바로 폭발시키지 않는다 | 갑작스럽게 분노를 폭발시키면 더 큰 화와 스트레스가 생긴다.

● 화는 무조건 참지 말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다 | 무조건 참거나 폭발시키기보다 스트레스를 주는 상대나 상황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 어쩔 수 없이 화를 표출했다면 그 뒤에는 전신을 이완시켜준다 | 화가 나면 온몸이 경직된다. 명상·복식호흡·근육이완법 등을 시행한다.

● 화는 가능하면 그날 풀어야 한다 |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지 않도록 한다. 경직된 상태로 잠자리에 들면 스트레스도 안 풀리고 다음날까지 나쁜 영향을 미친다.

● 자신과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는다 | 화병을 앓는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 자신에게 맞는 운동과 취미 생활을 꾸준히 한다 |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화에 대한 저항력이 생긴다.

<저작권자 © 건강다이제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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