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도움말 |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종우 교수】
새해가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연말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를 아쉬워하며 한 해를 되돌아보면, 연말이면 늘 따라붙는,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는 말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2014년이다. ‘불경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경기침체는 계속됐고, 전 국민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잦았다. 그래서 가슴 속에 쌓인 울분과 화도 적지 않고, 화병이 되어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 한 해를 보낼 순 없다. 올해 쌓인 울분과 화를 잘 다스리고 훌훌 털어낸 후에 새해를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속에 맺힌 화, 특히 한국인 특화병이라 불리는 ‘화병’에 관해 알아보고, 그동안 앓고 있던 화병을 다스리고 털어내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PART 1.?‘화병’이 병이었어?!
화병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대개 ‘속앓이’ 정도로 여겼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화병’(火病, Hwa-byung)은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Ⅳ(DSM-Ⅳ)에 한국과 관련 있는 문화 증후군으로 등재된 의학적 진단명이다. 즉 ‘화병’은 세계의학계가 한국인 특화병으로 인정한 하나의 질병인 것이다.
그렇다면 ‘화병’은 의학적으로 어떤 병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화병과의 차이점은 없을까?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종우 교수는 “한국인이 알고 있는 화병과 똑같다.”며 “억울하고 분한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계속 쌓여 있다가 화병의 특이한 증상으로 유발되는 질환이 화병”이라고 말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화병, 왜?
세계가 한국인 특유의 문화적 증후군인 화병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종우 교수는 “화병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분노가 있는 장애, 즉 ‘분노장애’라는 특징 때문”이라며 “서양의 정신의학 기준에서는 분노를 다루는 분야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 정신과에서는 분노에 관한 것을 우울증의 범주 내에서 보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화병은 ‘분노’에 관해 독특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목받는다.”고 말한다.
우울증의 범주로 보았을 때 화병은 ‘신체 증상이 있는 우울증’으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화병은 우울증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김종우 교수는 “화병에는 ‘화’라는 독특한 정서뿐만 아니라 스스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싸우고자 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며 “무기력감, 좌절감, 피해의식에 찌들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화를 적극 표현하기도 하고, 신체적인 증상을 적극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하기에 우울증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 특화병 ‘화병’은 한국인만 걸릴까?
그렇다면 한국인 특화병이라는 ‘화병’은 한국인에게만 존재하는 걸까?
김종우 교수는 “한국인이 아니라도 화병이라고 진단받을 수 있다.”며 “다만 한국문화가 억울함과 분함에 대한 것들을 쌓아놓게 하는 환경이 비교적 많아서 한국 사람에게서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PART 2. 내 속에 ‘화(火)’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하고 분한 일이 어디 한둘인가? 비록 한때일지라도 저마다 마음속에 크고 작은 화와 울분을 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마음속에 품은 화가 모두 화병은 아니다.
김종우 교수는 “억울함과 분함을 오래 참았을 때 나타나는 가슴의 답답함, 얼굴의 열감, 치밀어오름, 억울하고 분한 마음, 이 네 가지가 화병의 특징적인 증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증상을 가진 화병의 사례는 다양하다. 예전에는 화병이라고 하면 대개 화나 울분을 표현하지 못해 안에 담아두고 속으로 끙끙 앓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면서 화병의 사례도 달라지고 있다.
김종우 교수는 “그동안의 전형적인 화병의 사례는 끙끙 앓기를 오래 하면서 답답하다, 열난다, 불이 돌아다닌다는 식의 증상표현 위주였다면, 요즘은 증상표현보다는 행동표현과 감정표현이 더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행동표현과 감정표현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다. 즉 잘 참다가도 나이가 들면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져 더 쉽게 감정이 폭발하거나 누군가를 만나면 싸운다거나 특히 여성의 경우 갱년기 이후에 분노 조절 능력이 떨어져 자주 언성을 높이는 등 분노를 직접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 안의 화는 어떨까? 자신의 상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화병 자가 체크리스트>로 자가 진단을 해보자.
PART 3. 화병, 이렇게 다스려라
화병은 어떻게 다스리고 치료를 해야 할까?
김종우 교수는 “화병에 대해 자가진단을 했을 때 문제가 있다고 나오면, 우선적으로 전문의의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대부분이 화병은 못 고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화나게 하는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치료를 하면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문의의 손길로 다스리기
김종우 교수는 “화병 치료는 증상 개선, 생각의 변화, 행동 개선. 이 세 가지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며,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용서, 이해, 수용까지를 목표로 삼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치료를 위해서 한의학의 침, 상담, 행동조절 프로그램, 명상이나 이완훈련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례로 ?▶증상 개선은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열이 나는 등, 환자 스스로도 병으로 여기는 화병의 증상을 약물이나 침 등을 통해 개선한다. ▶생각의 변화는 환자가 가지고 있는 억울함이나 분함에 대한 잘못된 해석, 잘못된 인식이나 태도를 수정하는 것으로 면담이나 명상 등의 심리치료를 한다. ▶행동 개선은 분노가 지나친 행동이나 감정으로 표출됐을 때 그 행동의 패턴을 수정하는 치료를 한다.
TIP. 화병 치료에 활용되는 다양한 방법들
하코미테라피 : ‘명상+행동조절’의 심신통합적인 치료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수용하고, 그 상황 속에서 긍정적인 요소들을 찾아가는 치료과정이다.
감정자유기법 : ‘경락 치료+심리기법’이 혼합된 치료법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감정을 자유롭게 조절하도록 경락 자극을 통해 그 기억을 완화하는 방법이다. 경혈점을 자극함으로써 뭉쳐 있는 감정 덩어리를 풀어준다. ‘용서 못하는 화병’에 가장 효과적이다.
분노관리프로그램 : 조절하기 어려운 분노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룰 것인지에 관한 인지행동치료에서부터 굉장히 다양한 분노관리프로그램들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논리적으로 분노를 분석해 화를 줄이는 것으로, 분노 조절의 어려움이 있는 ‘성격 화병’ ‘급성 화병’ ‘격분 증후 화병’ ‘화병으로 말미암은 화병’에 효과적이다.
일상에서 화병 다스리기
불쑥불쑥 치밀어오르는 화를 일상에서는 어떻게 관리할까?
화병 극복 방법은 스트레스 관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종우 교수는 “오랫동안 화를 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활동량이 줄어들면 답답함은 늘어날 수밖에 없기에 자신의 활동량을 최소한도는 반드시 확보해야 하고, 자신에게 있는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화병을 극복하려면, 기본적으로 화를 오래 담아두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활동량, 즉 걷기, 운동, 취미활동 등 화가 났을 때 화를 풀만 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 주의할 점도 있다. 화를 오래 참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화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훌훌 털어 희망의 에너지로~
올 한 해 자신을 억울함, 분함, 화, 울분, 분노로 들끓게 했던 것이 있다면, 이런 뜨거운 감정들은 인제 그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간에 쌓인 화와 울분도 함께 마무리하자. 어떻게?
김종우 교수는 “어떤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함의 뒷면에는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희망도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억울함과 분함을 뛰어넘어 문제 해결의 희망과 개선의 에너지로서 화를 승화시킬 수 있다. 화의 이런 면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올 한 해 자신을 화나고 분노하게 했던 것들이 있다면, 남은 시간 동안은 분노를 훌훌 털어내어 희망의 에너지,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해 다가오는 새해를 시작하는 원동력으로 삼아보자.
김종우 교수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방신경정신과학회, 신심스트레스학회의 이사를 역임하였고, 다수 언론매체와 방송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건강정보를 전하고 있다. 현재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화병/스트레스클리닉 담당의, 한방신경정신과 교수로 화병, 스트레스성 질환, 우울증, 수면장애, 스트레스관리프로그램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