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최명기 원장】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은 기성세대라면 모두 다 한 번씩 접해봤을 것이다. 1953년부터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글이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교과서에 실렸었다. 교과서에 실린 글이라는 것이 대부분 지겨웠지만 이 글은 달랐다. 글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가지가지 슬픔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글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글을 쓰던 당시 안톤 슈나크는 우울증에 걸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온갖 것 중에서 유독 우울한 것들만 그의 눈에 띄었던 것이 아닐까?
10대부터 70대까지 드리운 우울의 정체
사람들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만약에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 누구나 다 당하는 고통이라고 생각을 하면 우울증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남에게 괴로움을 호소하다가 누군가 자신과 똑같은 사연으로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을 확인하더라도 우울증 환자들은 나의 괴로움이 더 심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상 환자들이 호소하는 괴로운 사연은 몇 가지 범주에 속하기 마련이다.
10 대는 친구문제가 가장 우울하게 만든다. 부모와의 갈등도 문제이지만 아이는 부모와의 갈등으로 우울해하기보다는 분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성적 때문에 우울해지는 경우 역시 생각보다 많지 않다. 부모들은 10대를 생각할 때 성적이 전부다. 하지만 10대 자신에게 있어서 성적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성적이 나쁜 것은 자기 탓도 아니고 자기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10대가 가장 크게 신경을 쓰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친구문제다. 10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눈을 뜰 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갈등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행동이 예상치 않은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거나 혹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친구의 마음을 돌리지 못할 때 우울해진다. 친구들로부터 고립되면 극도로 우울해진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엉망이 되면 학교에도 가고 싶지 않고 집에만 있고 싶다. 그러다 보니 부모에게 짜증내게 된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기도 한다.
20 대는 진로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우울해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나의 적성인지 고민이다. 대학에 들어갔는데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휴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간다. 그런데 1~2년 다니다가 또다시 적성에 맞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행복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자신과 사회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걱정하게 되고 불안하다.
30 대는 자리 잡지 못함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린다. 누구는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했는데 자신은 변변치 못한 직장에 다니거나 비정규직이라는 생각에 괴롭다. 누구는 결혼을 했는데 자신은 결혼을 못했으면 뒤떨어진 것 같다. 집도 없고 통장에 돈도 없는 자신이 한심하다. 20대까지는 그래서 나한테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 잘못이라고도 생각을 한다. 30대에는 그런 생각이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는다.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울하게 한다. 자리를 잡지 못해 우울하다.
40 대는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괴롭다. 회사를 다니다가 해고라도 당하게 되면 내가 왜 사나 싶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게라도 열었다가 망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자신의 잘못이건 배우자의 잘못이건 이혼을 하게 되면 인생사는 것이 참 힘들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부모를 부양하면서 자식을 키워야 하는 샌드위치 인생이 갑갑하다.
50 대는 쇠락을 경험하게 된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마음이 놓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나니 빚만 쌓여져 있다. 그렇다고 자식이 부모에게 그동안 잘 키워줬다고 고마워하는 것도 아니다. 부부 사이는 호적상으로만 부부일 뿐 실제 생활은 남남이 된 지 오래다. 그래도 결혼이라도 유지하고 있으면 다행이다.
이혼하고 홀로 된 지 오래된 이들은 삶이 하루하루 외롭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데 정년은 하루하루 다가온다. 무릎이며, 어깨며 하나둘씩 아픈 곳이 생긴다. 혈압약이며 당뇨약이며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한 알에서 두 알로, 두 알에서 세 알로 매년 늘어난다. 늙어가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암에 걸리기도 한다.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나면 사는 것 자체가 두렵다.
60 대는 아무 할 것이 없다. 자신의 생각에는 아직도 자신이 세상에 쓰임새가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살면서 배우고 익힌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아무도 60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시간이 남는다. 하지만 돈이 없기에 남는 시간이 한스러울 뿐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젊었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은 일들을 해보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푼돈뿐이다. 세상에서 버림받는 느낌에 화가 난다. 자신들이 그동안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 정도 잘사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무도 자신의 공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서럽고 화가 난다.
70 대가 되면 죽음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진다. 가족도, 친구도, 동창도 한 명씩 한 명씩 줄어든다. 삶이 의미가 없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도대체 내가 왜 살았나 싶다. 젊어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들은 한창 때와 지금을 비교하며 우울하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이들은 어쩌다 삶이 이 지경이 되었나 우울하다.
이렇게 삶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이런저런 일들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무나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고통을 겪었을 때 보통사람들은 하루 이틀, 길면 사나흘, 아주 길면 일주일 쯤 힘들다가 회복을 한다. 보름 정도 계속 우울이 지속될 때 우울증이라고 한다. 평생 살면서 우울증에 걸리는 이들은 10명 중 2명에서 3명 정도로 추정된다. 10명 중 7명에서 8명은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우울증에 빠지지는 않는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4가지 전략
우울증에 있어서 불행은 일종의 방아쇠에 해당된다. 방아쇠를 당기면 총이 발사된다. 일단 발사되면 총알을 멈출 수 없다. 방아쇠가 원상태로 복귀해도 총알은 어딘가로 계속 날아가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우울증의 경우 그 총알은 내 마음을 향한다. 일단 총알에 의해서 마음이 상하면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방아쇠에 해당이 되는 사건에만 집착을 한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한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리가 부러지면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다시 뼈가 붙도록 치료를 받는다. 뼈가 부러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넘어져서일 수도 있고, 교통사고를 당해서일 수도 있고, 누군가 상해를 입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을 다치게 한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으면 치료를 안 받겠다고 하면서 치료를 거부하는 이는 없다. 원인과 상관없이 뼈가 부러지면 일단 병원에 가서 치료부터 받는다.
우울증은 마음이 부러진 상태이다. 다리가 부러지면 걸을 수 없듯이 마음이 부러지면 생활이 힘들어진다. 삶이 의미를 잃는다. 마음이 부러지는 이유 역시 다양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서일 수도 있고, 평생 모은 돈을 날려서일 수도 있다. 무시, 굴욕, 냉담, 억울함 등의 심리적 트라우마로 인해서일 수도 있고, 누군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서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다리가 부러진 경우 원인과 상관없이 일단 치료를 받는데 반해 우울증에 걸린 이들은 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 치료를 거부하고는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음을 유념해야 한다.
1 우선 치료를 해야 한다. 매일 한 알의 알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이 낫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명 7명은 매일 한 알의 알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한 달 정도 지나면 우울증상의 상당부분이 사라진다. 매일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고, 생각의 오류를 확인해서, 교정하는 일기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2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오늘 로또복권에 당첨되면 누구나 다 기쁘다. 오늘 암을 진단받으면 누구나 다 슬프다. 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 따라서 현재에 집중하자. 마음에는 색안경이 있다. 우울해지면 똑같은 과거도 더욱 더 엉망으로 느껴진다. 현재가 행복하면 괴로운 과거도 다 추억으로 받아들여진다.
3 더 이상 물러나면 안 된다. 그나마 지금 내가 하는 일상생활을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 우울증은 어느 날 갑자기 씻은 듯이 낫는 병이 아니다. 하루 중 안 좋은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좋은 시간이 조금씩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안 좋은 날이 조금씩 줄어들고 좋은 날이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이 좋아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울증에서 벗어난 자신을 깨닫게 된다.
4 돌봐줄 이가 필요하다.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만약 자신을 돌봐주고 희망을 줄 이가 주위에 없다면 하다못해 애완견이라도 키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