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 기자】
【도움말 | 정신과 전문의 이근후 박사(가족아카데미아 이사장)】
중년이 되면 누구나 나이듦을 고민한다. 주름살과 뱃살은 자꾸 늘어나는데 머리카락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빠진다. 스마트폰으로 뉴스 읽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탈모만큼 무서운 노안이 온 것이다. 통장 잔고는 줄어드는데 이제 돈 벌 일보다 돈 쓸 일만 남았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나이듦의 시작이다.
베스트셀러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갤리온刊)의 저자인 정신과 전문의 이근후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를 만나러 간 것도 나이듦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 박사는 대학에서 정년퇴직 후 가족아카데미아를 차려 ‘스마트 에이징’의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1935년생이니 내년이면 여든이다. 하지만 그는 늘 청춘 같다. 서울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가족아카데미아 사무실 책상에서 사이버대 입학 합격증을 발견한 기자는 깜짝 놀라 “또 뭘 배우시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흔여섯에 고려사이버대 문화콘텐츠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했다.
“고려사이버대에서 공연히 졸업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웃음). 듣고 싶은 인터넷 상담 과목을 찾다보니 서울사이버대에 있길래 작년에 입학했어요. 이번이 3학기째인데 매학기 입학 합격증이 나오네요.” 그는 ‘스마트 에이징’을 삶으로 보여주는 표본 같다.
“봉사를 하면 인생이 즐거워진다.”며 30년 넘게 네팔 의료봉사를 하고, 40년 넘게 광명보육원 아이들을 돌보며 산다. 온몸이 건강한 것도 아니다. 왼쪽 눈은 실명했고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관상동맥협착, 담석 등 일곱 가지 병과 함께 살고 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하루하루 사는 일이 재미있다.”며 웃었다. 그의 조언대로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PART 1. 스마트 에이징을 위한 스마트한 노하우
당신이 중년이라면 멋있게 나이 들기 위한 훈련을 쌓아야 한다. 학생들의 지나친 선행학습은 진짜 공부를 가로막지만, 나이듦의 선행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이가 든 이후 나이듦을 준비하면 늦다. 이근후 박사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설계를 세워보라.”며 “기획한 인생은 ‘베스트 라이프’가 된다. 50세가 되면 5년 단위로, 70세가 되면 3년 단위로, 이후는 2년~1년 단위로 인생 계획을 짜는 것도 방법”이라고 당부했다. 나이듦이 무엇인지 미리 음미하고 공부해두라는 것이다.
이 박사는 ‘스마트 에이징’을 위한 다섯 가지 노하우를 들려줬다. ‘스마트 에이징’의 SMART는 ▶단순화시키기(simplifying) ▶움직이기(moving) ▶정서 유지하기(affecting) ▶느긋해지기(relaxing) ▶함께 나누기(together-ing)의 영어 첫 글자를 합친 말이다. 구체적인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다.
생각을 단순화하라
나이들수록 생각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복잡하면 불행해진다. 생각이 잡다하면 에너지만 소모된다. 생각을 단순화하면 집중력이 생긴다.
몸을 움직여라
나이가 들면 운동량이 떨어진다. 누운 사람은 앉는 것부터 하라. 앉아 있던 사람은 서라. 서 있던 사람은 걷고, 걷던 사람은 뛸 필요가 있다. 야금야금 한 단계씩만 올려라. 쉬워보여도 단계를 확 뛰어넘지 말고 한 단계씩만 올리는 노력을 하라.
정서를 유지하라
나이가 들면 오감이 쇠퇴하기에 지각이 늦다. 문화예술을 가까이 할 필요가 있다. 인사동 화랑가에서 그림 감상만 해도 정서가 유지된다.
느긋하게 살라
일에 중독되면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모른다. 일하듯 규칙을 정해 휴가를 보내므로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없다.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
함께 나누라
누구에게 빚진 것도, 줄 것도 없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이 세상에 나온 사람 누구나 빚진 사람이다. 저 세상에 갈 때까지 빚을 안 갚으면 ‘먹튀’다. 물질로만 나누는 게 아니다. 돈을 안 들이고도 나눌 수 있는 게 많다.
PART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재미있다
이근후 박사는 “나이듦은 슬픈 일이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슬프다’는 감정만 물고 늘어지는데 어찌 해볼 수 없는 일에 매달리면 환자다. ‘늙어감에도 불구하고’ ‘슬픈데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살라.”고 조언했다.
나이듦이 가져오는 몸과 마음의 변화는 우리를 힘들게 한다. 가려운 피부,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듯한 체취, 자꾸 둔해지는 온몸의 감각…. 사소한 분노가 다스려지지 않고, 주책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나이듦은 초조와 불안을 동반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은데 내세울 업적은 딱히 없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늙기 전에 죽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늙기도 힘든 일이다. 나이듦의 장점도 있다. 많은 시간과 깊어진 눈, 즐길 줄 아는 여유다. 이뿐인가? 전철도 공짜로 태워준다. 노인 우대 혜택도 엄청나게 많다. 늙음에 시비 걸 일이 아니다. 사계절의 순환처럼 나이듦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성공은 객관적 지표가 있지만 행복은 주관적 만족감에 따라 좌우된다. 행복 연구가 드문 이유다. 성공이 반드시 행복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지나온 인생이 성공적이지 못했어도 과거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다. 나이듦을 두려워하는 당신의 마음밭을 가꾸기 위한 노하우를 모았다.
1 마음에 보톡스를 맞아라
몸짱 열풍을 거쳐 ‘동안 열풍’이 불고 있다. ‘방부제 미모’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또래에 비해 젊어 보이는 것이 아름다움의 필요충분조건이 된 시대다. 피부 탄력이 떨어지거나 주름이 생기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을 거스르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게 살고 싶으면 마음의 시계를 젊음에 맞춰야 한다. 모 공중파 TV가 미국 하버드대 최초 여성 종신교수인 엘렌 랭어 교수가 시행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을 한국판으로 재해석해 시행한 결과 여덟 명의 노인들은 마음의 시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신체, 정신 기능뿐 아니라 피부까지 좋아졌다.
보톡스를 맞고 열 살 더 어려보이고 싶은가? 세수 잘하고 햇볕 잘 쬐고 관리만 잘하면 된다. 젊은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이 답이다. 외형보다 젊게 살고 싶다는 생산적인 생각을 하면 완전히 젊음으로 되돌아가진 못해도 우리 몸이 이런 생각에 맞춰간다. 생산적이고 긍정적 마인드로 젊음을 지향하면서 살라는 얘기다.
2 체면을 벗어던져라
이근후 박사는 평생 자동차와 손목시계, 휴대전화를 소유하지 않았다. 체면을 의식하지 않는 그는 벤츠보다 더 뛰어난 BMW(Bus, Metro, Walk)로 편하게 잘 지내왔다고 말한다.
체면은 당신을 해롭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이 박사는 “남자들이 정년퇴임 후 적응을 못하는 이유는 명예교수인데 교수 대접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명예교수 노릇을 하면 편하고 즐거워진다. 현역에 있을 때만큼 책을 못 보는 은퇴 이후에는 제자를 스승으로 삼으면 된다.”고 당부했다. 체면을 의식할 필요도, 과거를 회상할 필요도 없다. 현실적으로 꾀가 있는 사람은 다 내려놓는다. 그래야 정신이 건강해진다.
3 취미 활동으로 재미를 추구하라
취미는 신체에 휴식을 가져오는 비타민이다.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 은퇴하면 뒷방에 틀어박힐 일만 남는다. 일 중독자들은 러셀의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재미의 세계가 넓으면 넓을수록 행복의 기회가 많아지며, 운명의 지배를 덜 당하게 된다.”
회사에서 외곬으로 일만 하는 사람과 취미 활동을 즐기는 사람은 적응력에 차이가 있다. 재미있게 살아야 노년이 풍요로워진다.
100세 이상 노인 1만 4672명 중 여자는 1만 1235명이다(2014년 8월 기준). 여자는 집에 있어도 온갖 교육을 받으며 자신을 업그레이드한다. 세상의 변화에 쉽게 적응한다. 남자들도 오래 살려면 부지런히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은퇴 후 나를 대접해달라며 목에 힘을 줄 필요가 없다. 여자들의 높은 적응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
4 일에서의 완전한 은퇴는 늦춰라
노후에는 무언가 의미 있고 나에게 여전히 필요한 일을 계속해야 한다. 긴 노년을 잘 보내고 싶다면 시간을 마음껏 쓰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연금만 축내고 앉아 있어선 곤란하다. 취미든 봉사든 돈벌이든 해야 한다. 일을 하는 것은 내게도 좋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
5 주변 사람을 먼저 찾아가라
이근후 박사는 “살다 보면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 시기가 꼭 온다.”며 “노년의 삶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이다. 나이가 들면 내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후 대비로 젊었을 때 보험이나 연금을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로움에 대비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근후 박사는 이화여대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들을 돌봤다. 우리나라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한국정신치료학회를 설립하는 등 정신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현재 가족아카데미아 이사장. 저서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갤리온)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