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최대한 위를 보존하는 것이 최종목표입니다”
위장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거울! 그래서 세상을 바꾼 발명품으로 꼽히기도 하는 ?내시경! 내시경의 변신이 무섭다. 외과수술과 맞짱을 뜰 만큼 매섭게 진화 중이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소화기내과 박종재 교수(53세)는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칼 대신 내시경으로 암을 수술하는 의사다. 내시경으로 조기위암 정복에 나선 주인공이다. 이른바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로 불리는 ESD를 이용해 개복하지 않고도 암세포만 감쪽같이 도려내는 최고 권위자로 자자한 명성을 얻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실력은 일찍이 세계 무대에서 입증된 바 있다. 2007년 ‘한일 공동주관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 라이브’에서 우리나라 대표로 선정돼 국내외 수많은 의료인들 앞에서 ESD 수술 기법을 선보였던 것이다.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고수로 꼽히며 소화기암 수술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노하우는 과연 뭘까?
소신껏 살고 싶어서~
박종재 교수가 의료인의 길을 택한 이유다. 그래서 명문 공대를 다니다가 진로를 급선회한 사람이 바로 그다. 그런데 그 과정이 우리를 많이 주눅 들게 한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듯해서다. 대학 2학년 때, 휴학도 안 하고, 남몰래 대입공부를 시작했고, 그래서 간 곳이 고려대 의과대학이기 때문이다.
부모조차 몰랐다고 한다. 돈 많이 드는 의대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긴 탓이었다. 의대 1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이 고향집에 놀러오면서 알게 됐지만 그 사실을 알고 한 말도 쿨했다. “우리 아들 학교가 바뀌었네!”가 전부였다고 한다.
왼손잡이, 드디어 물 만나다
왠지 모르게 부러움 반, 시샘 반이 강하게 느껴지는 박종재 교수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쓰라린 경험은 있다. 수술실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당연히 의사=외과의사였다. 최고의 칼잡이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생겼다.
왼손잡이인 것이 화근이 됐다. 인턴시절 수술실에 들어가 왼손으로 보조하다 수술에 방해된다고 쫓겨났던 것이다.
그래서 외과는 포기했지만 그래도 결국 그가 찾아간 곳은 수술실이었다. 칼 대신 내시경을 들고 수술하는 의사가 됐던 것이다.
소화기내과를 전공하면서 내시경을 만난 그는 환호했다. 특히 내시경으로 수술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이라 불리는 수술기법이 바로 그것이었어요. 전문용어로 ESD라 불리는 수술기법이었는데 ‘아 이거다.’ 싶더군요.”
암이나 양성종양, 전암성 병변 등을 개복하지 않고 간단히 도려내서 제거할 수 있는 것이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소화기암 수술에 일대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반했다.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은 일찍이 박종재 교수의 의학적 신념이 되었다.
최고 권위자가 밝히는 ESD의 효능과 한계
개복하지 않고 소화기암을 간단히 제거하는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 ESD.
박종재 교수는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은 분명 소화기암 치료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특히 조기위암 치료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이어서 경각심이 높은 위암!
위암은 수술 빈도도 가장 높은 암이다. 암이 발견되면 대부분 수술을 한다. 그나마 수술할 수 있어서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나 외과 수술은 근치적 치료법임은 자명하지만 수술에 따르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위의 3분의 2 혹은 위 전체를 절제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암의 크기가 작아도 마찬가지다. 조그마한 위암 세포 하나 잡으려고 위를 다 잘라내기도 한다.
박종재 교수는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은 이같은 폐해를 줄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개복수술 없이, 최대한 위 조직을 보호하면서, 후유증도 별로 남기지 않고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야말로 꿈의 암 수술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도 태생적 한계는 있다. 현재로선 20mm 이하의 조기 위암에 국한돼 있고, 조기 위암 중에서도 점막에 있는 암만 수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은 우리나라 의료현실에서 점점 더 그 역할이 커지고 있다. 환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은 병변만 떼어내는 비침습적 수술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상처로 고통을 주지 않고 출혈도 최소한으로 하는 수술기법이라 할 수 있다.
또 환자의 삶의 질을 좋게 하는 수술법이기 도 하다. 위 절제를 하게 되면 몸무게는 줄고 여러 가지 소화장애도 생긴다. 수술에 따라서는 흡수장애도 생긴다. 그러나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은 이같은 후유증이 거의 없다. 최대한 위를 보존하는 수술기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수술 비용이 싸다는 점 ▶회복기간도 빠르다는 점 등도 맞물려 있어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은 날로 그 외연을 확장 중이다.
박종재 교수는 “전체 위암 중 30~40% 정도는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로 수술하고 있다.”며 “특히 이 수술 기법은 최대한 위를 보존하고 싶은 소화기내과 의사들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치료법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더욱 애착이 간다는 박종재 교수. 그런 때문일까? 그는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산하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 연구회인 ESD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의 대중화를 주도하고 있다.
수상스키 즐기는 워커홀릭
한 분야에서 대가의 면모를 갖추기란 말처럼 쉽지 않나 보다.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의 최고 권위자 박종재 교수의 명성도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싶다. 밤 10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간 적이 별로 없다는 그.
기자가 만난 날도 저녁강의를 끝낸 밤 9시가 되어서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혹사하고도 건강은 괜찮을까? 건강비결을 묻는 질문에 박종재 교수는 “세 가지를 잘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첫째, 잘 먹기다. 시간이 없고 바쁘더라도 하루 세 끼는 규칙적으로 챙겨먹는다. 그런 그가 좋아하는 것은 우리 옛날 밥상이다. 고기는 적게 먹고, 질긴 채소는 많이 먹고, 단 것은 없어서 못 먹었던 못살던 시절의 밥상을 차려먹는다.
둘째, 운동 잘하기다.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30분씩 유산소 운동하기는 빼놓지 않는 일과다. 특히 주말에는 수상스키를 탄다. 자신을 위한 유일한 사치처럼 즐긴다. 벌써 10년째다. 수상스키는 내시경 전문가에게는 최고로 좋은 운동이라는 게 그의 변이다. 내시경을 하다보면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가고, 휘기도 하면서 아픈데 이때 수상스키만 한 운동도 없다는 것이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하는 운동이 수상스키여서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근육 단련에도 그만이라고.
셋째, 즐겁게 일하기다. 그에게 있어서는 내시경 시술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특히 왼손잡이인 것도 천혜의 조건이 된다. 비록 외과 수술실에서는 쫓겨났지만 내시경 수술을 할 때는 왼손잡이인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왼손으로 미세한 조작을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길 내시경’은 박종재 교수의 삶의 목표다. 내시경이 열게 될 미래에 대한 기대도 크다. 그 미래에 그도 한 축이 되기를 원한다.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로 조기위암 정복에 나선 그의 도전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우리에게 내놓을지… 그의 행보에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TIP. 박종재 교수가 추천하는 내시경 팁
내시경 검진은 정기적으로~ 더블첵으로~
나이가 40대 이상인 경우, 위암 가족력이 있거나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인 경우, 다른 소화기암인 대장암, 식도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위에 선종성 용종이 있는 경우 등은 반드시 주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하자. 이때는 더블첵(double-check)으로 받는 것이 좋다. 여기서 말하는 더블첵은 두 군데 이상의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미다. 전문의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