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암으로 인해 더 행복한 오늘을 삽니다”
운이 좋았다. 국가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된 2cm 크기의 위암은 수술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위암 진단부터 수술까지 일주일 만에 모든 과정이 끝났다. 하지만 암은 수술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재발에 대한 두려움까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음식 하나를 앞에 놓고도 ‘암한테 좋을까? 나한테 좋을까?’부터 따졌다고 한다.
그런 세월을 이겨내고 암 수술 후 5년이 지난 2016년 12월, 드디어 암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에 사는 유나경 씨다. 비록 혹독한 시련을 안겨준 암이었지만 암으로 인해 더 행복한 오늘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0년 12월에…
차일피일 미루다 12월이 되어서야 국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던 유나경 씨는 내시경 검사를 하던 중 의사로부터 이상한 말을 들었다.
“‘위에 뭐가 있다면서 검사를 해볼까요?’ 묻는 거예요. 검사 중이라 말은 못하고 눈을 깜빡이며 그렇게 해달라고 했죠.”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안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느끼기 전까지는.
“아마 보름쯤 지났을 거예요. 갑자기 남편도 이상해졌고, 아들도 자기 방에서 울고, 유학 중이던 딸은 갑자기 ‘엄마 괜찮냐?’며 귀국하겠다고 하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 짚이는 게 있어서였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 그녀가 들은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젊으시잖아요. 빨리 수술부터 하세요.”
뭐냐고 되묻는 그녀에게 의사는 말했다. “악성종양”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악성종양=사망선고로 여겨졌다. ‘한 달 남았을까?’ ‘6개월 남았을까?’ 온갖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동안 별다른 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굳이 꼽자면 어쩌다 한 번씩 명치끝에 콕콕 통증이 있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악성종양이었다.
운전대조차 잡을 수 없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야 한다.”고. 이미 알고 있었고, 병원 예약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각종 검사가 이어졌고, 곧바로 수술 일정도 잡혔다.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유나경 씨는 위의 2/3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위암이었고, 크기는 2cm였다. 진행성 암은 아니고, 다행히 전이는 안 됐다는 게 수술을 끝낸 담당의사의 말이었다. 마치 전광석화처럼 일주일 만에 암 수술을 끝냈고, 일주일 만에 퇴원도 할 수 있었다.
2011년 1월, 그렇게 그녀의 위암은 수술로 제거됐다. 그렇게 유나경 씨는 오십대 초반을 맞았다.
2015년 수명이 다한다?
암 진단 후 일주일 만에 수술을 하고, 일주일 만에 퇴원까지 했던 행운녀 유나경 씨였지만 암 수술 후 사정은 많이 달랐다. 유나경 씨는 “수술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퇴원한 첫날 알았다.”고 말한다.
너무도 그녀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먹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위를 2/3나 잘라낸 탓에 요구르트 한 병도 세 번에 나눠서 먹어야 했다. 미음 한 숟가락도 대강 넘기면 곧바로 화장실행이니 세상에 이런 고통도 있나 싶었다.
건강했던 예전과 너무도 달라진 몸!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하기도 했다. 문득문득 엄습하는 재발의 두려움도 견디기 힘들었다. 막막하고 불안했다. 너무도 답답하여 철학원에 가서 점을 본 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스럽지만 그때는 너무도 절실했어요. 용하다는 철학원에 가서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물어보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2015년에 수명이 다한다고 하더군요.”
괜한 짓을 했다며 뼈저린 후회를 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말의 여운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 죽을 운명일까?’ 역학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암에서 멀어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죽을 운명에 맞서서 실천했던 것들
‘과연 이 행동을 하면 암에 좋을까? 나한테 좋을까?’
‘과연 이 음식을 먹으면 암에 좋을까? 나한테 좋을까?’
2015년에 수명이 다한다는 말까지 들은 유나경 씨는 암 수술 후 하루하루를 암과 대결하듯 보냈다고 한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 모든 먹거리 하나하나의 선택 기준은 언제나 암이었다. 암과 한판 승부를 벌이듯 치열하게 살았다. 이때 그녀가 암과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하루의 플랜으로 삼았던 것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음식은 입에서 소화시켜 넘기기
입 안에 든 모든 음식은 꼭꼭 씹었다. 입에서 물이 되게끔 꼭꼭 씹었다. 미음 한 숟가락을 입안에 넣고도 100번을 씹었다. 죽 한 숟가락을 입안에 넣고도 100번이고 200번이고 씹었다. 그래서 물이 되면 넘겼다. 모든 음식을 입안에서 꼭꼭 씹어 소화를 시킨 뒤 넘겼다.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설사를 했다.
2 버섯, 마늘, 밤은 즐겨 먹었던 항암식
먹거리에도 큰 변화를 줬다. 친구들과 만나 외식하기를 좋아했던 예전의 생활과는 단절했다. 그 대신 유기농 식품으로 식탁을 차렸고, 음식은 바로바로 해서 먹었다.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찬 음식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
날 음식, 날 채소도 멀리하고 먹어봐서 좋았던 식품 위주로 항암식 리스트도 만들었다. 버섯, 마늘, 밤은 항암식으로 즐겨 먹었던 식품들이다. 버섯은 늘 식단에서 빠지지 않았고, 마늘도 기름 없이 프라이팬에서 살짝 구워 많이 먹었다. 밤도 즐겨 먹었는데 가을밤을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하루에 몇 알씩 채반에 살짝 쪄서 먹었다.
3 날마다 오전에는 산에서 놀기
오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산으로 향했다. 기력이 없어서 한 걸음 떼기가 힘들어도 산으로 향했다. 오를 수 있는 만큼 올라서 스트레칭도 하고 앉아서 쉬기도 하면서 오전 내내 산에서 시간을 보냈다. 산에 가면 다른 암 환우들도 여럿 만날 수 있어 의지도 되고 좋았다.
4 날마다 오후에는 쑥뜸 뜨기
한의원에 가서 쑥뜸을 떴다. 쑥뜸을 뜨면 암 수술 후 차가워진 아랫배도 뜨끈뜨끈해지고, 속도 편안해서 좋았다. 그래서 매일매일 40분 정도 뜸을 떴다. 중독처럼 했다.
그런 생활 덕분이었을까? 2015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건재했다. 유나경 씨는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한다. 믿는 구석이 있었을까?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
정해진 운명은 결코 없다는 것!
운명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유나경 씨가 역학 공부를 하면서 깨달게 된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2015년 죽을 운명도 믿지 않게 됐어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 생명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으니까요.”
3개월마다 하는 병원 체크도 큰 용기를 줬다고 한다. 잘하고 있다고 했다. 위도 깨끗하다고 했다. 그것은 몸으로 바로바로 느낄 수도 있었다.
유나경 씨는 “날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날로 몸이 좋아지자 암도 두렵지 않은 마음이 생기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비로소 삶과 죽음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했어요. 하모니카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고 해외여행도 다니기 시작했어요. 하루 종일 암과 대결하듯 치열하게 살던 삶에서 벗어나 조금은 유연해진 삶을 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5년이 지난 2016년 12월, 최종검진에서 그녀는 “위에는 아무 소견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암 완치 판정을 받은 셈이다. 암 수술 후 5년 생존자로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오히려 지금이 더 행복해요!
2017년 7월 중순, 의정부에서 만난 유나경 씨는 바빠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면 드럼을 치러 가야 한다고 했다. 하모니카에 드럼까지… 활기차게 사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근황을 묻자 “달라진 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암 완치 판정 후에도 지난 5년 동안 해오던 생활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 먹는 것은 여전히 신경 써서 먹는 편이다. 골고루 먹되 모든 음식은 꼭꼭 씹어서 넘기는 것을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 매일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4일은 아침 일찍 산으로 가서 운동도 한다.
●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돌뜸도 수시로 뜬다. 개울가에서 주워온 납작한 돌을 가스레인지에 살짝 데운 뒤 수건에 싸서 배 위에 올려놓는다. 배가 따뜻해지면서 속도 편안해지고 소화도 잘 된다.
유나경 씨는 “이렇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별로 힘들지도 않다.”고 말한다. 규칙적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진 것 같아 오히려 암도 전화위복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암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산다. 암이 있든 없든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여기며 산다. 죽고 사는 문제는 그 후의 문제라고 여긴다.
“이렇게 생각하자 하루하루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졌어요. 오늘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오늘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게 됐어요.”
그러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말하는 유나경 씨! 오히려 암 이전의 삶보다 더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는 꿈도 꾼다. 역학을 공부하면서 키워온 꿈이기도 하다. 힘든 사람들의 동반자로 살고 싶다. 고민도 나누고 위로도 되어주는 카운슬러가 되고 싶다. 그래서 꼭 알려주고 싶다. 사람이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결코 없다는 걸.
지금 이 시간에도 생사의 기로에서 힘들어하는 암 환자가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나경 씨가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 유나경 씨에게도 이 말은 삶의 나침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