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기자】
【도움말 |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당뇨병센터장 차봉수 교수】
올해 마흔일곱 살인 박지연 씨는 얼마 전 당뇨병 환자인 친구를 만난 후 불안에 시달리다 내과를 찾았다. 친구는 박 씨와 체형이 비슷하다. 키 155cm, 몸무게는 60kg으로 배가 불룩 튀어나온 사과형 비만이다.
고혈압, 고지혈증을 앓는 박 씨는 겁이 덜컥 나서 병원을 찾았다가 공복혈당 120 진단을 받았다. 영락없이 당뇨병 전단계다. “이제 10년만 지나면 당뇨병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혈압, 혈당, 지혈을 ‘3고 질환’이라 하잖아요? 건강에 ‘빨간불’이 켜질 때까지 뭘 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졌어요.”
박 씨의 하소연처럼 만성질환자들에게 당뇨병은 더욱 걱정거리다. 정상혈당은 말 그대로 밥을 두세 끼 먹어도, 체중이 5kg 늘어나도 혈당이 거의 변함이 없어야 한다. 당뇨병 전단계에선 보통 10년 내에 인슐린 분비능이 급격히 소모한다.
내 몸이 버텨주다 한계에 달하면 당뇨가 온다. 하지만 의사들은 잘만 관리하면 당뇨병 전단계에서 당뇨병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당부했다. 이제는 ‘당테크’ 시대다. 재테크를 잘해야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처럼 혈당 관리를 잘해야 건강 장수를 누릴 수 있다. 당뇨병에 정복당하지 않고 확 휘어잡는 비결을 모아봤다.
PART 1. 지피지기면 백전백승!?당뇨병, 알아야 이긴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당뇨병 환자 수는 3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30세 이상은 8∼10% 이상, 50세 이상은 25%가 당뇨 환자다. 당뇨병은 초기부터 서서히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초기에는 증상이 없고 나이가 적으니까 심각성을 모른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당뇨는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이다.
지금은 유병장수 시대다. 만성질환을 적으로 여기지 말자는 얘기다. 더 큰 병을 앓지 않도록 생활습관을 바로잡아주려고 온 친구로 여기자. 그래야 당뇨병과의 한판승부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당뇨병센터장(내분비대사 내과) 차봉수 교수는 “당뇨병 관리 개념이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며 “20년 전만 해도 40세 기준으로 당뇨병 유무에 따라 평균수명이 14년 정도 단축된다고 봤지만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아무도 안 한다.”고 말했다. 주요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이 계속 줄고 있다는 것이다.
당뇨병은 사실 ‘현대병’이다. 최근 30∼50년 새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앓는 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당뇨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형 당뇨 연구가 집중적으로 시작된 것도 20년 남짓이다.
당뇨병으로 진단되는 순간 자신이 평생 쓸 수 있는 인슐린 분비능이 적어도 절반 이상 날아간 셈이다. 그래서 초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PART 2. 20대인데 당뇨병??놀랄 일 아니다
2형 당뇨가 발병되는 나이는 중년이다. 하지만 당뇨가 시작되는 나이는 30대다. 몸에 잠복해 있다가 중년기에 쏜살같이 얼굴을 들이대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근로시간이 길고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 환경에선 30대의 당뇨 예비후보군이 많다. 그렇다면 20대는 안전지대일까?
절대 아니다. 최근 들어 20대 이하 젊은층에서도 당뇨가 빈발하고 있다. 20대는 살이 찌고 생활습관이 흐트러져도 거의 변화가 없다. 여기 20대의 건강한 남자가 한 명 있다. 이 남자가 가진 인슐린 분비능은 30%밖에 일을 안 한다. 나머지 70%는 놀고 있다는 의미다. 20대 남자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아무리 살이 쪄도 혈당 조절이 잘 된다. 그런데 인슐린 분비능이 30%에서 100%, 150%까지 넘어가면서 제 기능을 잃고 당뇨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차봉수 교수는 최근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보통 뚱뚱한 사람은 인슐린 분비가 좋고, 반대로 마른 사람은 인슐린 분비가 약하다. 그래서 의사들은 비만인 당뇨병 환자를 보면 인슐린 분비는 괜찮지만 인슐린 작용에 문제가 있으니까 체중 감소부터 해야겠다고 감을 잡는다. 그런데 이는 옛날이야기라는 것이다.
요즘은 둘 다 결핍인 사람들이 많다. 보통 체형이나 비만하지 않은 부모의 유전자를 타고나서 애당초 인슐린 분비능이 별로 없는데 성장기나 20대 초반에 살이 찌면서 인슐린 분비가 부족해지는 이중고를 겪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20∼30대에 당뇨가 온다. 치료가 아주 어려운 케이스다.
PART 3. 혈당 관리,?말처럼 어렵지 않다
차봉수 교수는 “혈당 조절은 철저하게 개별화돼야 한다. 40세 환자의 공복혈당이 200인 것과 80세 환자의 공복혈당이 200인 것은 다르다.”며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최적화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토털케어로 삶의 질을 높이고 인슐린 분비능을 잃어버리기 전에 적극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뇨 관리의 객관적인 지표는 혈당이다. 당뇨 환자는 약물 복용으로 혈당을 관리해야 하지만 생활습관이 개선되지 않으면 절대 효과를 볼 수 없다. 더욱이 당뇨병 전단계에선 생활습관 관리만 해도 효과적이다.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자.
1. 체중을 줄여라
혈당만 조절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체중을 조절하고 생활습관을 바로잡으면서 혈당 조절을 잘하는 것이 목표다.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관리법이 바로 체중 감소다. 당뇨병은 당이 소변으로 나가는 질병이다. 당뇨를 앓는다는 의미는 내 몸의 에너지가 과다하다는 것이다. 인슐린 효과를 좋게 하려면 식사량을 줄이고 많이 움직여서 살을 빼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30분, 한 시간 더 활동량을 늘려야 한다. 옛날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구석기 사람들은 운동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했을 뿐이다. 소식과 운동으로 체중 감소에 올인 해야 한다. 근력운동도 골고루 하면 좋다. 당뇨 전단계에서 약물 치료로 체중 관리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2. 소식과 균형식을 하라
당뇨에 좋은 식사는 소식과 균형식이다. 당뇨 밥상은 채식이 전부일까? 그렇지는 않다. 단백질은 풍부하면서 지방이 적은 고기는 안전하다. 매일 순살코기만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기보다 두부, 생선, 달걀, 콩 같은 다양한 식품을 함께 먹으면 좋다. 규칙적으로 적당량의 식사를 맛있게 하면 혈당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달고 짠 음식은 당뇨에 좋지 않다. 특히 단 음식은 혈당을 직접적으로 올린다. 설탕, 올리고당 등 단맛을 내는 조미료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단맛을 내면서도 혈당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저열량 감미료를 사용하면 맛있는 당뇨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소금은 직접적으로 혈당을 올리지는 않지만 고혈압을 비롯한 합병증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어선 안 된다.
과일의 당분은 설탕과 같은 단순당처럼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는 않기 때문에 혈당이 잘 조절될 때는 적당히 먹어도 괜찮다. 혈당이 조절되지 않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식후보다는 식사와 식사 사이에 먹는 게 좋다. 식후에는 인슐린의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일을 충분히 먹고 싶을 때는 음식 중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과일로 대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3. 마음 관리에 힘써라
서양에서는 당뇨병 치료 시 마음 관리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우리나라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나이 든 사람은 당뇨를 그냥 받아들여 관리가 잘 되는데 30∼40대는 당뇨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사회 패배자라고 여기는 환자들도 꽤 있다. 하지만 당뇨는 유전이나 환경적 요인이 많이 있기 때문에 환자가 나태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당뇨병의 원인은 아주 많다.
사업에 실패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당뇨가 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당뇨병 전단계의 무수히 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호르몬은 인슐린과 반대되는 일을 한다. 몸을 자꾸 태운다. 모든 동물은 스트레스를 주면 살이 빠지는 반면 사람은 살이 찐다. 스트레스를 보상받고 싶어서 그렇다. 살면서 스트레스는 필요하다. 그것이 삶의 활력이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면 건강을 해친다. 운동이나 독서,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4. 금연과 절주를 하라
금연과 절주를 해야 당뇨를 피해갈 수 있다. 다만 금연을 고려하는 경우 체중 조절에 신경 써야 한다. 담배를 끊으면 체중이 평균 3∼5kg 늘어난다. 체중이 늘면 심혈관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금연하기 한 달 전부터 유산소운동을 하루 한 시간가량 한 다음 담배를 끊는 게 좋다.?
차봉수 교수는 국내 최정상의 세브란스병원 당뇨병센터를 이끌고 있는 당뇨병 명의로 잘 알려져 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 전문의를 마치고 2000년부터 현재까지 연세대 의대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최고의 당뇨병 식사 가이드>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