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브레인트레이닝 상담센터 압구정본점 상담센터장 하나현 원장】
한 여성 직장인이 필자에게 찾아왔다. 두뇌훈련을 통해 업무실력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실수라는 실수는 절대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날씬해지고 싶단다. 성격도 바꾸고 싶단다. 성격을 어떻게 바꾸고 싶냐고 하니까 배려심이 많고, 친절하고, 인기도 많고, 카리스마를 가지고 싶단다. 한마디로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이상적이었다. 걱정되는 것은 그런 이상적인 기준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동안의 태도였다. 아마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게 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았다. 자신을 채찍질해야 그런 완벽한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이럴 경우 종종 돌이킬 수 없는 경계의 선을 넘기도 한다.
족쇄 채운 삶이 부르는 참극
우리가 종종 우리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기대를 살펴보면 때론 강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은 반에서 몇 등 이상, 내신은 몇 등급 이상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여긴다.
여성은 외모적으로는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가슴에, 오똑한 코와 큰 눈망울,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비호감이라고 이름지어버린다.
남성은 큰 키에, 어깨가 넓어야 하고, 직장인이라면 어느 급 이상의 차를 타야 하며 연봉은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무능력자라고 이름지어버린다.
그렇다면 이처럼 ‘되고 싶고, 되어야만 하는 완벽한 모습’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그것은 어릴 적부터 가족, 친구, 선생님, 미디어 등에서 우리에게 바라는 기대가 모두 합쳐진 모습이다.
문제는 너무 일찍 우리 뇌 속으로 그런 기대가 쏟아져 들어온다는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기는 귀엽고 예뻐야 하고, 학생이 되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 성인이 되면 가정을 꾸리고 완벽한 부모가 되면서 동시에 일도 잘하고,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끄럽다. 한마디로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수치심이란 ‘나에게 부족한 점이 있어서 사랑이나 소속감을 누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극심한 고통’이라고 한다. 수치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통적인 감정이지만 꽤 강력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 모든 기대를 만족시키려 완벽하게 되려고 애를 쓴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외로움, 고립감이다. 고립감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하고 혼자 남겨지게 될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스스로 결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그런 부분을 다 없애려 하다 보니 완벽해지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스스로 너무 들들 볶게 되고 다그치게 된다. 원하던 대로, 기대하던 대로 되지 않으면 심한 자책감, 수치심과 함께 우울감이 밀려온다. 우울감이 지속되고 깊어지다 보면 우울장애가 되어 무기력, 불면증, 집중력 곤란, 심하면 ‘이렇게 살아야 하나? 살 가치가 없어!’라며 자살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완벽주의가 단순히 개인 성향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문제까지 일으키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을 일으키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기술 4가지
1 내가 나에게 거는 기대는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알아보자
자신이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그때 어떤 암시를 받았는지 살펴보자. 성적에 대해, 성격에 대해, 외모에 대해, 능력에 대해, 소유물들에 대해 말이다. 때론 가볍게 던진 핀잔 속에, 눈빛 속에, TV 광고 속에 은근하고 조용한 기대가 들어 있었던 걸 몰랐을 수도 있다. 어릴 적에 우리는 그러한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마치 지금 우리가 원하고 있는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2 큰 그림에서 보자
우리의 기억, 경험과 사회시스템 사이 연관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큰 그림을 보면 사회가 우리에게 거는 기대, 작동방식, 미치는 영향, 그리고 누가 수혜를 입는지까지 제대로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외모라고 하면 미디어는 우리에게 스타일리쉬하고, 트렌디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진다. 그래야 사랑받는다고 말이다. 광고를 통해, 드라마를 통해, 방송 기사들을 통해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 위해 시간, 돈, 에너지를 아주 많이 쓰고 있다. 1년 내내 다이어트를 하고 옷은 계절마다 새롭게 사야 하고 립스틱도 주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이런 변화들로 혜택을 입는 것은 누구일까? 매년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은 누구일까?
3 완벽하지 않아도, 특출나지 않아도 괜찮다
진짜 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편안해질 수 있다. ‘진짜 나’가 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꾸미지 않고 진솔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결점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기거나 내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진짜 자기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자기 능력과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느낌이 든다. 부끄럽거나 어디론가 숨고 싶은 느낌이 들 때 이렇게 자신에게 이야기해보자. ‘이게 내 모습인데 뭐 어때.’ ‘이대로 난 충분히 괜찮아.’라고 말이다.
4 ‘완벽’보다는 ‘성장’을 목표로 세워보자
‘완벽해야 한다.’는 목표 대신 ‘지금보다 조금 더 성장하겠다.’는 목표가 훨씬 현실적이다. 어떤 시도를 했을 때 완벽하지 않다면 실패한 것이 되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모든 시도는 실패든 성공이든 간에 성장으로 이끈다. 완벽한 내가 되려는 목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자. 그러다 보면 오늘 할 일이 생각나고 내 작은 행동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하는 나를 칭찬해줄 수 있다. 자신에게 ‘어라, 나 이런 부분이 성장했구나.’하고 그 작은 변화를 칭찬해주자.
완벽하길 바라지만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없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완벽하고자 하는 것도 사실은 내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인데 그게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우리 아이러니해지지 말고 심플하고 담백하게 살자. 당신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