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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치아시크릿] 왜 학교치과진료실 불씨는 꺼졌을까?

2017년 06월 건강다이제스트 푸름호 108p

【건강다이제스트 | 신승철 교수 (대한구강보건협회장, 단국대 치대 교수)】

뉴질랜드의 기적

1923년 뉴질랜드에서는 치과계에 새로운 제도가 하나 생겼다. 학교치과 간호사(School Dental Nurse)라는 치과 인력이 만들어진 것이다. 알려진 바대로 충치나 치주병 같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구강병은 대개 널리 퍼져 있으며, 그 진행이 느린 만성이고, 또한 누진적이라서 절대로 저절로 낫는 법이 없다. 아무리 잘 치료해도 흔적을 남기는 돌이킬 수 없는 질병이기에 흔히 말하는 고혈압, 당뇨처럼 고질병에 속한다.

그러나 한 가지 좋은 점은 그 질병을 생기지 않도록 하는 예방 효과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사실 감기도 널리 퍼져 있는 질병이지만 예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아무리 손발을 깨끗이 씻고, 양치를 잘해도 걸릴 사람은 걸린다. 예방 접종도 크게 효과가 없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고는 현대 사회를 살아갈 수도 없기에 실현 불가능한 예방법만 잔뜩 소개해 줄 뿐이다. 그만큼 감기는 예방이 어려운 질환이란 뜻이다.

그에 비하여 충치나 잇몸병과 같은 구강병은 예방법이 비교적 간단하고, 누진적 질환이기에 초기에 치료할수록 훨씬 유리하고 건강상에도 좋다. 그렇게 볼 때 일생을 통해 가장 구강병을 잘 관리해야 할 시기가 바로 초등학생 시절이다. 그 다음이 청소년 시기인 중·고교 시절이다. 즉 초·중·고 시절에 정기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예방과 조기 치료를 잘 해주면서 구강을 철저히 관리한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일생동안 건강한 구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1923년 무렵 대표적인 사회복지국가요 자연주의 나라인 뉴질랜드에서는 초·중·고교에 치과를 설치하게 되었다. 학교 내에 있는 치과라고 해서 ‘학교치과실’ 또는 ‘학교구강보건실(School Dental Clinic)’이라 하였는데, 문제는 일생동안 여기에만 근무할 치과의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치과의사들은 개원을 하거나 큰 병원에서 더 많은 보수를 받고 근무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2년제의 구강병 예방과 교육 그리고 간단한 초기 치료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은 학교치과 간호사를 양성하여서 졸업 후에 치과 보건교사로서 각급 학교의 학교치과진료실에 근무하게 했다. 그리고 이들의 업무를 관리 감독하고 진료 책임을 질 학교치과 의사는 치과의사 한 명이 5-10개 학교를 맡도록 관리 체계를 확립하였다.

치과의사가 아동들을 차례로 불러서 예방할 내용과 초기 치료할 치아를 선정해서 관리할 것을 지시하고 가면 학교치과 간호사들은 지시대로 아동에게 예방과 조기 치료를 하도록 계속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세계보건기구가 바람직한 치과진료 체계로 손꼽는 계속 관리를 학교라는 집단 속에서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혹시나 심각하게 치료할 내용이 있으면 모아 두었다가 주기적으로 학교치과 의사가 오는 날 치료를 의뢰했다.

모든 학생들을 차례로 매일같이 지속적으로 관리하기에 결국 뉴질랜드 아동, 청소년들은 구강 내에 충치나 잇몸병이 거의 없었다. 이들이 후일 성인이나 노인이 되었을 때도 다른 나라 국민들에 비하여 구강병이 훨씬 적고 구강이 건강할 것이다.

실제로 뉴질랜드의 치과 진료 수준은 다소 낮지만 국민들의 구강 건강 상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평가한 바 세계 최고 수준에 해당된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의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 후 이 제도는 이웃 오스트리아로 전해졌고, 그곳에서는 학교치과 간호사를 치아치료사(Dental Therapist)라 칭하며, 역시 모든 초·중·고교에 반드시 학교치과진료실이 있어야만 학교 설립이 허가 되도록 법령을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좋은 제도는 사회보장성이 높은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대륙에 퍼지게 되었고, 심지어는 구 소련과 많은 연방 국가들에게도 퍼지게 되어서 국민들의 구강보건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사업이 되었다.

학교구강보건실 불씨를 살리자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무렵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이 제도가 국내에 도입되었고, 확대되기 시작했었다. 2000년에 한 도에 한 개 학교에 설치하여, 보건소 치과위생사들이 공중보건 치과의사의 지도하에 차례로 교내 치과실로 불러서 아동들의 개인별 구강병 예방 진료와 구강보건 교육을 해주며 계속 관리하는 제도를 운영하였다.

그 후 점차 확대되어 수년 내에 전국에 약 400여 개 초등학교에서 학교구강보건실을 설치 운영하게 되었다. 시설비와 운영비의 반은 지방자치에서, 나머지 반은 보건복지부가 부담하였다. 한 군당 한두 학교에 학교치과진료실이 있었던 셈이다.

군 보건소 소속의 공중보건 치과의사와 치위생사들이 초기엔 매일 학교 내에 설치되어 있는 치과진료실을 찾아가서 아이들을 차례로 불러서 올바른 이닦기법 지도와 같은 구강교육과 불소 도포, 치아 홈 메우기, 그리고 간단한 스케일링 등 예방치과진료를 해 주었고 발견된 충치들은 공중보건 치과의가 조기치료를 해 주었다.

그렇게 잘만 확대 되었다면 우리나라 7000개 초등학교와 궁극적으로 5000개의 중·고교까지 모두 설치되어서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유럽의 사회보장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사실 치과의사들은 수입이 줄어 힘들었을 것이다. 선진국들의 치과가 불황이고, 심지어는 치과대학마저 폐교시키는 예가 많음을 보면 짐작할 수도 있겠다.

미국은 이러한 학교구강진료실제도는 없으나 치위생사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예방진료를 다 해주는 제도가 있긴 하다. 어찌되었건 미국도 지난 10여 년간 60개의 치과대학에서 6개 치과대학이 문을 닫았다.

치과계로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에선 주민들과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잘 확대되던 학교구강진료실 사업이 보건소 내외의 여러 이유로 점차 실무자들이 기피하거나 학교를 방문하는 빈도가 줄어서 나중에는 주1회나 2주에 한 번 가서, 결국에는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하나둘씩 폐쇄되었고, 이제는 반도 남지 않았다. 수년 내에는 거의 다 없어지게 될 것 같다. 세계적으로 가장 적극적이고 효용성이 높은 아동 구강병 예방사업이 당국의 이해 부족과 실무자의 고충 등 이상한 이유들로 시작과 더불어 불씨가 꺼지고 있는 중이다.

어느 정치가가 말했다. 정치는 민주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그리고 보건의료는 공익을 우선한 사회주의가 타당하다고. 진정한 아동들의 구강건강 증진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에 다시 한 번 학교구강보건실 설립 운영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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