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신승철 교수 (대한구강보건협회장)】
왜 잇몸병을 풍치라고 하는가? 치아에 바람이 들었다고 나온 말 같다. 무에 바람이 들어 푸석해지고 습기가 많아지면 못 먹는다. 그런 의미로 잇몸에 병이 생긴 것을 치아에 바람이 들었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러니 바람 든 치아, 즉 풍치라고 말한다. 정확히는 치아 주위의 질병, 즉 치주병이다. 그 치주 조직의 하나가 치은이라고 불리는 잇몸이고 일반인이 보고 느끼는 치주는 잇몸이 대부분이기에 그냥 치주병을 잇몸병이라 여기고 이를 풍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치주병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그중 하나는 온몸에 변화가 있거나 질병이 있을 경우 그 후유증으로 치주에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 대략 치주병 발생 환자의 5~10% 정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우선 나이가 들수록 노화현상의 하나로 치주병의 발생률은 높아진다. 그런데 여성들은 사춘기나 임신 중에 일시적으로 치주병 발생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러한 예들은 자연스런 인간 생활로 나타나는 생리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질병이 있는 경우, 즉 당뇨병이 있는 경우는 웬만히 치주관리를 잘 하지 않고서는 치주병이 상당히 심해진다. 고혈압 환자도 치주병이 일반적으로 다소 높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특히 뇌전증이라 불리는 간질을 앓고 있는 경우, 이에 대한 치료약인 딜란틴 소디움 계의 약을 장기간 복용함으로써 발생되는 부작용으로 치은 비대가 오는 경우가 많다.
이상의 경우를 볼 때 전체 인구 중 이렇게 될 사람의 비율은 그리 많지는 않기에 전신요인에 의한 치주병 발생 확률은 비교적 낮은 것이다. 그러나 전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은 치주병 발생률이 매우 높음을 알아야 한다.
충치, 치은염, 치석은 잇몸병의 주범
일반적으로 치주병 발생은 구강 내에 한정된 국소 요인으로 발생한다. 우리가 밥을 먹거나 음식을 먹으면 아주 미세한 당 성분과 단백질 성분들이 미세 가루가 되어 침에 녹아 치아 면에 부착되게 된다.
매일 이를 닦지만 잘 안 닦이는 부위도 있다. 치아와 치아 사이나 치아와 잇몸 사이 같은 오목 들어가 있는 부위는 덜 닦여서 그냥 남아 있게 된다. 그러면 구강 내에 살고 있는 각종 세균들이 그 음식물의 미세 잔사에 붙어서 그것을 먹고 살면서 번식하게 된다. 이러한 치아 면에 붙은 세균덩어리의 얇은 막을 ‘치면세균막’ 또는 ‘치태’, 일명 ‘프라그’라 한다.
여기에 붙어 있는 세균들도 생명체인지라 각종 대사활동을 다한다. 충치 관련 세균들이 산을 배설하면 치아 표면을 서서히 삭혀서 이가 삭는 현상인 충치가 생긴다. 잇몸병을 야기시키는 세균들이 독가스를 지속적으로 내뿜으면 인접한 잇몸에 염증을 야기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치은염이다. 그리고 수개월 동안 이러한 치면세균막이 제거되지 않고 그냥 붙어 있을 경우 주위를 적시고 있는 침 속에서 칼슘과 인 성분을 흡수하여 차츰 석회화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치석이라고 부른다.
치석이 치아 주위에 끼이게 되면 이때는 인접 잇몸에 물리적인 힘으로 자극하게 되어 염증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쉽게 말하면 이물체가 작은 가시처럼 치아에 붙어 주위 잇몸을 조금씩 찌르게 됨으로써 잇몸에 염증을 야기시킨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러한 치석은 임상적으로 치아 주위에 붙어 있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4~5배의 양이 잇몸 속에 파고들어가 있다. 이렇게 잇몸 속에 파고들어가 있는 치석은 세균 번식의 온상이 되기도 하지만 치아를 꽉 잡고 있는 악골인 치조골을 서서히 녹여내리는 역할까지 하기에 잇몸 속에 치석이 존재하면 반드시 치주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치주병 예방의 대원칙 2가지
잇몸병은 대다수가 염증으로 나타난다. 즉 잇몸이 붓고 건드리면 피가 난다. 심해지면 입안에서 냄새가 심해지고 치아도 흔들린다. 곪으면 고름주머니도 생기고 둔한 통증이 심해진다.
치주병을 야기시키는 세균 중 대표적인 것이 포피로모나스 진지발리스라는 나쁜 병균이다. 현미경으로 보면 모양이 긴 막대모양의 실사균이나 꼬불꼬불한 나선균 형태의 것들이 많다. 이러한 치주병의 원인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치주병을 악화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치주병 병균들이 잇몸 속에서만 한정되어 살고 있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온몸은 거미줄 같은 혈관과 신경으로 분포되어 있기에 치주에 올라온 혈류를 타고 이 나쁜 병균들이 온 전신을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러다가 자신이 정착할 만한 장기를 찾으면 그곳에서 또 번식을 하여 해당 전신질환을 야기시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치주질환이 심하면 심장병이나 심혈관계 질환은 발생률이 2~3배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기도 하다.
당뇨병 또한 치주병을 악화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치주병이 있으면 당뇨병이 올 확률이 무려 6배나 높아진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폐렴 발생도 4배 정도 높아지고 골다공증도 2배 정도 높다고 한다. 심지어 노인들에게서 신경계 증상인 치매가 될 확률도 2.8배라는 보고서도 있다. 조산 확률도 7~8배 높다고 겁주기도 하고, 류마티스나 심지어는 성기능 장애도 다소 높아진다는 우울한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의 이유는 바로 치주병 병균들이 혈관과 신경계, 림프계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서 적당한 장기에 염증을 야기시키거나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의 지불 건수 제2위에 속할 만큼 전 국민의 상당수가 앓고 있는 치주병! 이의 예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이를 깨끗이 닦아서 치면세균막이 치아 면에 붙어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받아 치석을 제거하고 치아 면을 매끈하게 해놓는 것이다.
이러한 예방법에 실패하여 치주병이 발생했다면 치료법은 하나밖에 없다. 잇몸 수술이다. 잇몸 수술을 받아도 치주를 처음처럼, 젊었을 때처럼 회복시킬 수는 없다. 치주병은 충치, 고혈압, 당뇨병과 마찬가지로 계속 쌓여가는 누진적 질환으로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질병이기 때문이다. 다만 더 이상 치주가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술을 받는 것이다.
잇몸약 먹으면 잇몸 튼튼해질까?
간혹 초등학교 때 슬기로운 생활에서 배운 비타민 C 부족 시 괴혈병 발생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상식을 근거로, 치주를 튼튼히 한다는 목적으로 비타민 C를 애용하는 분도 더러 있다. 비타민 C가 부족하여 치주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가능한 말이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 중 비타민 C 부족으로 잇몸에 피가 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비타민 C가 부족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잇몸을 튼튼히 하겠다며 약이나 식품을 애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약들은 치주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그 약 복용만으로 치주병이 치료되지는 않는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서 주위에 벌겋게 염증이 발생했는데 약을 복용하면 낫겠는가? 이럴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시를 뽑는 것이다. 치주병도 마찬가지다. 치석이라는 가시 같은 이물질이 치아 면에 눌러 박혀서 잇몸이 자극을 받아 염증이 생겼는데 약 먹는다고 해결이 되겠는가? 반드시 치석을 제거하고 치주 치료를 받고 난 뒤에 그 약을 복용해야만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치주질환 역시 만성이고, 누진적 고질병에 해당하기에 당뇨병, 고혈압처럼 수개월 간격으로 계속 주기적으로 치과에 가서 관리를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치주병 관리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