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건강칼럼니스트 문종환】
“저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치유법을 찾았어요”
무엇이든 부자연스런 것은 좋지 않다. 절망의 끝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 한결같은 암 환자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 좋다는 것은 다 찾아다녔다. 무엇이 옳고 틀린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 그렇게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소식이 없어졌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무엇이 정답일까? 정말 정답이란 것은 없는 걸까?
2010년 12월, 악성뇌종양 진단
2010년 12월 어느 날,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TV를 보던 김문숙 씨(61세)는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이것저것 검사를 했으나 병원 측에서는 악성인지 양성인지 불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마나이프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자 딸이 여기저기 알아보고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해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 2차 진료를 받고 동짓날 다음날인 12월 23일, 악성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어쩌면 그녀의 악성뇌종양은 예견된 것인지도 몰랐다. “신장이 안 좋으면 집안이 망한다.” 젊은 그녀에겐 신장의 세균감염으로 발생한 ‘신우신염(요로감염의 일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허리 통증, 발열, 혈뇨 등 다양한 증상을 겪고 있었다.
신장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심장이 발생시키는 열을 가라앉히지 못해서 고혈압이 발생하는데 이를 두고 ‘신허성고혈압’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이런 증상도 있었다. 이 증상을 억제하기 위해 고혈압 약을 계속 복용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런저런 약을 계속 복용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두통 증상이 더해졌다. 의사에게 이 사실을 말했지만 진통제 등의 추가 처방은 없었다. 차를 운전하다 집을 찾지 못해 헤매던 때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녀에겐 점점 절박한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건강’이었다. 공부를 시작했다. 절박하면 빨리 얻어진다는 사실을 그녀는 믿었다. 그래서 또 공부했다. 박사가 돼갔다. 그리고 완전 채식주의자가 됐다. 생식이니 식이요법 등에 빠져들면서 먹는 것에 집중한 건강전도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쓰러졌다.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건강관리 그리고 절망
나름대로 열심히 건강관리를 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에 김문숙 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게다가 악성 뇌종양이었다.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악성 뇌종양’ 진단 후 수술과 약물치료를 거치면서 심각할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 일반적으로 간질이라고 하는 발작 증상을 일으키는 뇌전증 약도 3년간 처방받았다. 하지만 부작용 등으로 결국 6개월 만에 처방받은 약을 더 이상 먹지 않게 됐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모든 게 심드렁해졌다. 사는 게 무의미해졌다. 모든 에너지는 소진돼버렸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이러다가 죽는 거구나.’했다고 한다.
반전 그리고 다시 나를 찾아서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에 김문숙 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무기력하게 삶을 낭비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한 신부님이 운영하는 쉼터에서 일주일 동안 ‘암 치유를 위한 교육’을 받게 됐던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하나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선은 주거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거였어요. 살고 있었던 집은 제게 악성뇌종양, 신우신염, 고혈압, 뇌전증 등 무수히 많은 병을 발생시킨 곳이었고, 일단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문숙 씨는 그 후 암 환자가 요양할 만한 곳을 이곳저곳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많은 암 환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모두들 저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교통사고까지 나 갈비뼈 골절, 손등분쇄골절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기도 했지만 이 일은 암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는 계기도 됐다.
김문숙 씨는 “뼈를 깎는 통증 앞에서 오히려 암이 더 착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 세상에 암보다 더한 고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고 말한다.
그러자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김문숙 씨! 마음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불교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최면치료나 심리치료를 경험한 것도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우울증과 외로움을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뇌종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또 다른 삶을 꿈꾸다
“암 환자는 고기를 먹지 말거나 혹은 최대한 적게 먹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가 암 치유에 있어서 식이요법의 기본이다. 김문숙 씨는 채식주의자였다. 그런데 ‘악성 뇌종양’진단을 받았다. 식이요법이 뿌리째 흔들릴 만했다.
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무덤덤하다. 물질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마치 결백증 환자처럼 완벽을 추구했던 시간들도 반복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치면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뭔가 불안하고 허전했던 마음을 늘 안고 살았는데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나니 삶의 색깔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했어요.”
뭔가 모르게 자신감도 생겼다고 한다. 어떤 난관에 봉착해도 능히 뚫고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또 다른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마음을 바꿈과 동시에 삶의 터전을 옮기니 그녀의 삶도 180도로 바뀌었다. 남편의 배려로 계룡산 자락 한적한 농촌에 요양원 같은 집을 마련하였고, 그곳이 제2의 삶을 시작하는 그녀의 공간이 됐다. 한 모금 차를 머금고 뜨락을 바라보면서 대지의 순환하는 이치를 가만히 들여다보곤 한다는 김문숙 씨!
복사꽃이 피어나면 매화는 시들겠지만 그렇다고 매화가 가진 의미마저 퇴색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치매에 걸린 엄마와 함께 살아요!
딸마저 동의하지 않았던 일을 저질렀다. 딸은 악성뇌종양 환자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덧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게 되면서다. 그리고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땄다. 내친김에 일도 시작했다. 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 일이다. 하루 3시간 정도만 일한다.
그녀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게 내 마음에 달렸다. 슬픔과 기쁨도 내 마음이 결정한다.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바꿀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 우리는 좌절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바꿔 희망을 품으면 또한 시간이 그것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엄마를 곁에 두고 같이 사는 것, 비록 치매 환자가 돼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치매 엄마를 보살피는 과정에서 새로운 일도 시작하게 됐다. 그것이 즐거움이고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밥상과 일상, 어떻게 하나?
채식주의자였던 그녀의 밥상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평소에 육식을 즐기지 않는 탓에 상차림은 여전히 콩과 채소 중심이다. 가족의 외식 때는 가끔 고기도 먹는다. 고기라면 터부시했던 그녀의 음식에 관한 변화다. 물질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마음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물질과 정신 혹은 마음의 균형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놓지 않고 먹는 것이 있다. ‘토마토 스프’가 그것이다.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 토마토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양파·파프리카·양배추·브로콜리 등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준비한다.
● 토마토를 먼저 들기름이나 올리브유에 살짝 볶은 후 소금 간을 한다.
● 어느 정도 익힌 후 준비한 다른 재료들을 함께 섞어서 조금 볶다가 불을 끈다.
● 겨울철엔 토마토의 맛이 떨어지므로 토마토소스를 첨가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만든 토마토 스프와 더불어 즐겨먹는 것은 와송추출액과 요거트를 소스로 사용해서 만든 견과류 샐러드다.
그녀의 생활은 표준이라 할 만하다. TV는 거의 보지 않고 저녁 9시 30분 정도면 잠자리에 든다. 저녁 10시 이전에 자는 것이 가장 좋다고 권하는데 그 이유는 면역력 증진과 관련된 행복호르몬인 멜라토닌과 세로토닌의 호르몬 작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동트기 전에 일어나 30~40분 정도 발목펌프운동·허벅지근육강화운동·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낮에는 집 주위에 훌륭한 트레킹코스가 있는데 그녀는 그 코스 중 약 6㎞를 걷는다. 소나무가 즐비하여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그렇게 자연은 언제나 말없이 그녀에게 건강을 허락하고 있다.
때로는 나태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김문숙 씨는 봉사활동을 다닌다고 한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다시 마음이 부자가 된다.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세상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 고마움을 느낀다.
“봉사는 다른 사람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실천이다.” 김문숙 씨가 긴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