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기자】
“조금 덜 먹고, 욕심을 줄이면 간이 좋아합니다”
교육비·생활비·아빠 노릇·자식 노릇을 어깨에 짊어진 이 시대 아버지들은 이야기한다. 복잡한 세상 시름 잠시 잊게 하는 데 술만 한 것이 없다고. 힘들수록 술술 넘어가는 것이 술이라고.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유병철 교수는 이야기한다.
책임과 의무에 파묻혀 쓸쓸한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지만 술술 넘어가는 술에 아버지의 간은 소리 없이 병들어 간다고. 간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술을 줄이고, 운동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라고.
유병철 교수는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의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간이 나빠졌다는 소식에 다리가 풀린 환자의 마음을 포근히 보듬는다. 이 시대 아버지를 괴롭히는 간 질환을 다스리는 명의 유병철 교수가 전하는 따뜻한 목소리를 따라가 봤다.?
책 속에서 찾은 의사의 길?
우리 어릴 적에는 그랬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통령이요!” “의사요!” “판사요!” “과학자요!”라는 말이 주로 되돌아왔다. 꿈은 다양하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대부분 ‘보람이 있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것 같아서’ 그 꿈을 선택한다.
유병철 교수도 그랬다. 그가 숨죽이며 읽은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 등장한 ‘뤼’는 닮고 싶은 의사였다. 뤼는 페스트라는 전염병에 맞서 사람을 구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유병철 교수도 그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의사의 길. 생명을 구하고, 건강하게 도와주는 행복한 의사가 자신의 평생 직업이라고 굳게 믿었다.?
푸른 꿈을 품고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지만 많은 공부량, 시험, 과제에 놀랐다. 하지만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내과 공부를 해갈수록 간 분야에 유독 눈길이 갔다. 인체의 화학공장으로 불리며 영양분을 만들어 저장하고, 대사에 관여하고, 해독을 하는 등 무궁무진한 역할을 하는 간은 그에게 흥미로운 장기였다.
유 교수는 “그때도 간 질환 환자들이 많았고, 침묵의 장기 간으로 인해 예고 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은사인 김정룡 교수가 진행하는 B형 백신 연구를 지켜보면서 간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은 커져 갔다. 그렇게 오직 간 연구에 파묻혀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니 어느새 간 질환의 명의라는 수식어가 그의 곁에 남았다.?
건강을 부르는 쉬운 생활습관?
유 교수는 환자 진료와 연구뿐 아니라 현재 대한간학회 이사장, 삼성서울병원 소화기센터장으로 활동하는 등 인생에서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건강하기 때문에 이 많은 일정을 거뜬히 소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그 흔한 건강보조식품 하나 입에 대지 않고 오로지 세 끼 식사와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주말이면 시간을 내서 등산이나 산책을 하지만 평일에는 운동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한다. 하루 대부분을 앉아 있기 때문에 움직임도 적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틈새 운동’이다. 그는 시간을 정해 놓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운동한다. 운동할 때도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지거나 일찍 퇴근하면 집에서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등을 한다. 진료 중에 잠깐 쉬는 시간이 생기면 스트레칭과 가벼운 맨손체조로 온몸을 움직인다. 그는 “잠깐 하는 운동이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좋다.”며,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을 때는 몸이 무거워졌다는 것을 분명히 느낀다.”고 말한다.
또한 유 교수는 과체중을 예방하기 위해서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입이 심심하면 과자, 빵, 음료수 대신 보리차 같은 차를 마신다. 대신 세 끼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아침에도 밥과 국을 든든하게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달콤하고 고소한 간식을 먹으면? 당장은 즐겁지만 당분, 콜레스테롤이 많아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이 된다.”고 조언한다.
약과 독을 가려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유 교수지만 환자를 치료할 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그는 “의사는 자기 방어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위험은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다. 담당의사로서 치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환자다. 환자에게 최선의 방법이라면 그는 그 방법을 선택한다.
말 없던 그가 유난히 말수가 많아지는 때도 환자를 만날 때다. 치료하고 있는데도 좋아지지 않는다면 대화 시간이 길어진다. 간에 해로운 음식이나 약을 먹은 것은 아닌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환자들이 일상에서 무심코 먹은 음식이나 약이 간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그는 특히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민간요법과 ‘건강표방식품’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0월에 열린 대한간학회 간의 날 토론회에서 독성간염에 관해 토론했을 정도로 최근 검증되지 않은 약재와 건강표방식품이 원인이 되는 간 질환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간 질환 환자라면 간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 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건강기능식품을 꼭 먹어야겠다면 최소한 식약청의 인증을 받은 제품인지 확인해야 한다.
유 교수는 “음식은 ‘구관이 명관’”이라고 강조한다. 예전부터 우리가 대대로 먹어 왔던 채소만 먹어도 충분히 몸에 좋고 안전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나는 풀이나 열매는 무조건 먹을 수 있다는 생각, 어떤 약재든 많이 넣으면 좋다는 생각이 오히려 간과 건강에 해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오늘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환자들을 진료하는 그의 눈은 한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어느 날 갑자기 간암, 간경변증이라는 청천벽력을 듣지 않도록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권유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다. 항상 소리 없이 병들어가는 간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해 바쁜 하루를 보내는 그의 또 다른 행보가 주목된다.
유병철 교수가 제안하는? 술자리 많은 연말연시, 소중한 간 사랑법
1. 습관적으로 하는 음주가 가끔 하는 과음보다 해롭다.
당신의 간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보통 간은 한 시간에 알코올 10g을 분해할 수 있다. 즉 소주 한 병에 든 알코올이 80g이라면 8시간은 지나야 분해될 수 있다는 말. 2병을 마시고 5시간 잤다면 아침에도 간은 해독 중이다. 간을 위해 과음을 했으면 일주일 동안 술을 마시지 말고, 평소에도 2~3일은 쉬었다가 마셔야 한다. 술을 마시는 연말연시 모임이라면 약속을 띄엄띄엄 잡는 센스가 필요하다.???
2. 비싼 술이든, 알코올이 적게 든 술이든 많이 마시면 해롭다.
술이 간에 미치는 영향은 술의 가격이나 종류와는 상관없다. 마신 알코올의 절대량과 관계가 깊다. 즉 맥주, 와인처럼 알코올이 적게 든 술이라도 많이 마시면 간에 해롭다. 안주를 많이 먹어도 간에는 똑같다. 와인 파티, 맥주 파티에서도 과음한다면 간에 ‘깡소주’ 못지않은 부담을 줄 수 있다.
3. 해장술은 독이다.
대부분 해장술을 먹는 이유는 술이 깨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린 증상을 알코올의 힘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말이 필요 없다. 해장술은 열심히 알코올을 분해하고 있는 간에 알코올 폭탄을 던진 격이다. 이번 연말연시에는 해장술을 마시지도, 권하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