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미애로여성의원 중구점 김해성 원장(산부인과 전문의)】
부부만 아는 은밀한 숫자, 섹스 횟수. 다른 부부의 섹스 횟수 이야기는 은근히 궁금하고 흥미롭다. 최근에는 배우 권오중이 방송에 나와 아내와 주 3회 부부 관계를 한다는 말을 해서 큰 화제가 됐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권오중 부부에게 ‘금실 좋다.’, ‘잉꼬부부’라는 말을 쏟아냈다. 많은 남편들은 섹스를 자주 할수록 자신의 정력이 좋다고 생각한다. 많은 아내들은 섹스를 자주 할수록 부부 사이가 좋다고 느낀다. 그래서 섹스를 자주 하지 않으면 부부 금실이나 배우자의 성 기능을 걱정한다. 심지어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는 일도 있다. 과연 섹스 횟수로 부부 사이를 단정할 수 있을까?
CASE 1. 남편 이야기 “섹스리스 부부 될까 봐 불안한 소수남(가명) 씨 사연”
하나, 둘, 셋…. 지난달 아내와 섹스를 한 횟수를 세어본 소수남 씨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결혼 8년 차인 소수남 씨는 몇 달 전부터 아내와의 섹스 횟수를 스마트폰에 체크해 세어보기 시작했다. 이번 달에는 3번, 지난 달에는 고작 2번, 그 전 달에도 2번에 불과했다. 정상적인 부부라면 이럴 수 없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여보, 우리 이러다 섹스리스 되는 거 아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내는 “우리 나이에 그 정도면 양호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임신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횟수가 적은 건지 말이다. 문득 어젯밤 침대에서 자신의 손길을 슬그머니 피하던 아내가 생각났다. 이런 아내가 야속하기만 하다.
CASE 2. 아내 이야기 남편의 바람을 의심하는 고정인 씨(가명) 사연
확실히 의심스러웠다. 남편이 진짜 바람이 났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40대 초반인 고정인 씨는 몇 주 전 남편 동창 모임에 따라갔다가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남편들이 밖으로 나간 사이 아내들끼리 섹스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다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섹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남편과 정인 씨는 많아야 한 달에 한 번꼴로 섹스를 하는 편이다. 다른 부부의 횟수에 놀라 단숨에 몇 년 동안 이렇게 지냈다는 말까지 털어놓아 버렸다. 10년 넘게 보아온 남편 친구 아내는 “혹시 바람피우는 거 아냐…”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성욕이 없지도 않았다. 컴퓨터에 몰래 숨겨 놓고 보는 야한 동영상이 그것을 증명했다. 다른 부부의 섹스 횟수와 비교를 하면 할수록 눈물이 나왔다. 어쩌다 한 번씩 하는 섹스도 자신을 위해 의무적으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은 얼마 못 가 분노로 바뀌었다.
“도대체 내가 뭐가 못나서?”
섹스의 정의를 바꿔라!
섹스 횟수 때문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부부가 많다. 거의 섹스가 뜸해서 걱정하거나 상처받는다. ‘누구는 일주일에 얼마큼 한다는 데 왜 우리 부부는 그렇게 못할까?’라는 것이 공통된 걱정이다.
미애로여성의원 중구점 김해성 원장은 “섹스 횟수 때문에 걱정하기에 앞서 섹스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섹스를 했다고 생각할까? 바로 ‘삽입’을 떠올릴 것이다. 삽입을 해야 한 번의 섹스로 인정한다. 김해성 원장은 “삽입이 섹스의 전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삽입성교를 단지 섹스의 한 종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섹스의 우리말은 ‘성관계’다. 그냥 ‘성’이 아니고 ‘관계’가 붙은 이유를 생각해보자. 동물은 교미를 한다. 이 교미는 성적 본능이고,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교미라고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확인하고 표현하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에 성관계라고 한다. 따라서 성적인 관계, 즉 성관계는 남녀가 만나서 성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남편은 지속적인 발기력만이 아내를 만족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강한 남자’를 꿈꾸는 것이다. ‘약한 남자’의 모습을 아내에게 보이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래서 발기가 되지 않거나 조루의 낌새가 있으면 애초에 시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아내의 입장을 살펴보자. 김해성 원장은 “삽입성교로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은 고작 20%뿐”이라고 말한다. 그럼 80%는 다른 방법으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모르는 남편은 전희 없이 삽입만을 원하고 아내는 삽입성교만으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다. 그럼 결과는 뻔하다. 아내의 섹스 거부로 이어지는 것이다.
섹스, ‘삽입’이 아니라 ‘놀이’
김해성 원장은 “이제부터 섹스를 ‘어른들이 침대에서 하는 재미있는 놀이’로 생각하자.”고 말한다.
놀이는 정해진 방법이 없다. 다양한 방법으로 즐겁게 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삽입이라는 전제조건을 빼는 것이다. 부부가 친밀하게 이야기하고, 키스하고, 서로 애무를 해주다가 잠이 들었다. 그것도 섹스다. 부부 둘 다 컨디션이 좋아서 전희를 거쳐 다양한 체위로 삽입성교를 했다. 이것도 섹스다.
이렇게 섹스의 정의를 바꾸면 바로 두 가지 좋은 점이 생긴다. 그토록 노심초사했던 섹스 횟수를 남부럽지 않게 늘릴 수 있다. 아울러 삽입성교에 대한 부담감을 확 줄일 수 있다.
섹스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면 스킨십을 점점 늘려나가자.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스킨십을 거의 안 하는 부부가 많다.
김해성 원장은 “스킨십이 적은 부부는 배우자가 키스만 해도 곧 삽입성교로 이어질 거라는 예상을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대부분 그래 왔기 때문이다. 사소한 스킨십만 해도 ‘발기가 안 되면 어떻게 할까?’ ‘성교통이 생기지 않을까?’ ‘피임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걱정 때문에 스킨십 자체를 피하는 일이 많다. 스킨십이 꼭 삽입성교로 이어지라는 법은 없다. 스킨십만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야 부부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친밀해야 섹스한다!
김해성 원장은 “섹스 횟수가 유난히 적어졌다면 부부의 친밀도나 대화 방법을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매일 함께 자는 부부에게 성욕이 생기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일 수 있다.
항상 입버릇처럼 배우자 탓을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특히 삽입성교가 잘되지 않을 때 “당신이 힘이 없어서 그래.” “당신이 살이 쪄서 기분이 안 나.”와 같은 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단 한 마디라도 상처가 되고, 그 충격은 오래간다.
김해성 원장은 “합의되지 않은 섹스 체위나 성교 도구 등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며 “부부 사이라도 지킬 것을 지켜야 평생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김해성 원장은 “남편들이 아내를 만족시키고 싶다면 80%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말했듯이 여성의 20% 정도가 삽입성교로 오르가슴을 느낀다. 나머지 80%는 정서적인 친밀감, 애정이 담긴 대화, 가벼운 스킨십, 애무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신은 발기됐다고 전희 없이 몰아붙이는 삽입성교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내를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해성 원장은 성상담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네이버 카페 아궁이(아줌마들의 궁금한 이야기, cafe.naver.com/dkagoonge)를 운영하는 ‘아궁이 의사’로 유명하다. 대한성학회와 대한비뇨부인과학회에서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