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연세대 의대 허갑범 명예교수(허내과 원장)】
인천에서 임대업을 하는 50대 후반 석근호(가명) 씨는 요즘 당뇨병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다. 재작년에는 친누나가 당뇨병을 진단받았다. 작년에는 45년지기 죽마고우가 당뇨병에 걸려서 같이 걱정해줬는데, 올봄에는 느닷없이 30대 초반 아들까지 혈당이 높으니 조심하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가까운 세 사람이 당뇨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자신뿐 아니라 아내와 딸도 당뇨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밀려온다. 석 씨처럼 당뇨병에 걸릴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알아봤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10가지 유형이다.
나쁜 생활습관이 가장 문제!
당뇨병이 늘고 있다는 것은 더는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성인 인구의 10%가 당뇨병이라는 이 어마어마한 수치를 직접 체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가족, 친척, 직장동료, 이웃 등 자꾸 당뇨병에 걸렸다는 사람 이야기가 끊이지 않은 걸 보니 말이다.
현재 당뇨병이든 그렇지 않든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을 알고 있어야 한다. 당뇨병이라면 왜 당뇨병에 걸렸는지 깨닫고, 그 유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면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과 겹치는 것이 없는 사람은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안심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10가지 유형을 잘 기억해 앞으로도 당뇨병과 멀어질 수 있는 길라잡이로 삼아야 한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① 나는 뱃살왕이다!
비만은 당뇨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방조직이 많아지면 인슐린 작용이 감소하는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진다.
우리 몸에서는 매일 적절한 양의 인슐린이 나와서 혈당 조절 같은 여러 가지 대사기능을 조절한다. 어떤 이유로 우리 몸이 이런 인슐린의 작용을 방해하는 상태로 바뀌는 것을 ‘인슐린 저항성’이라고 하는데, 이때는 더 많은 인슐린이 나와야 혈당을 잘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슐린이 나오지 않거나 세포에 대한 인슐린 작용에 이상이 생기면 당뇨병이 되는 것이다.
연세대 의대 허갑범 명예 교수는 “특히 복부비만이 해롭다.”며 “복부비만은 내장 지방의 축적이고 내장지방에서 만들어진 다량의 지방산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과식을 하면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무리하게 많은 인슐린이 분비된다. 더구나 항상 음식을 많이 먹으면 뱃살이 찌고, 췌장 베타세포에서 계속 많은 인슐린이 분비되어 나중에는 베타세포가 탈진 상태에 빠진다. 그러면 더욱 인슐린을 못 만들게 되고, 당뇨병이 되는 것이다.
과식하는 사람들은 보통 지방이 듬뿍 들어간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등을 좋아한다. 지방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은 대사될 때 더 많은 인슐린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뇨병에 더욱 해롭다. 당뇨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공식품, 단 음식, 튀긴 음식 등의 섭취는 피하고 제철음식 위주로 골고루 적당히 먹어야 한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③ 나는 지금 폭발 직전이다!
허갑범 교수는 “스트레스도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킨다.”고 설명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에서는 여러 가지 호르몬이 나온다. 그 중 코르티솔은 내장지방을 과다하게 축적시켜 결과적으로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킨다. 또한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뇌하수체의 성장호르몬과 췌장에서 글루카곤이라는 호르몬도 나오는데 이 호르몬들은 인슐린의 혈당을 낮추는 작용을 방해해 당뇨병을 일으킬 수 있다.
긍정적인 생각과 복잡한 마음을 다스려주는 취미 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④ 나는 예전에 못 먹고 살았다!
허갑범 교수는 최근 당뇨병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이유로 ‘빈곤과 풍요의 충돌 가설’을 든다.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태아기나 성장기에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이 많다. 허갑범 교수는 “영양불량으로 정상적인 성장과 발육이 안 된 상태에서 20대 이후에는 과음, 과식, 운동 부족 때문에 복부비만이 되어 당뇨병이 잘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태어날 때 2.5kg 미만이었다면 더욱 당뇨병 예방에 힘써야 한다.
또한 태아기나 성장기에 단백질이 부족하면 인슐린 분비에 이상이 생긴다. 허갑범 교수는 “이런 경우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의 성장과 기능이 떨어지고 사지의 골격근 성장도 잘 안 돼서 인슐린 분비와 작용이 감소된다.”고 설명한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⑤ 나는 대사증후군이다!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 혈압 상승, 혈당 상승, 높은 중성지방, 낮은 HDL콜레스테롤까지 이 5가지 중 3가지 이상이 해당하는 경우다. 대사증후군이 있는데도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당뇨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대사증후군은 여러 가지 이유가 관여해서 생기지만 특히 중요한 이유로 꼽히는 것이 인슐린 저항성이다. 대사증후군인 사람은 아닌 사람과 비교해 당뇨병 위험이 4~6배 높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⑥ 나는 운동과 담쌓았다!
허갑범 교수는 “운동은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운동은 한 번만 해도 이틀 동안의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킨다.
운동하면 비만이 해결되고 팔다리의 근육이 튼튼해져서 인슐린 작용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심장과 혈관도 튼튼해져서 당뇨 합병증이 잘 안 생기게 된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⑦? 나는 술고래다!
술은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신진대사에 악영향을 주고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특히 술을 자주 마시면 안주 때문에 복부비만이 되기 쉽고, 운동할 시간은 없다. 생활도 불규칙해진다. 이렇게 과음이 가져오는 우리 몸의 변화는 모두 당뇨병을 유발하는 요소들이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⑧ 나는 담배 없인 못산다!
한국인 약 120만 명을 14년 동안 연구한 결과 당뇨병 환자가 담배를 피우면 사망률이 2배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담배는 혈관 건강에 매우 해롭다. 흡연할 때 담배 연기에 들어 있는 나쁜 성분들이 혈액 속으로 들어오는데, 그 성분들은 혈압의 수축, 협착, 기능 이상을 불러온다. 흡연은 부신피질호르몬 분비를 증가시켜 당뇨병을 유발하는 복부비만도 촉진한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⑨ 나는 부모가 당뇨병이다!
허갑범 교수는 “부모 모두 당뇨병이면 60%, 부모 한 명이 걸렸으면 20~30%, 부모가 모두 당뇨병이 아니면 5% 이내에서 자녀의 당뇨병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유전적 요인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당뇨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뇨병은 유전적인 요인뿐 아니라 복부비만, 운동부족 등 환경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갑범 교수는 “부모가 당뇨병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당뇨를 피하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⑩ 나는 약을 오래 먹고 있다!
치료를 위해 먹는 약 중에는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억제하거나 인슐린 작용을 방해해서 혈당을 올리는 약이 있다. 베타차단제 계열의 혈압약, 피부질환이나 신경통 때문에 먹는 스테로이드제가 대표적이다. 이런 약을 오랫동안 먹으면 유전적으로 당뇨병과 무관한 사람들도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경우라면 정기적으로 당뇨병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허갑범 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당뇨병에 잘 걸리는 유형 중 본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꼭 바꿔야 한다.”며 “그 노력을 빨리 시작할수록 당뇨병뿐 아니라 대사증후군과도 멀어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허갑범 교수는 대통령 주치의를 지냈고 현재 허내과 원장이다. 대한당뇨병학회 회장, 대한내분비학회 회장을 역임, 한국대사증후군포럼을 만들어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