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건강칼럼니스트 문종환】
초기 암 = 비교적 안전, 말기 암 = 위험하다는 인식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이러한 생각의 저변에는 암을 조기 발견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착각이 깔려 있다. 또한 이것은 암 조기발견 캠페인으로 이어져 여기저기서 암을 빨리 발견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꾸자. 암은 초기이든 말기이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그리고 치료방법에 따라서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완치율 95%라는 말만 믿었다가…
유방암 초기 진단으로 수술을 받은 P씨. 전이 및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항암화학요법을 하자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치료를 진행했다. 그런데 3개월 후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임파선과 골반까지 전이된 4기 암 환자로 변한 것.
사실 그녀는 진단 당시 초기라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병원치료에만 매달렸다고 했다. 병원치료로 초기 암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유방암 완치율(5년 생존율)은 95%를 넘는다는 보고서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암의 위험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게 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절망감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불면증에 우울증까지 겹쳐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이러한 사례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병원치료만 믿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는 암 환자가 어디 한둘일까.
암은 안으로부터 온다
우리들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원인을 나로부터 찾지 않고 외부로부터 찾는 경향이 있다. 친구나 이웃을 잘못 만났다던가, 아니면 운이 없었다던가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되도록이면 그것이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기인한 사실을 시인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암 또한 외부로부터 온 것이라 생각하고 세균이나 바이러스, 발암물질 등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비단 암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진 또한 암 발생 원인을 외부인자로 추정하여 공격적인 치료(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등)에 전념하게 된다.
물론 외부 환경이 암 발생의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석면, 폐수, 유독성화학물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로부터 온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치유방법도 있게 된다.
암 소멸의 길은 수행의 길
필자는 암 진단 환자들에게 암 소멸의 길은 수행의 길과 같다고 말하곤 한다. 이는 몸과 마음이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나와 내 몸과의 관계설정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내 몸을 동일시하여 치료방법의 선택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질문은 수행자들이 화두로 올리는 말이다. 내 몸은 내가 생존할 동안 잠서 머물다 떠날 집이다. 이 집은 영적 메지시를 반영한 아주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내 집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이 쓰레기로 넘쳐나든, 아니면 폭풍우에 쓰러지든 무책임하게 생활해 왔다. 나의 명령을 받는 내 몸은 늘 지쳐있고 올바른 영양도 공급받지 못한 채 사막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극한 상황에서도 모질게 견디다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나머지 내 몸은 나에게 항의를 하게 된다. 그것이 암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내 몸은 더 이상 내가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려 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에 충실하려 한다. 결국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몸의 사멸, 즉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이다. 아니 나의 무관심과 부주의 한 탓이다. 내 몸이 건강하게 생존해 있으려면 물질, 즉 적절한 영양공급과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적절한 휴식이고, 숙면이며, 봉사고, 나눔이며, 웃음이고, 피곤하지 않을 만큼의 활동이며, 절제다.
이렇게 내 몸을 위한 봉사활동, 최소한의 배려 등이 없이 암이 발생했다고 이것만을 제거하기 위해서 온갖 의학적 치료방법을 동원한다면 서둘러 무덤으로 가게 될 것이다.
암은 초기, 말기가 중요하지 않다
필자에게 종종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말기 암 환자로 병원으로부터 시한부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다. 3~6개월의 시한부 진단을 받은 환자는 더 이상 병원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마지막으로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이들이 많다.
이때 가장 먼저 체크하는 사항이 “현재 먹고 걷는 데 지장은 없나요?”다. 만약 먹고 걷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하면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당신은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은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지 의사도 하느님도 아닙니다. 그러니 기죽을 필요도 없고 실망하거나 분노하거나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1%라도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어온다. “1%가 아니라 99% 희망이 있지요.” “어떻게요?” “지금부터 거꾸로 생각하세요. 병원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병원치료를 받다가 죽을 것이지만 이제 더 이상 병원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다행한 일이고 지금부터 희망이 생긴 것이지요. 암은 초기, 말기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는 제가 10년을 넘게 암 환자를 관찰하고 사례를 수집한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대응하고 선택하느냐가 문제일 뿐이지요.”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모든 것을 바꾸십시오. 모든 것을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비우는 연습을 하세요.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되면 희망이 생깁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이므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몸을 다하세요.”
이런 식의 대화가 30분 이상 이어진다. 전화를 끊을 때는 나름대로 목소리도 밝아지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알 수 없다.
반전의 실마리는 스스로 마련하라
병원진단이 당신의 생사 여부를 결정짓는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 의사의 진단이 당신의 생명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진단으로 당신 스스로 그 시한만큼만 사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 진단이라면 무시해도 좋다. 당신이 지금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반전의 기회는 만들 수 있다. 그 반전도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족도 친구나 친척도, 심지어 의사도 그 반전의 실마리는 제공해 줄 수 없다. 더 이상 기대지 마라. 나의 무관심과 부족한 사랑으로,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몸을 괴롭히는 습관을 가졌으므로 발생한 암을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생각을 바꾸어 몸에 봉사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암을 잡는다고 몸에게 더 부담을 주는 치료를 강행한다면 그 결과는 충분히 예측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러분이 초기라고 안심하여 병원치료만 받고 일상생활을 변함없이 지속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또 시한부 말기 암 진단을 받았더라도 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충분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희망은 여러분 마음에 있는 것이고 마음에 있는 희망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여러분의 실천의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