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한때 만성 B형 간염 진단을 받고 절망의 끝을 보았다는 사람. 대화를 할 때도 눈꺼풀이 내려앉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서류 가방 하나도 10분 이상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운전대를 잡으면 5분을 버티지 못하고 손의 힘이 풀렸다. 그런데도 병원에서는 약이 없다고 했다. 하루하루 병세는 악화돼 갔지만 속수무책 방법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활기찬 인생을 산다. 올해 일흔이라는 나이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산 생즙기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인생을 걸었다는 베네베로코프레이션(Benevero Corporation) 최춘식 대표(70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도대체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몸살감기에 숨어있던 질병의 덫
오랫동안 대기업의 해외 주재원으로 사회생활을 해온 때문이었을까?
최춘식 대표가 미국에 터를 잡고 무역업을 시작한 것은 자연스런 결정이었다.
삼성, 효성, 대우 등에서 출시된 다양한 전자제품을 미국으로 수입, 판매하는 일로 그의 40대는 눈코 뜰 새 없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욕심도 생겼다. 날로 품목을 넓혀가면서 사업 확장도 꾀했다. 비록 몸은 고되었지만 돈 버는 재미가 솔솔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피곤함이 풀리지 않았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거뜬하던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좀 무리했나?’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이상했다. 날로 피곤함이 더해만 갔다. 심지어 대화를 하면 눈꺼풀이 내려앉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회사 출근할 때 드는 가방도 아내가 대신 들었다. 가방도 10분을 들 수가 없었다. 30분 일을 하면 한 시간은 누워 있어야 했고, 골프도 한 홀 치면 입에서 쓴물이 올라오고 헉헉거렸다.
그런데도 왜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한창 사업을 벌려놓은 시기라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몸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나보다.
“하루는 몸살이 난 것처럼 몸에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몸살감기인줄 알고 약을 지어먹었어요.”
그런데 웬일일까? 약을 먹어도 낫지가 않았다. 그래서 찾게 된 병원에서 최춘식 대표는 절망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의사는 말했다. B형 간염이라고. 이미 만성으로 진행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이없었다. 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B형 간염은 약이 없으니 잘 먹고 푹 쉬라고만 했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나 싶었어요. 약이 없다니. 기가 막혔어요.” 그것은 1992년, 그의 나이 48세 때의 일이었다.
생즙을 먹기 시작하다
증상은 있는데 치료약은 없는 기막힌 상황. 결코 믿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최춘식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저 잘 먹고 푹 쉬라는 의사의 말도 따르기가 쉽지 않았다. 벌려놓은 사업이 발목을 잡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병세는 점점 더 나빠져 갔어요. 그러자 한국에 있던 동생이 그 소식을 듣고 권해준 게 있었어요.”
생즙이었다. 생즙으로 간염을 치료한 사람이 많다면서 권한 방법이었다.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국제건강가족동호회라는 곳에 피검사와 X-레이 필름을 보내서 생즙 처방을 받았고, 한국산 생즙기도 구입했다. 미국산 녹즙기로는 즙을 잘 짤 수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맥주컵으로 하루 3잔씩 생즙을 마시기 시작했다. 민들레+컴프리+홍당무+돌나물+양배추+비트 등 처방 받은 녹즙 재료를 구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마셨다.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정말 열심히 실천했어요. 목숨을 걸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런 때문이었을까? 그런 생활이 3년 정도 계속됐을 때 그의 몸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한 홀밖에 돌지 못했던 골프장을 29홀을 돌아도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게 됐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궁금했어요. 몸 상태가 어떻게 변했는지…호기심에 3년 만에 병원을 찾았죠.”
피검사와 X-레이 검사를 했다. 그런데 검사를 마친 의사가 깜짝 놀라면서 “무엇을 먹었냐?”고 대뜸 물었다.
검사 결과 “완전히 커버가 됐다.”는 거였다. 여기서 말하는 커버는 간수치가 정상수치로 회복됐다는 의미였다.
너무도 기뻤다.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단지 하루 세 잔 꼬박꼬박 생즙을 마셨을 뿐인데, 약이 없다던 만성 B형 간염이 정상으로 회복되다니…. 최춘식 대표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국산 생즙기의 우수성 세계에 알리는 홍보맨으로~
생즙의 놀라운 치유력에 매료되고 말았다는 최춘식 대표. 이 일은 그의 인생지침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한국산 생즙기의 우수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질기고 억센 잎채소를 맷돌 방식으로 꼬옥 짜주는 노하우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래서 결심했어요. ‘한국산 생즙기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알려보자.’ 한국산 생즙기를 수입해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판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생즙기를 들고 직접 생즙을 짜는 시연을 하면서 미국인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당시 미국에서 선보이고 있는 녹즙기는 칼날로 커팅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방식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고속으로 회전을 해야 하는 탓에 열이 발생하고, 이 열이 발생할 때 생즙의 비타민과 효소도 함께 파괴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한국산 생즙기는 이 같은 약점을 해결한 방식이었어요. 저속회전이어서 열 발생도 적고 그렇다보니 영양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었거든요.”
이점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그 기술은 미국인들에게도 통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질기고 억센 잎채소도 착즙이 잘 되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때문일까? 지금도 미국에서는 한국산 생즙기를 제일로 쳐준다고 한다. 암환자, 당뇨환자들은 모두 한국산 생즙기를 쓸 만큼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같은 쾌거 앞에서 최춘식 대표가 느끼는 보람은 크다. 자부심도 높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지금 전 세계를 공략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태국, 싱가포르, 영국, 호주, 체코 등으로 판매 루트를 넓히며 한국산 생즙기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즙기로 맺은 인연도 두텁다. 중동 두바이에서 한국산 생즙기의 판매를 책임진 알라 샬롬(Alla Saloum)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중동 전역에 한국산 생즙기의 우수성을 알리겠다고 포부를 밝힌 알라 샬롬은 “한국식의 쥐어짜는 생즙 방식이 의학적으로 효험이 있다는 걸 알게 돼 이 사업을 하게 됐다.”고 밝히고 “중동 사람들에게도 생즙은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늘도 건강을 되찾게 해준 생즙을 마시고, 또 한국산 생즙기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알리는 데 여념이 없는 최춘식 대표.
바쁜 와중에도 건강은 언제나 그의 최고 관심사다. 비록 지금 만성 B형 간염은 그의 몸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건강을 지키는 데는 왕도가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30분씩 걷기 운동을 하고, 육식 대신 채식 식사를 하며, 마음은 언제나 편히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그에게 리차드 칼슨 박사가 쓴 <사소한 일로 진땀을 흘리지 마라>는 언제나 삶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고.
최춘식 대표는 “매사를 사소한 일이라고 여기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별로 없다.”고 밝히고 “오늘을 최대한 즐기며 살 것”을 당부한다. 지금 이 순간은 신이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