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백나래 기자】
【도움말 |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숙행 교수】
바야흐로 여행의 계절, 여름이 돌아왔다. 1년에 단 한 번 길게 쉴 수 있는 휴가인 만큼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역시 매해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즐거운 여행 이후 후유증도 큰 법. 행복해야 할 여행이 밤낮이 뒤바뀌는 고통으로 힘들다면, 선글라스의 마법에 의지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 몸의 신체시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사는 김초롱 씨(35세)는 해외여행 마니아다. 일 년에 두 번은 꼭 해외여행을 한다.
그런 그녀가 해외여행 시 필수아이템으로 꼭 챙기는 것이 있다. 레몬향초다. “여행지 숙소에서 집 방향제와 같은 레몬향이 퍼지면 집처럼 아늑하게 느껴져 잠들기가 한결 쉬워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종 시차 때문에 두통을 겪기도 해서 두통약도 필수품으로 챙긴다고 한다.
비단 김초롱 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해외여행이 대중화되면서 너도나도 해외여행을 다니는 시대다. 그러나 종종 즐거운 해외여행이 오히려 고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시차 때문에 생기는 각종 증상들 때문이다.
이것을 의학용어로 ‘시차증후군’이라 하는데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이 크고 작은 시차증후군을 겪게 된다. 왜일까?
이 물음에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숙행 교수는 “모든 사람에게는 신체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의 체온이나 혈압, 호르몬 등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 어떤 리듬에 따라 24시간을 주기로 변동한다는 것이다.
조숙행 교수는 “신체시계는 낮과 밤을 통해 24시간이라는 리듬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만약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동굴에 갇히면 24시간이 아닌 25시간, 혹은 그 이상으로 주기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빛의 유무에 의해 생기는 낮과 밤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 신체가 원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체시계의 붕괴로 시차증후군 유발
장거리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떠나면 두통뿐만 아니라 피로감이나 기억력 감퇴, 소화불량 등을 겪는 일이 많을 것이다. 심한 경우 우울증까지 생기기도 한다. 짧은 시간 내 밤낮이 바뀌면서 신체시계를 조절하는 리듬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비행시차로 생긴 시차증후군이다.
시차로 인해 깨진 리듬을 100% 정상으로 되찾기까지 일반적으로 12일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큰 협상을 앞두고 출국한 비즈니스맨이 12일 동안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일한다면, 중요한 시합이 있는 운동선수가 소화불량으로 자신의 기량을 모두 발휘하지 못한다면, 1년에 한 번 있는 긴 휴가에서 낮엔 졸고 밤엔 멀뚱거리고 있게 된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빛과 어둠을 조절하자
배가 부르거나 술에 취하면 잠이 잘 온다는 생각에 기내에서 과식하거나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선택이다. 알코올이나 카페인, 또는 음식의 과다 섭취는 신체 리듬에 변화를 일으켜 비행시차증후군을 악화시킬 뿐이다.
반면, 비행시차를 빠르게 극복하는 방법 중 과학적으로 증명된 방안이 있다. 바로 신체리듬을 관장하는 빛을 이용해 조절하는 것이다.
몸은 기상하기 2~3시간 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예로,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사람의 신체는 새벽 4~5시부터 서서히 깨어날 준비를 한다. 몸이 깨어나는 시간인 오전 4시 이후 빛을 받으면 그날 신체시계는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반대로, 몸이 쉬고 있는 4시 이전에 빛이 들어오게 되면 신체시계가 헝클어져 오히려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즉, 도착지에서 출발지의 신체시각을 적용한 뒤 조금씩 시간을 당기거나 늦추는 방식을 이용하면 쉽게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와이로 여행을 간다고 생각해보자. 하와이는 우리나라에 비해 5시간이 빠른 곳이다. 7시에 기상하는 사람의 활성화 시작 시각은 오전 4시이므로 하와이 시각으로 변경하면 오전 9시다. 하와이에 도착해 9시 이전에 빛을 받게 되면 역반응이 일어나 신체리듬이 깨지게 된다.
그러므로 9시 이전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써 빛을 차단시키고, 9시 이후에는 선글라스를 벗어 빛을 쬐면 시차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6시간이 늦은 터키 이스탄불로 가게 된다면 현지 시각으로 오후 10시에 신체리듬이 활발해지는 시점이므로 형광등이나 조명 등의 빛에 눈을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 조숙행 교수는 “빛을 받아야 할 땐 받아야 신체리듬이 크게 깨지지 않는다.”며 “시차증후군의 해결에는 빛과 어둠 조절이 아주 중요한 사항”이라고 강조한다.
비행시차증후군 거뜬히 극복법 3가지
1 목적지가 서쪽일 경우 1시간씩 늦게, 동쪽일 경우 1시간씩 일찍 잠들기
출발하기 전부터 조금씩 신체 시계에 변화를 주어 차이를 줄이면 시차증후군을 이겨내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늦게 자는 것은 쉽지만 일찍 자는 것이 힘든 만큼 서쪽보다 동쪽으로 갈수록 시차로 인한 고통은 더욱 커진다. 그러므로 동쪽으로 갈 경우 미리 시차를 알아보고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 검은 선글라스는 필수!
오전 4시에 신체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사람이 뉴욕에 가면 현지에선 13시간의 시차에 따라 오후 3시부터 몸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 첫 날은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빛을 받는다. 다음 날은 두 시간 정도 당긴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빛을 쬐는 식으로 조절한다. 이렇게 빛을 이용해 자신의 신체리듬을 조절하면 시차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도 빠른 시일 내에 컨디션을 회복하고 현지시각에 신체시계를 맞출 수 있다.
3 밤의 호르몬, 멜라토닌 챙기기
위 방법만으로 불안하다면 한 가지를 더 챙겨보자. 외부에선 빛을 이용해 컨디션을 조절한다면, 신체 내부를 조절하는 방식도 있다. 우리 몸속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호르몬은 빛과 거꾸로 작용한다. 즉, 잠이 드는 밤에 생성되었다가 아침에 없어지는 것이다.
조숙행 교수는 “출발하는 날, 출발지에서 목표지 시각이 오후 6~7시일 때 멜라토닌 알약을 섭취한다면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시차적응이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 체류하는 기간 동안 자신의 수면시간에 맞춰 먹으면 몸과 빛의 균형을 맞추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반대로 아침에 멜라토닌을 먹으면 신체리듬은 난조를 겪게 되니 유의해야 한다.
조숙행 교수는 고려대 의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정신신체의학회 편집위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비행시차해결> <생각을 바꾸면 건강이 보인다> 등이 있다. 현재 한국정신신체의학회 회장으로 고려대학교 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및 의과대학 정신과 주임교수로 재직하며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에서 진료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