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김달래한의원 김달래 한의학박사】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을 빨리 먹고, 많이 먹는 편이다. 19세기에 우리나라를 여행했던 영국의 비숍 여사도 한국 사람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기록을 남겼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정상비약으로 소화제를 비치하는 경우가 많고, 한의원에 찾아와 한방소화제를 원하는 환자들도 상당수다. 소화가 잘 안 될 때 약처럼 먹을 수 있는 천연 소화제 4가지를 소개한다.
소화가 잘 되기 위한 조건
음식을 잘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위 기능과 장의 기능이 좋아야 하고, 소화효소가 잘 분비되어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 소화제를 자주 찾는 사람들은 위장기능을 보강해야 하며, 소화기능이 튼튼해지면 자연적으로 소화효소는 잘 분비되게 된다.
소화효소는 탄수화물 분해효소와 단백질 분해효소, 그리고 지방 분해효소로 나눌 수가 있다. 탄수화물 분해효소는 입안의 침이 대표적인데 아밀라아제가 대부분이다. 단백질 분해효소로는 위에서 분비되는 펩신이 대표적이다. 지방 분해효소로는 리파아제가 대표적인데 쓸개즙 속의 각종 유기산염이 지방을 물에 녹는 형태로 바꾸어줌으로써 리파아제의 가수분해 작용이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요즘 시판되는 한방 소화제는 위와 장의 운동을 촉진시켜 소화액의 분비를 높이는 약제가 대부분이다. 양방의 소화제는 소화액의 분비 부족을 보충하는 소화효소제가 대부분이다. 이런 특성을 잘 이해하고 소화제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임상에서 봤을 때 소화는 체질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례로 소음인과 태양인 체질은 선천적으로 소화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소화제를 자주 찾는 편이다. 따라서 이 두 체질은 평소에 위장기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그런 반면 태음인이나 소양인 체질은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빨리 먹고 나서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두 체질은 소화효소를 보충하는 것이 효과가 빠른 편이다. 천연 소화제로 활용하면 효과가 뛰어난 것을 각각의 체질별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소음인 체질의 천연 소화제~ 백출
삽주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을 말하는데 한방에서는 그 뿌리를 백출(白朮) 또는 창출(蒼朮)이라 부르고, 현재 임상가에서도 상당히 자주 처방해서 사용하는 한약재이다.
삽주는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산속 양지쪽 풀밭에 자생하고 있다. 삽주는 굵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여러해살이 풀인데, 삽주의 덩이줄기인 백출에는 정유가 1.4% 들어 있다.
삽주는 나트륨 배출을 촉진함으로써 흰쥐, 토끼와 개 같은 각종 동물에 대해 뚜렷하고 지속적인 이뇨작용을 한다. 백출은 프로트롬빈 시간을 연장함으로써 피가 뭉치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흰쥐에게 백출 달인 물을 6g/Kg씩 위에 1개월 주입했더니 체중증가와 근력증강이 촉진되었다.
이밖에 흰쥐에게 백출 달인 물을 경구 투여했더니 혈당이 떨어졌고, 간장이 보호되었으며, 사염화탄소에 의한 간 글리코겐의 감소를 방지했다. 한마디로 강장효과가 있었다.
삽주를 흰쥐의 복강 내에 주입할 때 반수치사량(LD50)은 13.3g/Kg으로 황기보다 3배나 강한 독성을 갖고 있다.
한방에서는 삽주의 뿌리줄기를 창출(蒼朮)이라는 약재로 사용하고, 덩이줄기를 백출(白朮)이라는 약재로 사용한다.
삽주는 비위를 보익함으로써 맥이 약하고 식욕이 없으며 피로를 느끼는 소음인 체질에게 좋은 약이다. 설사, 헛배가 부른 증상, 황달, 헛땀이 날 때, 머리가 어지러울 때, 임신 중에 아랫배가 아플 때, 부종이 있을 때도 복용하면 효과적이다.
소음인 체질은 선천적으로 비위가 약하고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한다. 소음인은 또 음식을 천천히 먹고 많이 씹는 편인데 위기능이 약해서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금방 배탈이 날 수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음식은 탄수화물의 비중이 높았으나 요즘은 예전보다 탄수화물의 비중이 줄어들고 지방과 단백질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소음인 체질들은 소화에 많은 부담을 갖게 된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천연 소화제가 바로 백출이다.
태양인 체질에 좋은 소화제~ 다래
다래는 덩굴나무인 다래나무의 열매인데 한방에서는 다래를 ‘미후도’라고 부른다. 다래는 길이가 2?3cm 정도 되는 달걀 모양인데 대추와 비슷하고, 10월에 황록색으로 익는다.
다래 속에는 비타민 C가 80mg%나 들어있어서 괴혈병의 치료에도 사용하는데 덜 익은 다래 속에는 비타민 C가 더 많다. 다래는 열을 내리고, 갈증을 멈추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 또 심리적으로 긴장하거나 화가 치밀어 올라서 가슴이 답답하고 잠을 자지 못할 때 다래를 달여서 마시면 효과가 좋다.
만성 간염이나 간경화증으로 황달이 나타날 때도 다래를 달여서 마신다. 또 음식을 먹고 나서 자꾸 토하거나 속이 울렁거릴 때도 사용한다.
다래는 성질이 차서 몸이 차고 설사를 자주하는 사람, 소화기가 약한 사람은 많이 먹으면 아랫배가 아프고 설사를 일으키기 때문에 소음인과 태음인 체질인 사람은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다래나무의 어린 순은 말려서 묵나물로 이용한다. 다래를 약용으로 사용할 때는 가을에 익은 열매를 따서 말려 사용한다.
다래가 없을 때는 키위를 대신 써도 된다. 키위는 약 50mg%의 탄닌이 들어있어서 약간의 떫은맛이 나고,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가 들어있어서 질긴 쇠고기 위에 얇게 저민 키위를 올려놓으면 연하고 맛있는 스테이크가 된다. 태양인 체질인 경우에는 다래가 가장 효과적이다.
소화 돕고 복부창만에도 좋은 엿기름
엿기름은 보리의 배젖조직을 분해하는 여러 가지 효소가 발아할 때 생산되는 녹말 원료이다. 보리 씨앗에 물을 뿌린 다음 잔뿌리가 나와 길이가 1~2㎝ 되었을 때 햇볕에 펼쳐 건조시킨 것으로 한방에서는 맥아(麥芽)라고 부르며, 천연 소화제로 사용하고 있다.
약으로 복용할 때에는 엿기름을 빻아 분말로 먹거나 엿기름을 달여서 먹는다. 엿기름은 디아스타제, 인베스타제, 덱스트린, 말토오스, 글루코스 등이 들어 있고 비타민 B가 들어있기 때문에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한다. 엿기름은 소화기능을 도와주면서도 기운을 아래쪽으로 내려가게 해서 복부창만이나 신물이 올라올 때, 구토, 설사에도 효과가 있다.
또 맥아는 젖을 말리는 효과가 뛰어나면서도 부작용이 없어서 양방에서 젖 말리기 위해 사용하던 팔로델을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FDA는 현재 팔로델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맥아는 산모는 물론이고 젖먹이 어린애에게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엿기름의 잔뿌리 부분에는 말톡신이 들어 있는데 카니신 성분이라서 근육을 이완시키는 데카메토늄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맥아를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낙태를 유도할 수도 있으므로 임신부는 먹을 때 조심해야 한다.
태음인에게 좋은 천연 소화제 매실
매실은 매화나무의 열매로, 한방에서는 청매의 껍질을 벗겨 연기에 그을려 검게 만든 오매를 약재로 사용하고 있다. 매실을 약으로 사용할 때는 한 번에 2~4g을 달여서 먹거나 가루약 형태로 먹는다. 매실은 시트르산이나 사과산, 호박산, 주석산 같은 유기산이 풍부해서 위장의 작용을 활발하게 하고 식욕을 돋우는 작용을 한다.
매실은 장의 운동을 억제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설사를 하거나 이질이 있을 때 사용하면 좋다. 다양한 세균의 활동을 억제하는데, 세균성 이질 환자 50명에게 매실 달인 물을 하루 2번씩 아침저녁으로 투여했더니 발열, 구토, 복통 등의 증상이 모두 1~3일 만에 없어졌으며, 48명의 환자가 2~6일 내에 완치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매실은 또 더위를 먹었을 때도 효과적이다. 몸에 열이 많은 태음인 체질의 사람이 더위를 먹어서 갈증이 심하고, 밥맛이 없고, 나른할 때 매실을 먹으면 좋다.
매실은 위산 분비를 정상적으로 조절하므로 위산과다증이나 저산증에 효과가 좋다. 그 대신 위궤양이 있을 땐 주의해야 한다. 매실의 효과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체질은 태음인이지만 감기에는 사용하지 않는다.